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 싫어!"

조카의 기상천외한 일기쓰기

등록 2006.01.11 15:07수정 2006.01.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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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숙제 중에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일기쓰기'였습니다. 어렸을 때,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는 저의 방학 숙제인 '그림일기'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가족이 크레파스를 들고 사방에서 색칠을 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누나들이 동생의 그림 실력에 맞게 그림을 그려주고, 옛날 신문들을 뒤적여서 그날 그날의 날씨를 확인했습니다. 거의 일기쓰기는 온 가족의 공동작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일기를 다른 사람이 본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보이기 위해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 사생활 침해라고 당당하게 항의하지 못하고 일기를 못 쓰면 교실 뒤에서 일기장을 입에 물고 벌을 섰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기쓰기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에게도 일기쓰기는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카는 일기를 통해서 가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곤 합니다. 이미 기사를 통하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첫 인터뷰는 조카와 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10일 저녁 인터뷰를 하러 큰 누나 집으로 놀러갔습니다. 조카가 소유하고 있는 '보드게임'을 조사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조카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확인 도장을 받는 일기장이었습니다.

조카는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엄마에 대해서 '저팔계같이 나를 괴롭힌다'라고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저팔계'라는 단어를 지워주겠다고 엄마와 협상을 벌인다고 합니다. 조카의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온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제목 : 일기쓰기 싫어!'

a 조카의 일기 원본

조카의 일기 원본 ⓒ 이인배

1월 6일자로 작성된 조카의 일기는 그날의 생생하고 치열한 전투 현장을 자세하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큰 누나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일(?), 한 시간 동안 일기를 쓴다는 이유로 책상에 앉아서 짜증만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기 주제를 몇 개 던져주었는데 시작도 못하고 공연히 연필만 부러뜨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못쓴 일기를 손대주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일기를 쓰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기쓰기를 놓고 조카와 큰 누나는 티격태격 옥신각신하였고, 결국 큰 누나는 공권력을 투입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결국 조카는 징징 울다가 매 한 대 맞고 눈물 콧물 뺀 다음 세수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누나는 홧김에 "일기 쓰기 싫다는 걸 써봐!"라고 말했습니다. 5분 정도 후에 결국 '일기 쓰기 싫어!'라는 제목의 일기가 탄생되었습니다.

요즘 큰 누나는 동생이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다고, 매일 <오마이뉴스>에 들어와서 기사를 읽고 모니터 해줍니다. 조카를 소재로 기사를 올렸을 때는, 모델료 협상까지도 은근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눈치입니다.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조카에게 큰 누나는 결국 외삼촌의 경우를 이야기해 주었다고 합니다.


"외삼촌이 어려서부터 일기를 열심히 쓰더니 컴퓨터 신문에 올리는 기사가 뽑혔잖아."

혹시 조카가 외삼촌이 어려서 쓴 일기를 보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완전범죄를 위해서 어렸을 때 일기를 복원하는 작업을 해야 할까요?

덧붙이는 글 | 이제부터라도 일기를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제부터라도 일기를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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