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서울시향연주회, 예약 대기자만 800명

4개구 순회 신년음악회, 중랑·은평에서 먼저 열려

등록 2006.01.12 18:59수정 2006.01.1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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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향 첫 연주 중랑구민과 함께

a 중랑구에서 그 포문을 연 서울 시향의 신년음악회. 연주장으로는 부적합했지만 복도까지 보조의자가 채워진 객석의 열기는 뜨거웠다

중랑구에서 그 포문을 연 서울 시향의 신년음악회. 연주장으로는 부적합했지만 복도까지 보조의자가 채워진 객석의 열기는 뜨거웠다 ⓒ 곽교신

"정통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근본적으로 쉽지 않은 클래식 음악 소외 계층에 감상의 기회를 주자. 연주를 들려주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없애게 될 것이다."

이런 서울 시향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지난 10일 중랑구민회관에 이어 11일 은평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상임지휘자로 처음 가진 서울시향 신년음악회 연주회장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지역 구민들의 감동이 흘렀다.


이 연주회에 모인 관객들의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케스트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답지 않게 객석 분위기는 '우아'했다. 동네 어르신부터 꼬마들로 가득찬 객석은 정명훈이 전하는 베토벤에 푹 빠졌다. 영화 한 편 보는 동안에도 서너 번 들리던 핸드폰 벨소리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이런 연주회가 처음인 관객이 많을 것"이라며 기본 질서를 염려했지만 우려로 그쳤다.

입석 포함, 구민회관 입장 가능 관객수가 700명 선인 중랑구에서는 혹시나 빈자리를 기다리는 예약대기자만 800명이었다. 중랑구는 연주장에 붙어 있는 중랑문화원에 멀티비전을 설치해 주민들의 아쉬움을 달랬지만 이것도 150여 명을 수용하는 데 그쳤다. 은평구는 관내 케이블 방송으로 연주 실황을 생중계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a 연주장 밖에서 화면으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서민 대중의 마음. 중랑구민회관 밖 문화원 로비에 설치된 멀티비전은 스피커 음향이 지직거리고 화면 구도가 단조로워 안타깝기까지했다.

연주장 밖에서 화면으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서민 대중의 마음. 중랑구민회관 밖 문화원 로비에 설치된 멀티비전은 스피커 음향이 지직거리고 화면 구도가 단조로워 안타깝기까지했다. ⓒ 곽교신

공연장이 없는 구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었겠지만, 반사음 처리가 전혀 안된 중랑구민회관은 연주 장소로는 부적절했고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등 구청 측의 행사 기본 관리가 아쉬웠다.

반면 은평문화예술회관은 객석 수는 500석 규모로 비슷했지만 음향 처리도 비교적 우수했고 객석 반응도 수준급 이상이었다. 또 입장부터 퇴장까지 물 흐르는 듯 관리된 은평구청의 행사 진행도 음악회의 격을 높였다. 다만 케이블 방송 생중계를 위해 설치된 크레인 카메라가 연주자 위를 날아다니는 상식 외의 중계 방식은 눈에 거슬렸다.

이런 기회가 자주있으면 좋겠다


중랑구 주민 손남희(38)씨는 예매 당일 이른 아침부터 꼼짝 않고 컴퓨터 앞에 대기하다가 좌석 예약에 성공했다며 상기된 얼굴로 예약 무용담을 자랑했다. 은평구 주민 이준철(43)씨는 아내와 딸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클래식 연주회장을 찾았다면서 "온 가족이 이런 연주를 들으려면 경제적 부담이 꽤 될 텐데 귀한 연주를 무료로 듣게 되니 너무 감사하다. 감동적이었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며 역시 상기된 얼굴로 감상 소감을 말한다.

a 은평문화회관 연주에 앞서 가진 정명훈의 팬 사인회. 늘어선 줄에는 어린이 팬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 중에서는 제2, 제3의 정명훈도 나오리라.

은평문화회관 연주에 앞서 가진 정명훈의 팬 사인회. 늘어선 줄에는 어린이 팬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 중에서는 제2, 제3의 정명훈도 나오리라. ⓒ 곽교신

중랑구민 손남희씨의 기대나 은평구민 이준철씨의 감동은 우리 서민층 문화가 결코 감각적인 대중 연예에만 머물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클래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정통 클래식 소외 계층에게도 기회를 주자. 듣고 나면 좋아하게 된다"는 상임지휘자 정명훈의 생각은 옳았다.


해설을 맡은 오병권 서울시향 공연기획팀장은 "객석의 수준이 유럽 어느 연주회장 못지 않다"는 멘트로 중랑과 은평 구민의 열기에 화답했다. 오 팀장은 "교향곡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쳐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등의 맛깔나는 해설로 초보 청중을 이끄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앞으로 구로(16일), 노원구(18일) 연주를 남기고 있는 서울 시향의 신년 음악회는 일단 객석의 뜨거운 반응으로 출발하고 있다. 구로구는 구민회관이 아닌, 지역 교회와 협조해 만이천 석의 좌석을 확보해 타 구청에 비해 20배 이상의 객석을 확보했지만 이마저 일찌감치 동이 났다.

물론 구로구청의 만이천 석이 과연 모두 소화될지에 대해서는 타 구청에서도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이는 시민 대중의 고급 연주 문화에 대한 욕구 수준을 파악하지 못한 기우에 불과했다. 서울 시향의 신년음악회 입장권 구하기 무용담은 끝이 없으니, 이는 곧 그 동안의 갈증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용 연주장도 없이 대관으로 이리저리 떠도는 게 아까울 정도로 서울 시향의 사운드는 달라졌다. 하지만 당초와는 달리 전용 연주홀 개관이 상당이 늦어질 거라는 소식은 서울 시향 단원를 우울하게 했다. 하지만 그 우울함을 감추고 대중에게 달려가 베토벤을 들려준 서울 시향은 음악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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