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삼 대가 함께 찜질방에 갔어요

등록 2006.01.09 17:31수정 2006.01.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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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는데, 몸이 좀 찌뿌둥하고 피곤하면 찜질방이 떠오르곤 한다. 예전엔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탕에 들어가기도 하고, 뜨거운 한증막에도 들어가고 그랬는데 찜질방이란 것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찜질방을 즐겨 찾게 되었다.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풀고, 군것질을 하고, 함께 간 사람과 수다를 떨기에 찜질방은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찜질방을 재작년 여름, 유방암 수술을 한 이후에는 거의 가지 못했다. 나는 '유방보존술'이라고, 가슴은 그대로 두고 가슴 부위를 절개해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는데도, 수술 부위가 크다보니 조금 흉칙(?)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흉칙해 보이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수술로 인해 한 쪽 가슴 모양이 조금 변해서 눈에 띄게 표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 몸을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기가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한 번인가 용기를 내서 갔던 찜질방 목욕탕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치기엔 조금 소심한 내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수술한 지 시간도 꽤 흘렀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내 몸에 내가 많이 익숙해져서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아 자신이 좀 생겼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부터 엄마는 "동네에 찜질방이 새로 생겼는데 다녀온 사람들이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다들 좋다고 한다"며 함께 가자고 하셨다. 더구나 여름이는 할머니와 찜질방을 몇 번 다녀와서인지 찜질방에 가자고 하면 좋다고 잘 따라나선다. 엄마는 그런 여름이까지 들먹이며 함께 가자고 하셨다.

"나 지금 여름이랑 찜질방 가려고 하는데, 너도 올래?"
"지금 가려구?"
"그래. 너도 일 마치구 찜질방으로 와."
"어디? 지난번 거기 새로 생긴데?"
"그래. 거기로 가보려고."
"한번 가보지 뭐. 이따가 그럼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할게요."

이렇게 해서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찜질방에 가게 되었다. 엄마는 먼저 가 계시지 않고, 내가 끝나고 집에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여름이와 든든하게 저녁까지 드시고, 고구마와 달걀도 삶아 놓으셨다. 귤까지 챙겨들고 깜깜한 밤에 엄마와 여름이 나는 집을 나섰다.


a 바깥에서 바라본 찜질방 전경

바깥에서 바라본 찜질방 전경 ⓒ 김미영


a 찜질방 구경하려고 계단을 올라서 2층으로 가는중

찜질방 구경하려고 계단을 올라서 2층으로 가는중 ⓒ 김미영

새로 생긴 그 찜질방은 정말 꽤 좋았다. 많은 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 본 찜질방 중에서 제일 넓고, 깨끗했다. 찜질방의 구조를 좀 보자면, 먼저 찜질을 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모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황토방, 참숯방, 자수정방, 막, 종유석(얼음)방 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노래방에 PC방, 영화관까지 따로 있었다. 영화는 무료상영이었는데, 내가 간 날은 <너는 내 운명>을 상영하고 있었다.

a 여름이 뒤로 찜질방의 넓은 내부가 보이시나요?

여름이 뒤로 찜질방의 넓은 내부가 보이시나요? ⓒ 김미영

내가 너무 오랫만에 찜질방에 온 터라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이 찜질방에서 특이한 점은 '모임방'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아마 계모임 같은걸 조용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6인 이상 미리 신청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예약제이고, 따로 비용은 내지 않아도 된다.


a 모임방 문앞에 붙어 있는 팻말

모임방 문앞에 붙어 있는 팻말 ⓒ 김미영

또하나 특이한 점은 헬스장과 함께 수영장이 있다는 점이다. 야간에는 안전사고 때문에 사용할 수 없지만, 주간과 오후 10시까지는 마음껏 수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여름이도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수영복도 준비하지 못했고 시간도 늦어 안타깝지만 수영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구경을 다한 후에 엄마와 나는 번갈아 가며 찜질을 했다. 여름이를 한 사람이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찜질을 하는 동안 여름이는, 고구마도 먹고 달걀도 먹고 식혜도 먹고 하며 신이 났다. 그 넓은 찜질방을 마구 뛰어다니며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지 짐작이 간다.

a 여름이와 엄마가 찜질방에 누워 함께 여름이만의 "V"를 하고 계시네요 ^^

여름이와 엄마가 찜질방에 누워 함께 여름이만의 "V"를 하고 계시네요 ^^ ⓒ 김미영

어린아이가 찜질복을 입고, 찜질방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여기저기서 여름이는 먹을 것도 많이 받아왔다. 흥에 겨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러다가 지쳤는지 드디어 잠이 들었다.

a 놀다가 드디어 잠든 여름이 ^^

놀다가 드디어 잠든 여름이 ^^ ⓒ 김미영

여름이가 잠이 들자 엄마와 나는 좀 더 본격적(?)으로 찜질에 임했다. 나는 여러 방 중에서 '막'을 제일 좋아한다. 멍석 같은 걸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는 곳인데, 조금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상하게도 '막'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속까지 시원해진다.

찜질방에 가면 간혹 보기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동네에 있는 찜질방이라 그런지 그런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가족동반으로 온 집이 많아 보였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더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와 나 여름이. 이렇게 삼 대가 한 자리에 둘러앉아 군것질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하니 참 좋았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원없이 찜질을 해서 더 좋았다. 시원하게 사우나도 하고 말이다.

다음엔 아빠도 모시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아빠는 찜질방에 한 번도 와보지 않으셨는데, 아빠에게 '다음에 꼭 함께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셨다. 다음에는 온 식구가 함께 나들이를 하는 기분으로 찜질방엘 와야겠다.

덧붙이는 글 | 남편도 가게 끝나고 새벽에 찜질방으로 왔어요. 아침에 제가 출근해야 하는 바람에 6시쯤 찜질방에서 나왔는데 어스름한 새벽에 눈발이 흩날리더군요. 기분이 정말 상쾌하고 좋았어요 ^^;

덧붙이는 글 남편도 가게 끝나고 새벽에 찜질방으로 왔어요. 아침에 제가 출근해야 하는 바람에 6시쯤 찜질방에서 나왔는데 어스름한 새벽에 눈발이 흩날리더군요. 기분이 정말 상쾌하고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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