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주 그리고 자전거 -1

사랑한다는 것은 보고 또 봐 상처까지 보듬는 것

등록 2006.01.13 17:09수정 2006.01.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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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주에서 나와 함께 한 자전거 - 4(물)일 우도 '하우목동항'에서

제주에서 나와 함께 한 자전거 - 4(물)일 우도 '하우목동항'에서 ⓒ 최성

제주를 바라보며


여행은 좋은 것이다. 독서와 여행은 풍부한 감성을 불러오는 기회가 된다. 가장 좋은 여행은 걷는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여행은 스쳐지나갈 뿐 속살을 만나지 못하고 여행지와 내가 항상 객체로만 존재하게 된다. 심장을 이용하여 움직일 때, 서로 속살을 내밀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은 걸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에 속도를 더해 준다. 자전거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정의에 기꺼이 동감한다. 내 심장으로 움직여 가장 빠르게 길을 밟아가는 도구기 때문이다.

2005년 여름방학 때 4명(전교조목포초등지회 김운수, 서경오, 김원태, 최성)이 3박 4일에 걸친 제주자전거여행을 했다. 좋았다. 시원한 바다, 이국적인 풍경, 곳곳에서 우리 눈을 붙잡는 구경거리, 친절한 사람들. 힘들었다. 뜨거운 태양, 간간이 나타나는 오르막, 무미건조해 보여도 연속되는 아스팔트 길, 서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 엉덩이 아픔과 체력 부담. 그래도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제주를 떠나면서 아쉬워했다. 모두가 다시해보는 제주자전거여행을 꿈꾸었다.

겨울자전거여행을 이야기했다. 당장 4명의 모둠(대장 류훈영, 간사 최성, 김광헌, 김명종)이 꾸려졌다. 목포를 비롯한 서남부 지역에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오고, 추운 겨울 날씨에 우리가 제주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 있었으나 우리는 예정한 시각에 배를 타고, 제주에 가기로 결단하였다. 계획이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춥고 눈 쌓인 길에 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무모하다싶은 걸음을 길에 던졌다.

제주에서


2005년 12월 31(흙)일. 흐리고 비.
목포 - 제주항 - 애월항(샘터민박)

여행이 시작되는 날, 나는 항상 새벽에 일어난다. 준비해야할 목록을 점검해서 물건을 챙겨야하기 때문이다. 배낭을 다 꾸려 옆에 그날 입을 옷을 두고 목욕을 한다. 물속에서 여행에 대한 기대와 몸고생을 교차시키며 가슴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아뿔싸! 열쇠를 풀기위해 자전거에 갔으나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급한 김에 아들을 깨워 채근해도 촉박한 시간만 태웠다. 이른 아침에 펜치와 망치로 온 아파트가 울리도록 쿵쾅거리며 열쇠를 잘랐다. ‘어제 한번이라도 점검을 해야 했다’는 때늦은 후회와 함께 급하게 목포항으로 달렸다. 일행들은 이미 와있고, 새해 해오름을 제주에서 보기위한 인파로 북적댔다. 안면 있는 사람도 몇몇이 보였다.

배에 올랐다. 긴 고동을 울리며 배는 흐리고 거친 물살을 갈랐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제주에 가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제야 감기 몸살로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났다. 남편이라는 것이 귀찮게만 하다 정작 필요할 때는 없다.

신년 해오름 보기를 포기할 만큼 날씨는 궂었다. 무료한 시간을 긋기 위해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쳤다. 전혀 화투를 치지 않는 내가 연거푸 이겨 돈을 딴 것을 보면 우리는 분명 프로가 아니다. 갑판에 나가보니 눈보라가 거센 바람과 함께했다. 배도 예정된 시간보다 90분이 늦어졌다.

배에서 내려 제주에 몸과 자전거를 올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는 않다. 육지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본 우리에겐 마치 봄날 같다. 자전거타기를 미루기보다 계획 대로 오기를 잘 했다. 자전거를 빌리기 위해 용두암 주변에 있는 ‘제주하이킹(064-711-2200)’에 들러서 아예 중고 자전거를 하나 샀다. 좋은 자전거를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다.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제주에서 서쪽으로 돌기로 결정하였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항상 오른쪽 길을 선택해야 해변으로 빠진다는 원칙과 금릉에서 ‘분재예술원’으로 가는 중산간 도로의 분위기가 괜찮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검푸른 바다, 눈 쌓인 한라산, 맑은 공기, 검은 도로는 우리를 순하게 받아주었다. 심장이 견디는 속도로 제주를 밟아갈 것이다. 배가 늦게 도착한 데다 자전거 때문에 점심시간을 놓쳤다.

출발해서 바로 ‘전주횟집(712-1189)’에서 매운탕에 밥을 먹었다. 국물 맛이 개운하고 달았다. 밥을 먹고 있는데 궂은 하늘에서 기어이 비가 왔다. 식당에서 민박이 된다면 눌러앉고 싶었으나 다시 길을 나섰다. 여행이란 예상 못한 돌발 상황에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심난한 마음으로 비를 바라보다 정작 빗속에 들어오자 편해졌다.

도두봉과 이호해수욕장을 지나 하귀에서부터 애월항까지 해변도로를 달렸다. 오른쪽으로는 갈매기가 앉은 검은 돌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왼쪽으로는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 한라산 산록이 우리를 감쌌다. 공항에서 쉼 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이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며 우리 곁에서 아주 가깝다.

목표한 거리에 훨씬 못 미치지만 애월항에 있는 ‘샘터민박’에 여정을 풀었다. 너무 늦은 점심에 밥이 들어갈까 싶었지만 돼지고기 찌개를 끓여 아주 달게 먹었다. 평소에 비해 그만큼 운동량이 많았다는 것이다. 저녁에는 ‘해변횟집(799-7710)에서 방어회와 소주로 이번 여행을 자축했다.

2005년 마지막 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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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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