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41회

등록 2006.01.06 08:32수정 2006.01.07 20:14
0
원고료로 응원
검날이 아닌 검신과 부닥치자 맑고 경쾌한 금속성이 울렸다. 하지만 잠시 밀리는 듯 했던 연검은 여전히 독사의 머리처럼 그의 목을 향해 갈지자를 그으며 파고들었다. 연검의 움직임은 기이했다. 검로에 있어 변(變)이란 상대의 예측을 무력화시켜 방어를 어렵게 하는데 효용이 있고, 환(幻)이란 상대의 눈을 현혹하여 진정한 살초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 더 나아가 숨어있는 변(變)과 환(幻)은 곧 바로 치명적인 절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변(變)도 환(幻)도 아니고 그저 검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검날이 자유자재로 휘어지며 파고드는 공격은 도저히 예측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한 자나 늘어나 검극에 이어진 백색기류는 검강(劍罡)과 같아서 연검의 휘어짐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여 더욱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었다.


사사사삭---!

전월헌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신법은 매우 경쾌하고 날렵했다. 몸 역시 유연성이 뛰어나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담천의에게 등을 보인 상태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검이 발출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에 비해 담천의는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상대의 괴이로운 연검에서 뿜어지는 무궁무진한 변화에 담천의는 당혹스러웠다. 팔까지 베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옷소매가 상대의 연검에 베어져 너덜거렸다. 우선 상대를 알아야 했다. 연검의 변화를 알기 전에 섣불리 공격을 하다가는 어느 순간에 당할지 모른다.

십여 초가 지나자 그는 승부에 몰입해 들어갔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상대와 자신뿐이었다. 아니 상대도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 빛조차 사라진 암천을 보듯 온통 어두운 가운데 독사의 혀처럼 백색광채의 춤을 추는 검만을 상대하고 있었다.

츠르르--- 파팍---!


굉렬한 백색의 광휘가 몰아쳐오자 담천의는 위아래와 좌우로 만검을 떨쳐내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발목까지 잠기는 얕은 물은 그의 움직임을 둔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물이 세차게 갈라지자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비산되고 있었다.

전월헌은 담천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연검이 수면을 닿을 듯 그어오자 수면이 쫙 갈라지며 물보라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검에서 뿜어지는 가공할 검기(劍氣)는 암석이라도 견디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광풍폭우가 몰아치듯, 뇌성벽력이 내리 꽂히는 듯한 위력이었다.


낭창거리는 연검에서 저렇듯 가공할 위력을 가진 검기가 뿜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확실히 전월헌은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고수였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진정 검을 잡은 인물 중 신검합일의 경지에 올라 본 자가 얼마나 될까?

담천의는 좌측으로 빠르게 발을 옮기며 반원을 그렸다. 그 역시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그는 크고 작은 승부를 해왔다. 노련한 강호 명숙과는 비교할 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무릎까지 빠지는 물에서 신형을 뽑아 올리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를 박찼다.

담천의의 신형이 빠르게 회전하며 일직선으로 그를 쫓고 있는 전월헌을 향해 마주 쏘아갔다. 변화가 없는 단순한 검로였지만 그것의 위력은 이미 강명까지 인정한 바로 그 검로였다. 언뜻 전월헌의 눈에 이채가 떠오름과 동시에 검을 위로 그었다.

파르르-- 츠읏---!

그의 신형이 급하게 왼쪽으로 미끄러져 나가며 연검이 나비의 움직임처럼 팔랑거렸다. 그것은 담천의의 검로를 봉쇄하고 공격을 비껴가게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 순간 전월헌 역시 물에서 신형을 떠올리더니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소나무 가지에 올라섰다. 손가락 정도 굵기의 소나무 가지가 약간 휘청거리는 듯 했다.

파파파파----!

그를 따라붙는 담천의의 신형이 회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물보라가 일어나며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전월헌의 신형이 가지를 박차고 허공에 떠오르더니 쾌속하게 내리꽂혔다. 그의 연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좌우로 팔랑대면서 담천의의 어깨를 베어감과 동시에 재차 이어지는 담천의의 검을 봉쇄하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허공에서 검과 검이 마주치며 불꽃을 피워내며 한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무섭게 엉켜들었다가 좌우로 갈라졌다.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전월헌은 바위 위에, 담천의는 비틀려 묘한 형상을 만들며 자라는 소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역시 괜찮군.”

