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예술원' 정원에 있는 비단잉어최성
‘생각하는 정원(성범영)’이라는 책을 통해 제주에 오면 항상 가보고 싶었던 ‘분재예술원(772-3701~3)’에 도착했다. 책을 보면서 대단하기는 하지만 분재란 나무를 사람의 힘으로 억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천박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은 놀라움, 그 자체다. 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세월을 견디면 능히 우주와 운명을 창조하는 감동이 전해온다. 나무의 성질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나무에게는 운명이 되고, 사람에게는 예술이 되는 경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나무와 서로 긴밀하게 이야기하여 깊은 정을 나누는 듯한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분재로 관리하면 자연 상태에서 훨씬 수명이 길어져 천년을 견딘다는 사실에 전율이 느껴졌다. 사람은 세계와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만물의 영장이다.
이러한 보물을 우리나라보다 분재 종주국이라는 중국에서 또 일본과 미국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했던 세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IMF사태 와중에 국내 종묘회사들을 줄줄이 외국에 넘긴 생각 없는 무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분재예술원’ 안에 있는 옹기뷔페에서 점심을 달게 먹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비를 맞는 길을 다시 나섰다. 가서 되돌아와야 하는 길임에도 ‘평화박물관(772-2500)’으로 향했다. 월림에서 사람들이 인공으로 파서 만든 일본군 진지라며 가보기를 권했고, 우리도 제주 곳곳에 있는 일본군 주둔 흔적에 관심이 많았다.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한다는 부담보다 계속된 내리막길이 주는 질주쾌감이 더 크다. ‘평화박물관’은 ‘가마오름’에 굴을 파서 만든 일본군 진지를 주제로 해서 만든 사설박물관이다. 일제시대 일본군들의 잔학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과, 진지에서 나온 물건들을 전시하는 건물에서 영상물을 보려는데,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피곤한 몸이 앉기만 하면 누워 자고 싶은 것이다. 박물관장님의 안내로 오름에 있는 진지 안으로 들어갔다. 바위처럼 단단한 마사토질에 곡괭이 자국이 선명했다. 일일이 사람 힘으로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들어 곳곳에 필요한 공간을 배치하는 형태였다. 이곳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복원된 공간은 전체의 1/10에 불과하고, 제주에 368개의 오름이 있는데 100개 이상의 오름에서 이러한 진지를 확인할 수 있단다.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위해 우리 땅을 전쟁의 불더미에 내어놓으려 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만 교묘히 강조하여 다른 나라에 생채기를 입혔던 제국주의 참상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아니 지금도 ‘다카기 마사오(박정희)’의 딸이 전교조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반대하여 장외집회를 열고 다니는 우리 현실이 더 무섭지 않은가?
식민의 역사를 극복한 것은 일본관동군 출신 장교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생채기를 입은 우리 민중이다.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일본군의 채찍 아래 곡괭이 하나로 자기 땅을 파서 일본군 진지를 만들었던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군대가 주둔해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벌어지는 미국의 전략에 우리 생존이 달린 피 같은 땅을 내줄 것을 강요당하는 지금은 미국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아직도 식민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빠르게 질주하며 내려왔던 길을 아픈 엉덩이를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올라갔다. 좋지 않은 날씨와 몸 상태가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차에 관심이 많고, 즐기면서도 ‘오설록차박물관’에서 오는 여유로움 편안함에는 이질감을 느껴 금방 나와 버렸다. 자전거보다 안락한 자동차를 타고 와서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는 것이 어울리는 장소이다.
창천에서 감귤농장을 하는 광헌 선생님 여동생 집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을 반복하다 상창에 도착했다. 가게구석에 있는 탁자에 덮어두지 않아 약간 마른 듯한 김치, 손님에게 도무지 신경을 주지 않고 알아서 하라는 주인, 조명이 없어 흐린 바깥 날씨가 그대로 투영되는 실내, 어렸을 때 ‘점빵’ 분위기가 나는 상창초등학교 앞 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허기지고 지친 몸이 말라빠진 김치와 삶은 계란에 마시는 막걸리를 빠르게 당겼다. ‘덕산’이 바라보이는 집에 오니 마중 나갔다 허탕 친 아이들이 외삼촌을 부르며 제일 먼저 반겼다. 유기농으로 재배된다는 귤을 크기 별로 선별하는 작업에 바빴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귤을 몇 개 먹고 누구랄 것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고통스러워하는 일행을 이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기를 이용하여 치료하고, 안마를 해주었다.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저녁에 집주인의 배려로 ‘용머리 해안’이 바라보이는 ‘바다목장횟집’에서 맛있는 회에 소주로 서로의 행운을 기원했다.
새해 첫 날이다. 제주의 참맛을 느끼려거든 오름에 올라보라는 도움말도 있었다. 그렇다. 여행은 느림과 되돌아봄의 미학이다. 빠르면 많은 것을 그냥 지나치거나 놓친다. 컴퓨터 때문에 얼마나 정신없어지고, 노동 강도가 세졌는가?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깊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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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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