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 간판이 가득한 학원가.정선옥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태준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그건 민경 엄마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태준이 형이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잖아? 이제 4학년 올라가는데 학교에서 영어 가르친다고 학원 안 보내도 되는 거 아니야. 다른 애들보다 뒤처질까봐 안 보낼 수가 없어.
난 이번 정책이 어쩌면 사교육을 더 부채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시대에 영어 사교육은 어차피 필수거든. 학교에서 조기영어교육이 이루어진대도 사교육은 지금처럼 변함없이 시켜야 할 걸. 아니, 학교 교육에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마도 좀 더 나은 사교육을 욕심내게 될지도 모르지."
태준 엄마는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태준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올해부터 영어학원에 보내려고 해. 제 형이랑 집에서 방문교사에게 따로 배우긴 배우는데 그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초등학교 입학이라 봐야 이제 일년 남짓인데 지금도 늦었다면 늦었지."
태준 엄마의 자신만만한 열변에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태준이가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도 따로 영어 특강을 하는 걸로 아는데, 그거로 충분하지 않아?"
"그건 모르는 소리야. 어린이집 영어 특강은 그저 놀이일 뿐이야. 그리고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가 어디 있어. 공분데 해야지…. 뭐니 뭐니 해도 요즘은 영어 하나만 잘해도 어디 가서 뒤떨어지지는 않는 법이거든."
"그 집은 애들한테 들어가는 교육비가 만만치 않겠네. 대체 얼마나 들어가는 거야?"
"신랑하고 벌어서 밥 먹고 애들 공부 시키고 그게 다야. 공부 시키는 게 남는 거지 뭐."
멍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하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하나. 그 둘에 대한 태준 엄마의 교육적 열의에 민경 엄마나 나나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괜히 씁쓰름해지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둘이 벌어 밥 먹고 애들 공부시키는 게 다라니…. 어쩌면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교육은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어조기교육까지야... 난 세상물정 모르는 부모?
요즘은 국제화 시대라고 해서 영어가 필수란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엄마인 나는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은 이제 막 학교라는 공동체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다. 우리말도 아직 익숙치 않은 그들에게 영어조기교육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공동체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그 안에는 어떤 규율과 법칙이 있는지, 또 새로 만난 친구들과 어떻게 잘 어울려 지내야 하는지, 또 그들의 숨겨진 재능은 과연 무엇인지,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 대한 탐색과 훈련이 이루어지는 게 바로 초등학교 교육 아닌가 말이다.
자식 공부시키는 데 전부를 건다는 태준 엄마나 빠듯한 살림살이에 학원을 못 보내서 그저 못난 부모라는 자책감만 든다는 민경 엄마나 자식을 향한 사랑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랑을 물질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이 실시되면 미취학 아동들이 조기영어학원으로 몰려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유치원생인 지금도 사교육 여부에 따라 영어 실력에 차이가 나는데 영어 조기 교육이 실시된다면야 말할 것도 없다.
일곱 살 난 딸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기회'로 주어졌지만 난 굳이 그렇게까지 영어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 왜? 일곱 살은 일곱 살로 자라기를 원하는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정녕 세상 물정 모르는, '무책임한(혹은 무능력한) 부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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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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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부터 영어교육? NO! 난 정녕 무책임한 부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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