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물로 숙박비를 대신하다

[인도 유랑기 2] 델리 입성기

등록 2006.01.18 09:04수정 2006.01.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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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7일 India Delhi

a 길거리 어딜가나 태연히 자리잡고 있는 소들

길거리 어딜가나 태연히 자리잡고 있는 소들 ⓒ 이창욱

인도의 첫 인상…


처음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지로 꼽았을 때 많은 친구들이 내게 "미쳤냐"고 반문했었다. 군대 가기 전 단 한 번의 해외여행 기회를, 왜 하필이면 지지리도 못 살고 더러우며 먼 인도로 가서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분명 다녀와서 후회할 거라며 차라리 동남아에서 한 달 푹 쉬고 오던지, 유럽이나 일본 같은 관광선진국을 편하게 다녀오는게 나을 거라고 아들 한 마디씩 입을 걸쳤었다.

어느 책에서 본 한 구절, '배낭여행객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인도라는 말에 마음이 동해 어차피 한 번 뿐인 여행, 환승 기회도 없으니 바로 종착지로 가야겠다는 단순한 생각 뿐이었는데, 주변에서 하나 같이 만류하니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인생, 모 아니면 도라고 한 번 정한 이상 출발길에 오르긴 했는데 처음 델리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차!' 싶었다.

a 공항 밖에서 처음 마주친 인도인

공항 밖에서 처음 마주친 인도인 ⓒ 이창욱

인도의 대표 이미지… 불결

드디어 내가 한 달간 머물 나라 인도의 수도, 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나라 어느 중소도시의 버스터미널을 보는 듯한 허름한 시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코를 찌르는 냄새 그리고 불친절한 직원들의 안내까지…. 향후 30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국제공항과 홍콩 국제공항을 한 번 둘러보고 인도로 입국한 내게, CF 촬영현장으로 쓰일 정도로 뭔가 그림이 되는 다른 공항들에 비해 델리의 간디 공항은 남루해보이기까지 했다.


깔끔한 시설물과 체계적인 시스템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데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공항의 상징, 스튜어디스조차 오가지 않는 국제공항이란…. 나같은 미천한 여행객에겐 차라리 재앙이지 싶었다.

물론 처음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지로 꼽았을 때부터 럭셔리한 분위기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정취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설마 한 나라의 수도에 위치한 국제공항이 이토록 썰렁할 줄이야…. 순간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래도 세상 어느 곳이나 그곳 사람들에겐 평생을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며, 소중한 곳이라 위안삼으며 낯선 광경에 눈을 익숙케하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a 인도의 베스트셀러카,현다이-산드로(비스토)

인도의 베스트셀러카,현다이-산드로(비스토) ⓒ 이창욱

그렇게 인도에 내 첫 발을 내딛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첫인상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독특한 냄새다.
내가 느껴본 바, 고무 타는 냄새 같기도 한 그것의 정체는 독특한 향신료 냄새인데 이방인이게 조금 불쾌하지만 그리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우리 감각 중 후각이 가장 둔감해진다던데, 실제로 며칠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냄새를 느끼지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낯선 환경에 떨어졌을 때 그것이 예고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잠시 당황하게 마련인가 보다. 처음 인도에서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분명 가이드북과 미리 알고간 사전지식이 있었음에도, 한동안 뭘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인도에서 장사를 하는 한국분에게 물건을 가져다주고 델리에서 숙식을 제공 받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에 짐을 찾아 나오자 한국아주머니가 픽업을 위해 공항에 나와계셨다.

주로 이곳에선 구할 수 없는 한국음식들로 가득찬 짐을 아주머니에게 건네자 아주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인도인이라며 건강한 장정을 소개해준다. 그 장정은 서울에서 전달받은 짐과 내 개인 짐까지를 또 다른 인도인 일꾼에게 넘기고 차에 탈 것을 권한다.

인도에선 노동력이 가장 싸다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실어가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저 신기하다. 도요타 지프자에 몸을 싣고, 출발. 현지에서 일하는 국내기업의 한국인 직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계신 아주머니의 인도이야기를 들으며 델리를 달린다.

차 밖 풍경은 이곳이 내가 살던 곳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임을 말해준다. 맨발로 걸어다니는 사람들, 다 헤져서 도저히 옷이라고 할 수 없을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 다 무너져가는 건물들. 이곳이 국민 1인 평균소득이 한 달에 5만원 정도인, 세계 최빈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a 인도의 패밀리레스토랑-맥도날드

인도의 패밀리레스토랑-맥도날드 ⓒ 이창욱

엄청난 빈부격차만큼이나 잘 사는 사람들은 여느 선진국의 상류층보다 더 잘 산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또 한 번 놀란다. 이색적인 풍경은 길거리를 사람처럼 느긋이 지나다니는 소들. 차도에서도 태연히 걸어다니는 소 때문에 수많은 차들이 잠시 멈춰 서야 할 정도이니, 이방인이 보기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거기에다 거리 곳곳이 소 배설물로 더럽혀져 있으니 소를 없애지 않고서는 인도는 선진국이 될 수 없겠다 싶었다.

잠시 환전을 위해 어느 시장 귀퉁이에 내리자 동네 꼬마 아이들은 다 모인 건지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외국인을 알아보고 달려든다. 햐- 요런 쪼무래기들(귀여움에 대한 감탄사다). 눈도 크고, 쌍꺼풀도 짙은 아이들은 참기 힘든 외관의 위생 상태만 아니라면, 그저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동행한 이의 말을 빌리면 한 200번 씻으면 안아주겠다고 할 만큼 비위생적인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내 손을 잡아 끄는 모습이 당황스럽다.

이런 아이들이 인도 전역, 특히 빈곤한 중북부 지역 어딜가나 있다는 말을 들으며 그래도 처음인데 싶어 동전 몇 개를 건넸다. 동전을 건네받은 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정하게 바뀐 표정으로 휙 뒤돌아서 가버린다. 허걱, 괜히 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죄없이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참고로 인도 정부에선 관광객들에게 아이들의 구걸에 돈을 주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아이들의 삶이 외국인들에게 구걸을 하여 쉽게 돈을 버는데 익숙해 지지 않도록 말이죠).

a 외국인에게 유독 친절(?)한 인도 아이들

외국인에게 유독 친절(?)한 인도 아이들 ⓒ 이창욱

그렇게 쉽지 않은 인도에서의 첫 날이 저물어갈 무렵, 내가 묵을 아주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노이다'라는, 델리 주변에 한창 개발 중인 신도시인데, 아주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일산쯤 되는 곳이란다.

밖에서 겪었던 인도의 모습과 달리 2층으로 된 저택인 집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호화저택으로 치부될 만큼 좋은 곳이었다. 여기저기가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고, 집에는 밥을 하는 인도인 가정부와 운전과 잡일을 도맞아 한다는 인도인 일꾼들 그리고 주로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중국인까지 꽤 많은 식솔들이 있었다. 그저 타고 오는 항공기에 얼마간의 짐을 같이 실어 왔을 뿐인데, 이런 곳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다니. 도착부터 운수대통이라는 흐뭇한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a 델리에서 신세진 한국인 하숙집

델리에서 신세진 한국인 하숙집 ⓒ 이창욱

TIP 인도 여행에 관한 카페를 잘 뒤져보면 이처럼 인도 항공편에 짐을 부탁하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짐을 부치는데 드는 비싼 항공운임 대신 탑승객에게 허용된 수화물만큼을 가져와주면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인데, 잘만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져 여행객에겐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 유포터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국정브리핑, 유포터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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