전월헌의 옆구리 쪽의 옷이 갈라지면서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인물이 얼마나 될까? 그는 담천의의 무위가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지임을 알았다. 분명 상대의 검은 미끄러져 나갔고, 그의 검역(劍域)에서 벗어나 있었다. 헌데도 베인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가 손해 본 것은 아니었다. 담천의 역시 옷소매가 벌어진 가운데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피는 그의 팔뚝을 타고 흘러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전월헌이 씨익 웃자 담천의 역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귀하 역시 감탄할 정도요.”

전월헌은 진정한 고수였다. 담천의는 지금껏 만난 상대 중에 강명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만약 수개월 전에 전월헌을 만났다면 일방적으로 당했을 터였다. 만검의 요체를 깨달은 지금에도 그는 상대하기 벅찬 상대였다. 시공(時空)을 격하여 파고드는 만검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그 짧은 순간에 반격이라니….

“좋아…!”

무엇이 좋다는 것일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월헌의 발이 바위를 박차고 수면 위로 날아오듯 스치고 있었다. 담천의 역시 검을 수평으로 비스듬히 치켜든 채 허공으로 도약했다. 분명 아래쪽보다는 위에서 공격하는 것이 위력적이다. 헌데 전월헌은 왜 아래로 파고든 것일까?

담천의의 검이 수직도 수평도 아닌 기이한 각도로 변화를 일으키며 전월헌의 상체를 휩쓸어갔다. 그것은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느릿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실상 그 검을 상대하는 전월헌의 눈에는 놀라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느릿한 듯 했지만 자신에게만은 너무나 빨라 피할 수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바로 저것이군…! 말로만 들었던 만검의 요체… 시와 공을 초월한다고 했던가? 내 옆구리를 벨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저것이었어.)

상대의 검이 미치는 범위 밖이라 생각했고, 분명 피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당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만검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만공이란 기인이 남겨다는 깨달음의 무학. 검을 든 자라면 한 번쯤 동경하는 만검의 깨달음. 하지만 자신이 익힌 검은 절대 만검에 뒤지는 검이 아니었다. 오히려 만검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검이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무림의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검을 익힌 것이다.

“흐흣---!”

전월헌은 몸을 뒤집으면서 수면과 수평을 이루고는 허리를 뒤로 활처럼 휘었다. 동시에 그의 연검이 허공에 세 줄기의 검광(劍光)과 다섯 줄기의 백색 검영(劍影)을 수직으로 피워 올렸다. 담천의의 검이 전월헌의 가슴을 헤집을 때면 전월헌의 검 역시 담천의의 두 다리를 잘라낼 터였다. 담천의가 주춤하는 순간 전월헌의 몸이 다시 빙글 돌더니 담천의의 아랫배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일순 담천의의 눈에 당황한 듯한 기색이 흘렀다. 확실히 전월헌의 신법은 너무나 표흘하고 자유로워 예측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담천의는 황급히 하체를 허공에 띠우며 마치 물구나무 서는 형상으로 검을 수직으로 세워 전월헌의 정수리를 노리며 찔러갔다.

츠으으--

검과 검이 마치 자철이 달라붙듯 엉켜들었다가 비껴가는 동작이 짧은 그 순간에 수십 번 이루어지고 있었다. 불똥이 마치 폭죽처럼 사방으로 뿜어졌다. 폭풍이 휘몰아친 듯 물이 허공에 솟구려 오르고 주위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며 나뭇잎을 허공에 토해냈다.

“으음…!”
“음….”

담천의의 신형이 허공에서 세 번을 회전하며 물가로 떨어져 내렸다. 전월헌의 신형 역시 좌측으로 맹렬히 회전하더니 튕겨나갔다. 그들 입에서 나직한 경탄과 침음성이 흐른 것은 동시였다. 또 다시 두 사람의 몸에는 동시에 두 번째 검흔이 그어져 있었다.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막상막하(莫上莫下)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대였다.

전월헌은 서서히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쉽게 이길 상대는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장의 한 수가 있다.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그는 상대가 자신의 검에 익숙해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자신의 검로와 다양한 변화를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에 익숙해진 상대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의 죽음을 의미했다.

전월헌은 재차 담천의를 향해 검을 쏘아갔다.
(제 81장 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