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부터 영어교육? NO!
난 정녕 무책임한 부모일까?

등록 2006.01.17 16:52수정 2006.01.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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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난 제 딸 복희입니다. 영어로 대화를 해 부모를 깜짝 놀라게 했죠.
일곱 살 난 제 딸 복희입니다. 영어로 대화를 해 부모를 깜짝 놀라게 했죠.김정혜
한 달 전쯤 어느 토요일 저녁, 남편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혼자 노는데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이 방에선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른 퇴근을 한 남편 탓에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은 덕분인지 휴일 저녁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그때 딸아이가 방에서 나와 제 아빠를 일으켰다.

"아빠, 우리 영어 놀이해요."
"영어 놀이? 영어 놀이가 뭐야?"
"영어 선생님이 아빠랑 이거 보고 해보랬어요."
"그래, 어디 보자."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얇은 책 하나를 남편에게 내밀었다. 교재를 받아든 남편은 몇 장을 넘겨보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지 어정쩡한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아이와 마주 앉았다.

"What do you eat?"
"Carrots."
"What do you drink?"
"Orange juice."

"어머, 우리 애가 영어에 소질 있나 봐"

정말 깜짝 놀랐다. 딸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영어 몇 마디에 우리 부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나 딸아이의 영어 발음은 도토리 키재기였지만 이제 일곱 살인 딸아이가 제 아빠와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사실에 내 가슴은 벅차올랐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고 난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복희 아빠, 우리 복희 정말 영어에 소질이 있나 봐. 어떻게 일곱 살짜리가 저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지?"
"이 사람 참…. TV에 영어 잘하는 애들 나오는 거 보지도 못했어? 저번에 보니까 서너 살짜리가 일상 대화를 영어로 하더군. 그런 애들이 정말 소질 있는 거지. 교재에 나오는 영어 단어 몇 개 안다고 영어를 잘하는 건가?"

"그런가? 하지만 그 애들은 일찌감치 영어 교육을 받은 애들이잖아. 우리 복희야 어린이집에서 한 달에 만 원 내고 영어 특강 받은 게 고작인데. 거기다 비하면 소질이 있는 거 아닌가?"
"넘겨짚지 마. 복희가 저 정도면 다른 애들도 다 마찬가지야. 아이를 망치는 건 결국 내 새끼가 최고인 줄 아는 부모의 자아도취거든. 그러니까 괜한 호들갑 떨지 마."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영어 특강 프로그램이 있다. 개인특성화교육의 하나로 원하는 아이들에게 한 달에 1만원을 받고 일주일에 두 번 영어 특강을 하고 있다. 그래도 자식 교육에 1만원이 아까울까 싶어 2년 동안 딸아이에게 영어 특강을 받게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저 놀이 삼아 일주일에 두어 번 접한 영어, 그 대단한 효과를 딸아이에게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린이집에선 수시로 영어 노래 테이프를 튼다. 아이들이 간식을 먹는 시간에도, 아이들의 휴식시간에도, 심지어 등원·하원 때 어린이집 차에서도….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어를 흥얼거리게 된다. 바로 자연스러운 접촉이었다. 덕분에 대다수의 아이들이 딸아이처럼 영어 단어 몇 개 흥얼거리는 정도는 된단다. 남편의 말처럼 그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는 것.


그런데 그저 놀이삼아 수업하는 어린이집 영어 특강 시간에도 출중한 영어 실력을 발휘하는 아이들이 몇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아이들은 따로 영어학원을 다니거나 또는 방문교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영어교육을 받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 "빨리 학원 보내야지"

요 며칠 아침마다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면서 엄마들의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바로 초등학교 1, 2학년에게도 영어조기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 때문.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민경이. 민경 엄마는 다분히 호의적이었다.

"지금까지 조기영어교육은 사교육 역할이었는데 이렇게 정부가 나서준다면 사교육의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경제적인 부담으로 사교육은 엄두도 못 냈던 형편인데 학교에서 영어조기교육을 시켜준다면 아이들이 그만큼 일찍 영어를 접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굳이 영어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모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영어학습체험을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이제 다른 아이들처럼 내 아이 학원 못 보내서 주눅들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영어학원 간판이 가득한 학원가.
영어학원 간판이 가득한 학원가.정선옥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태준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그건 민경 엄마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태준이 형이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잖아? 이제 4학년 올라가는데 학교에서 영어 가르친다고 학원 안 보내도 되는 거 아니야. 다른 애들보다 뒤처질까봐 안 보낼 수가 없어.

난 이번 정책이 어쩌면 사교육을 더 부채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시대에 영어 사교육은 어차피 필수거든. 학교에서 조기영어교육이 이루어진대도 사교육은 지금처럼 변함없이 시켜야 할 걸. 아니, 학교 교육에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마도 좀 더 나은 사교육을 욕심내게 될지도 모르지."

태준 엄마는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태준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올해부터 영어학원에 보내려고 해. 제 형이랑 집에서 방문교사에게 따로 배우긴 배우는데 그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초등학교 입학이라 봐야 이제 일년 남짓인데 지금도 늦었다면 늦었지."

태준 엄마의 자신만만한 열변에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태준이가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도 따로 영어 특강을 하는 걸로 아는데, 그거로 충분하지 않아?"
"그건 모르는 소리야. 어린이집 영어 특강은 그저 놀이일 뿐이야. 그리고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가 어디 있어. 공분데 해야지…. 뭐니 뭐니 해도 요즘은 영어 하나만 잘해도 어디 가서 뒤떨어지지는 않는 법이거든."

"그 집은 애들한테 들어가는 교육비가 만만치 않겠네. 대체 얼마나 들어가는 거야?"
"신랑하고 벌어서 밥 먹고 애들 공부 시키고 그게 다야. 공부 시키는 게 남는 거지 뭐."

멍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하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하나. 그 둘에 대한 태준 엄마의 교육적 열의에 민경 엄마나 나나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괜히 씁쓰름해지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둘이 벌어 밥 먹고 애들 공부시키는 게 다라니…. 어쩌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어조기교육까지야... 난 세상물정 모르는 부모?

요즘은 국제화 시대라고 해서 영어가 필수란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엄마인 나는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은 이제 막 학교라는 공동체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다. 우리말도 아직 익숙치 않은 그들에게 영어조기교육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공동체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그 안에는 어떤 규율과 법칙이 있는지, 또 새로 만난 친구들과 어떻게 잘 어울려 지내야 하는지, 또 그들의 숨겨진 재능은 과연 무엇인지,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 대한 탐색과 훈련이 이루어지는 게 바로 초등학교 교육 아닌가 말이다.

자식 공부시키는 데 전부를 건다는 태준 엄마나 빠듯한 살림살이에 학원을 못 보내서 그저 못난 부모라는 자책감만 든다는 민경 엄마나 자식을 향한 사랑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랑을 물질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이 실시되면 미취학 아동들이 조기영어학원으로 몰려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유치원생인 지금도 사교육 여부에 따라 영어 실력에 차이가 나는데 영어 조기 교육이 실시된다면야 말할 것도 없다.

일곱 살 난 딸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기회'로 주어졌지만 난 굳이 그렇게까지 영어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 왜? 일곱 살은 일곱 살로 자라기를 원하는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정녕 세상 물정 모르는, '무책임한(혹은 무능력한) 부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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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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