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이란이 핵농축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이같은 핵프로그램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해 제재를 가했을 때 그 결과를 책임지라고 경고한 가운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오른쪽) 이란 대통령이 이란 측의 핵제안을 들고 유엔총회에 참석하러 출발하기 전 최고 종교지도자인 모하마드 모하마디 골파예가니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란이 나탄즈에 있는 핵 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핵 활동 재개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특히 그동안 안보리 회부에 반대했던 러시아도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 이란 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신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이들 나라는 1월 하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이란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결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보리로 넘어가면 이사국들은 이란에게 핵 활동 중지를 강력히 권고하는 경고성 결의안이나 의장 성명을 채택하고, 이를 이란이 수용하지 않으면 경제제재 등 강압적인 조치 행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더라도 이란이 굴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에 대해 강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고성 결의안에는 반대하지 않겠지만, 경제제재 등 강압적인 조치는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이란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은 석유 금수조치를 취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란 경제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출렁거릴 수 있다. 가뜩이나 국제 유가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는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란은 유엔 안보리 회부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이란을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란 정부 관리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리 알리 하메이니까지 나서 "이란에 대한 제재는 이란 젊은이들의 자주 의식의 고양을 가져왔다"며, 앞으로도 제재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갖겠다는 이유
이란이 자체적인 핵연료 주기를 갖겠다고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하에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포함한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NPT 4조에는 이러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어, NPT 회원국이자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al) 서명국인 이란의 주장은 적어도 국제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두 번째는 "언제까지 석유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3-4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이란이 왜 원자력이 필요하냐'며,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결국 핵무기 제조를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언젠가는 바닥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체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다.
끝으로 이란의 농축 프로그램 보유 문제이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전력 생산용이라면, 이란이 굳이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핵 연료를 외부에서 제공할테니, 이란은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NPT 회원국으로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핵 연료 주기를 완성하는 것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오히려 국제사회가 지원해야 할 사안이라고 맞서고 있다. 특히 이란은 외부의 핵 연료 제공이 "경제적,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반박 논리를 펴고 있다.
즉,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핵 연료를 외부에 의존할 경우 이란은 그 연료를 제공하는 국가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12일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강대국들이 핵 연료를 정치적, 경제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란은 핵 연료 주기와 평화적 핵 기술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란의 논리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세 번째이다. 이란의 논리에 대해 미국은 이란이 자체적인 핵 연료 주기를 완성하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나서거나 NPT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NPT 회원국이었던 북한이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에 나선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근본문제'는 미국의 이중잣대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작년 5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NPT 7차 검토회의에서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보유와 NPT 탈퇴를 아예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이란 등 비핵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고, 이에 따라 NPT 7차 검토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바 있다.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중심 축에는 '미국의 이중잣대'가 도사리고 있다. 이는 북핵 문제와도 연결된 것이다. 현재 NPT 비회원국 가운데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 세 나라이고, 2003년 1월 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핵무장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NPT 회원국인 이란은 자체적인 핵 주기 완성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과 이란에게는 '모든 옵션'을 언급하면서 핵 포기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의 핵무장은 묵인 내지 지원한 바 있고, 인도·파키스탄에는 아무런 압력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들 국가의 갈등 구조를 이용해 무기 수출을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NPT 비회원국인 인도와 핵기술 협정을 맺어 인도의 핵 활동을 지원하기로 한 상황이다.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이고 모순된 행태는 결국 핵 프로그램 보유의 준거가 '국제법의 준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친미냐, 반미냐', 혹은 '자신의 패권전략의 도움이 되느냐'는 미국의 판단에 있다는 강한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 부메랑이 되면서 북핵과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자체를 어렵게 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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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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