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과 시위대 갈등 부추기는 언론

경찰의 과잉진압에 희생당한 두 농민, 시위대만 탓하는 언론들의 보도 행태

등록 2006.01.06 10:54수정 2006.01.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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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용철, 홍덕표씨의 공동 장례식이 치러진 후,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지만, 이번에는 전·의경의 부모들과 예비역들이 나서서 전·의경들의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신문 지상에는 '民民갈등'이 우려된다며 그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 뒤에 숨어 교묘하게 양쪽의 갈등을 조장하는 수구언론이 있다는 사실이다.

전·의경, 우리도 '폭력시위'의 피해자다!?

“폭력시위는 놔두고 경찰만 비난”…전-의경 부모 화났다 [동아일보 2006년 1월 5일자 기사]
전·의경 부모들 시위 항의 시위 “우리 애들은 인권없나” 7일 100여명 집회계획 [조선일보 2006년 1월 5일자 기사]
전·의경 부모들 집단행동 나서 [중앙일보 2006년 1월 5일자 기사]
전·의경부모 “폭력시위 항의 집회 연다” [한겨레 2006년 1월 4일자 기사]

동아, 조선, 중앙일보 모두 가해자로 몰리는 전·의경들이 사실은 '폭력시위'의 희생자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를 싣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묵과하고 있는 것은, 진압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이다.

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 홍덕표씨는 달아나는 와중에 뒤에서 쫓아온 진압경찰의 방패에 맞았고, 고 전용철씨는 진압경찰에 의해 넘어진 상황에서 구타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시위진압에 나선 전·의경들이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중무장을 하고 있었던 반면, 시위에 가담한 농민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나 중장년층이었다. 두 세력 사이에 분명한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저항의지 없는 농민에 가해진 이와 같은 공격은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시위가 격해져서 양측 모두 흥분한 상황이었다 해도 진압경찰이 두 농민에 가한 공격의 고의성과 잔혹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의경들이 입은 피해를 주장하기 전에 이러한 잘못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전·의경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부터 개선되어야

시위 때마다 이렇게 부상을 당하는 전·의경들의 부모들이 오는 7일 서울의 경찰청 앞에서 폭력시위 추방을 위한 집회를 열고 인권위원회까지 행진을 하기로 했다. 인생이 구만리 같은 나이에 팔 부러지고 다리 으스러지고 턱뼈가 산산조각이 난 전·의경들의 부모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항의하러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 2006년 1월 5일자 [사설] 인권위원회에 전·의경 인권 항의하러 가는 부모들 中)


전·의경들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입은 부상을 묘사하는 조선일보의 사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집단을 핍박하는 조선일보식 '인권운동'이 이 사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과연 시위대의 '폭력시위'만 없어지면 전·의경의 인권 상황이 나아지는가.

...구타를 당하는 이유는 ‘선임대원 지시 불이행’이 22.9%(113명)로 가장 많았고, ‘군기(기강확립)’가 21.1%(104명), ‘시위진압 작전의 효율성’(19.2%·95명)이 뒤를 이었다. 구타와 가혹행위 발생 장소는 내무반(31.1%)과 출동버스 안(28.7%)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구타 발생 시간도 일석점호 전후(35.2%)에 이어 시위진압 대기 중(19.2%)이라는 답이 많아, 시위진압 업무와 부대원 간 폭력행사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줬다. (한겨레 2005년 11월 10일자 기사 中)

관련기사:
전·의경 “1주일 1회이상 맞는다” 5.6% [한겨레 2005년 11월 10일자 기사]
뿌리 뽑아야 할 전·의경 인권침해 [한겨레 2005년 11월 10일자 기사]

위의 기사는 전·의경들의 인권실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이다. 집회에 동원되는 전·의경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는 데에는 시위를 진압하지 못했을 때 가해지는 선임들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전·의경으로 복무하는 젊은이들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로 인해 자살하거나 난동을 일으키는 이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데도 우리 언론은 그러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에 너무나 인색해 왔다(조선일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싣지도 않았다). 하지만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강요되고, 올바름보다 힘의 잣대가 통하는 비인간적인 군대 환경 자체가 개선되어야 전·의경들의 인권이 진정으로 귀중히 여겨지지 않겠는가.

폭력시위대만 인권이 있고 우리 애들은 인권이 없습니까

"폭력시위대만 인권이 있고 우리 애들은 인권이 없습니까" 동아일보에 실린 한 전경의 부모가 한 말이다. 과연 시위대의 '인권'과 전·의경의 '인권'은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있는 것일까. 개개인의 인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속해있는 사회 자체가 그걸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시위대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전·의경의 '인권'도 보장될 수 있고, 전·의경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시위대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인 것이다. 그 사회에서 특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 않는 한 누구든 마찬가지이다.

수구 언론들이 과격한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그 시위대는 과연 누구인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 시대에 극단으로 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살겠다고 서울의 한복판에 모여 목이 터져라 생존권을 부르짖는 그들은 또한 어떤 전·의경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일 수 있다. 전·의경들이 이 땅의 젊은이들이라면 시위대의 외침에 양심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전농 관계자는 "농민뿐 아니라 시위를 명령에 따라 진압해야 하는 전ㆍ의경도 피해자"라며 "회의를 거쳐 대표단이 부상 전ㆍ의경을 위문하는 방안도 추진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진압 경찰도 모두 자식과 다름없는데 대승적 차원에서 이들의 아픔도 끌어안아야 하며 양측 모두 평화시위 문화를 정착하는데 노력하는 것이 돌아가신 농민 두 분에 대한 올바른 도리"라고 강조하면서 민-민 갈등을 경계했다. (한겨레 2006년 1월 4일자 기사 中)

동아, 조선, 중앙일보에는 실리지 않았던 '시위대'의 말이다. 수구 언론들은 입으로는 '民民갈등'을 우려한다면서, 교묘하게 전·의경들과 농민·노동자 시위대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당장 멈추어야 할 것이다.

언론들이 집회에서 유독 시위대의 폭력성만을 문제 삼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폭력만을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를, 농민을 거리로 내모는 정권과 자본의 보이지 않는 가혹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위대와 전·의경 사이의 비극은 되풀이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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