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만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창기
과거완료형인가 현재진행형인가? "그럴지도 모른다"인가, "그렇게 하고 싶다"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면서 했다는 탈당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청와대는 "끝난 얘기"라고 했다. 대연정 발언으로 당에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당 지도부에 탈당 얘기를 꺼냈으나 반대가 심해 그것으로 끝난 얘기라고 했다. 과거완료형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만찬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이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당·청간) 인식의 격차와 생각이 다르니 따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고, "지금은 일단 여러분의 얘기(탈당 만류)를 받아들이겠지만 지방선거 등을 치르고 당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지 못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했다고 한다. 지금 현재도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그 강도는? 얼핏 봐선 노 대통령의 애당심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대연정 발언으로 당에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탈당을 거론했고, "당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지 못할 때는" 탈당을 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는 당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그래서 탈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은 "그럴지도 모른다" 정도의 약한 수준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인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 그것이 신기루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당·청관계를 고부 사이로 비유하면서 "고부간에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가까이 있으면 감정만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서 그 구체적인 예로 "당은 정권 재창출이 지상목표인 반면 나는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 국정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역사적 의무가 있는데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가는 길이 다르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탈당 고려'와 '정치 내각'은 모순된 구상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정파 싸움에서 한 발 벗어나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실례로 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노 대통령이 탈당해 초당적인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대선에서의 엄정중립을 약속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당에선 차기 대선을 의식해 이런저런 요구를 할텐데 선거를 의식하면 국정과제를 올바로 수행할 수 없다"고 강조한 점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카드가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논외로 하자. 더 시급히 짚어야 할 게 있다.
노 대통령은 유시민 의원 입각과 관련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동영 고문과 내가 6년차이고, 정동영 고문과 유시민 의원이 6년차이니까 연달아 지도자들이 성장하도록 하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유시민 의원 입각에 국정수행 측면 외에 차세대 지도자 양성 목적이 깔려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충돌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선거와 거리를 두고 국정수행에 전념한다는 취지와 차세대 지도자 양성 목적은 부응하지 않는다. 차세대 지도자 유시민 의원이 2~3개월 단명하는 장관이 되지 않는 한 그가 입각한 내각은 정치 내각이지 중립 내각이 아니다(윤태영 비서관이 지목한 정세균 천정배 의원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그렇다). 노 대통령 스스로 차기, 또는 차차기 구도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리가 필요하다. 한편으론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정치 내각을 꾸리면서 또 한편으론 탈당을 고려하는 노 대통령의 구상은 모순돼 보인다. 차세대 지도자의 활동범위를 열린우리당으로 상정하면 해석은 얽힌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할 이유도,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탈당은 친노그룹의 '딴 살림 차리기'? 그리고 '정계개편'?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차세대 지도자의 정치 기반이 열린우리당이 아니라면? 모순은 해소된다. 이렇게 되면 탈당은 '딴 살림 차리기'가 되고 차세대 지도자 양성용 입각은 열린우리당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를 키우기 위한 사전 포석이 된다.
다시 말해 시간차는 있겠으나 노 대통령의 탈당이 종국에는 열린우리당 내 친노 세력의 '분가'를 동반하는 독자 세력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정계개편이다.
문제는 실행 여부다. 하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 요소가 수두룩한 게 세상사다. 노 대통령이 설령 그런 구상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조건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지방선거야 열린우리당 지도부조차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터이니 변수라고 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2.18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양하게 모색될 당내 계파간 합종연횡이다. 이 과정에서 조성될 세의 규모와 명분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그에 따라 정계개편의 속도와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아직은 유동성이 완전히 걷힌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언론이 점치고 있는 탈당 '경고'와 '실행'의 갈림길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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