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부모 노릇하기 힘드네

어린이집 경쟁이 그렇게 치열한지 정말 몰랐어요

등록 2006.01.12 18:27수정 2006.01.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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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이었다. 나는 출근을 하다 말고, 딸 여름이를 보내려고 생각중인 집 앞에 새로 들어선 어린이집에 들러야 했다. 내가 출근을 하다 말고 지각을 하면서까지 부랴부랴 그 어린이집에 들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 달 전쯤 집 바로 앞에 시립어린이집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네 살 된 여름이는 작년부터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생각이 있었기에 마음 속으로 그 어린이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집 앞이라 가까워서 좋았고, 또 시립이기 때문에 저렴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또 모 신학대학에서 운영한다고 하는 점도 맘에 들었다.

지금까지는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친정엄마와 아빠가 여름이를 보살펴 주셨다. 사실 내 욕심 같아서는 더 오랫동안 엄마와 아빠가 여름이를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부모님의 시간을 더 많이 빼앗아야 하는 불효(?)를 저질러야 한다.

지금도 부모님은 매일 등산을 하시는데, 여름이 때문에 늘 따로 가셔야 했다. 아빠가 먼저 다녀오신 날은 엄마가 나중에 가시고, 엄마가 먼저 다녀오신 날은 아빠가 나중에 가고 하는 식이었다. 그것뿐인가! 약속이 있어도 내 시간에 맞춰서 조정해야 했고, 내가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밤늦게까지 여름이를 돌봐주셔야 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특히 평일에 약속을 잡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작년부터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사실 내가 여름이를 맡기고 싶은 어린이집은 공동육아방식의 어린이집이었는데 이미 대기자가 꽉 차 있었다.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도 올려놓았지만 올해에는 나한테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다. 내년이 되어야 여름이를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집 앞에 어린이집이 새로 생기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모집날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모집을 시작한다는 날이 되기 며칠 전,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름이 어린이집 말이야, 일단 등록해야 되겠지?"
"그래야지."
"우리 전에 말한 시립어린이집 거기다 등록하자."
"그래, 그러자."

"나는 출근해야 하니까 아빠가 등록해줘."
"그러지 뭐. 몇 시부터지?"
"9시30분부터인데, 사람들이 일찍 가야 한대."
"그래? 몇 시에 가면 되려나? 7시~8시쯤 가면 되겠지?"
"그래 그쯤이면 되겠지 뭐."


그렇게 해서 남편은 그날 여름이를 엄마 집에 맡기고 아침 8시쯤 등록을 하러 가기로 했다. 나는 남편에게 등록 잘 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날 아침 7시 30분쯤 먼저 집을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나는 길에 어린이집을 들여다보니 안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게 아닌가. 너무 깜짝 놀라 출근을 뒤로 미루고 일단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대기하는 사람 틈에 끼여 줄을 서고 남편에게 사람이 벌써부터 줄 서 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등록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부모님들. 사진에 보이는 방은 삼세반과 사세반에 등록할 엄마아빠들이다.  내가 나온 이후에도 많은 엄마아빠들이 왔다고 하니 이보다 두배 이상은 더 많았을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등록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부모님들. 사진에 보이는 방은 삼세반과 사세반에 등록할 엄마아빠들이다. 내가 나온 이후에도 많은 엄마아빠들이 왔다고 하니 이보다 두배 이상은 더 많았을것 같다.김미영
"여기가 네 살 반 줄이 맞아요?"
"네~."

"그럼 혹시 줄이 어디부터예요?"
"여기 옆에 있는 줄부터인 것 같은데요?"

"와~ 진짜 많다~ 언제부터 오셨어요?"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럼 저 앞에 계신 분들은 몇 시부터 왔을까요?"
"사람들 하는 말 들어보니까, 저 맨 앞에 계신 분은 어젯밤부터 오셨다는 것 같던데..."

"네에? 어젯밤이요?"
"그래서 이불까지 가져왔잖아요."

잠시 후 남편이 세수도 못한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듯했다. 나는 출근시간이 늦어 남편에게 자리를 내주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회사에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막 등록하고 나오는 길이야."
"아 그래? 고생했네."

"고생은... 근데 네 살 반 몇 명 모집한다고 했지?"
"아~ 열네 명."
"그래?"

"우리 몇 번째로 등록했는데?"
"열여덟 번째인가, 열아홉 번째인가. 근데 우리 뒤로 스무 명이나 더 있어."

"와~ 진짜 대단하다! 우리도 잘하면 못 보내겠다, 그치?"
"일단 기다려봐야지 뭐."

걱정스런 마음에 시립어린이집 모집요강을 다시 읽어보니, 순위에 대해서 나와 있다.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있는데, 일단 1순위에는 가장 먼저 어린이집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맞벌이부부도 순위에 들어가 있는데 7순위이다. 그런데 만약 순위가 같을 경우 먼저 원서를 접수시킨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여름이가 그 어린이집에 입학하긴 힘들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부터 다른 곳을 또 알아봐야 하나. 아니면, 다시 원초적인 고민으로 돌아가 여름이를 한 해 더 부모님께 맡기는 불효를 저질러야 하나. 원아 모집에서 제외되면 얼마간은 또 고민에 빠져 지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육아문제는 늘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 집처럼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면 더 그렇겠지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 있어 '책임'이란 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책임'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육아문제는 늘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 집처럼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면 더 그렇겠지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 있어 '책임'이란 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책임'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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