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가미 슌이치, <마녀와 성녀>도서출판 창해
여성의 대표적인 두 이미지는 '어머니'와 '창녀'다. 여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 두 잣대는 모순적으로 사용된다. '이타적인 어머니'는 '뻔뻔스럽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이기적인 존재'로 비하되기도 하며, '비난받아 마땅한 창녀'는 어느 순간 '남성의 영혼을 구원하는 존재'로 찬미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 이미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어머니'는 성녀를 상징하고, '창녀'는 마녀를 상징한다.
이케가미 슌이치의 <마녀와 성녀>는 마녀의 특징과 성녀의 특징이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마녀와 성녀는 둘 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는데, 마녀는 악마의 환영술을 통해 환시를 보고, 성녀는 신을 통해 성스러운 환각을 경험한다. 마녀는 불가사의한 통찰력으로 타인의 마음이나 미래를 읽어낼 수 있고, 성녀 역시 그러하다. 둘 다 신체에 초자연적인 표시를 부여받는데, 마녀의 경우는 악마의 흔적이고, 성녀는 성흔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녀사냥으로 많은 여성이 화형대에 세워졌던 바로 그 시기에 또한 많은 여성이 성녀로 추앙되었다는 것이다.
마녀와 성녀의 특징이 유사하다는 것은 그 구분이 상당히 자의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저자는 대표적 사례로 잔 다르크를 제시한다. 그는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했으나, 죽은 뒤에 성녀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적 갈등, 사회 변화로 인하여 불안해진 공동체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교도인 여성들, 기존의 질서에 위협이 되는 여성들을 마녀로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