'101번째 프러포즈' 끝에 취업했어요

100번 서류전형 탈락, 8번 면접 후 '낙바생' 된 28세 구직자

등록 2006.01.04 18:45수정 2006.01.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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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구직자들에게 힘을 내라며 정우가 선물한 화분

구직자들에게 힘을 내라며 정우가 선물한 화분 ⓒ 이명숙

프로그램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정우(가명)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근무는 어떻게 하고…."
"선생님들께 이걸 전해드리려고요."

정우 옆에는 파릇파릇한 이파리를 드리운 화분이 놓여 있다.

"이걸 전해주려고 제주도에서 비행기타고 왔단 말이에요."

순간, 감동의 물결이 물수제비처럼 퍼진다.

정우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신규구직자였다. 취업을 하려면 어학실력은 필수라는 생각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1개월 동안 호주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04년 7월부터 취업을 하기 위한 정우의 끈질긴 노력은 시작되었다. 사원을 모집한다는 곳이 있으면, 최대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넣었다.


하지만 세상은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잘 몰랐던 정우에게 면접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설사 면접의 기회가 왔다 하더라도 면접에 대한 대처방법이 부족했던 정우는 번번이 떨어지곤 했다. 한 번, 두 번 넣기 시작해 탈락한 이력서가 열 번이 되었고, 오십 번, 칠십 번, 백 번이 되었다. 열 번까지 떨어질 때는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그러나 보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렸고 자신감 상실과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울증까지 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를 통해 성취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100번이 넘는 서류전형탈락으로 인해 정우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프로그램 첫 날 고민나누기를 통해, 취업이라는 것이 그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접역할연기를 통해, 취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하나둘, 깨달아가면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정우는 그동안 자신의 취업형태가 대표적인 '묻지마' 유형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지원하다 보면 걸리는 곳이 한 군데는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을 갖느냐에 따라 이후, 인생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의욕만 앞섰지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취업이 늦어지더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성취프로그램 구직기술 중 '사전탐방'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아파트 수변전설비실에서 일을 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전기실을 견학하면서 사무실보다는 현장업무가 적성에 맞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전기관련 현장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찾던 중 발전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목표를 정한 정우는 그에 맞춰 취업준비를 해 나갔다. 일단 서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토익이 800점대, 학점이 3.8 정도가 되어야 했다. 다행히 서류전형 통과요건은 갖추고 있었다. 전공시험은 전기기사 문제집을 중심으로 반복학습을 하였다. 논술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간추려가면서 사설을 반복적으로 읽었다. 자주 쓰이는 한자는 단어 위주로 연습을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01번만에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에 통과를 하게 되었다.

정우는 면접을 보러가기 전에 두 번에 걸쳐 집중적인 면접클리닉을 받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모습부터 문 열고 들어와 인사하는 방법, 자리에 앉는 자세, 음성, 언어, 시각적인 요소까지 꼼꼼하게 하루 4시간씩 이틀에 걸쳐 연습을 했다.

100번 서류전형에 탈락한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누구보다도 정우의 소식이 궁금했고 걱정이 되었다. 밤잠 설쳐가며 준비했고, 우리 또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랐다. 면접이 끝나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소식이 오질 않았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우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뭐라고 위로를 해 주어야 되나 걱정을 하고 있던 중, 최종관문인 신체검사와 신원조회만 남아 있다는 메일이 왔다. 일단 안심이 되면서도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라 최종 통보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라는 반가운 전화가 왔다.

"그래요. 됐어요. 잘 됐다. 잘 됐어. 축하해요"

평소보다 서너 배는 더 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제일 먼저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어 전화를 했다는 정우에게 근무 잘 하라며 마음껏 축하를 해 주었다.

제주도로 발령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선생님들께 너무 고마워서 첫 월급 타면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거절 하실 것 같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화분을 샀어요. 취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저처럼 100번 서류전형에 떨어진 사람도 열심히 하면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어요. 이 화분 보면서 힘내서 꼭 취업하라고 전해주세요."

정우는 고용안정센터를 찾아오는 구직자들에게 100번 서류전형에 탈락했던 사람도 취업에 성공해서 잘 다니고 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라며, 화분을 건네준다.

"고마워요. 꼭 그렇게 전해줄게요. 그리고 이제 여기 오지 마요. 제주도에서 비행기타고 왔으면 그 귀한 시간에 여자친구도 만나고 해야지…."
"여자 친구 없어요. 선생님 여자친구도 소개시켜주세요."

여자친구를 소개시켜달라며 정우는 환하게 웃는다.

"뭐 나보고 커플매니저까지 하라고. 좋아, 그럼 지금부터 알아볼 테니까 원하는 여성상이 있다면."

키는 넉넉해야 되고, 몸은 약간 통통하면 된다는 정우에게 알아보겠다는 약속을 장난스럽게 한다.

이십대 청년구직자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 '이태백'과 '낙바생'이다. 이태백이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면, 낙바생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 취업성공생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태백, 낙바생이라는 말 속에는 이십대 청년구직자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정우는 100번 서류전형에 탈락하는 동안 이태백의 설움도 겪어보았기 때문에 직업의 소중함도 알 것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끈질김으로 낙바생 대열에 합류를 한 저력이 있기 때문에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제 몫을 잘 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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