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자회담 이후 딕 체니 부통령과 조지프 국무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미국 강경파의 반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사진은 딕 체니 미국 부통령.로이터/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강경파의 반격이 9.19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이 채택된 다음날 미국 정부의 강경파들은 작심이라도 한 듯, 미국 언론을 통해 '공동성명 폄하하기'에 나섰다. <뉴욕타임즈>는 9월 20일자 신문에서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크리스토퍼 힐이 두가지 실책을 했다"며, 핵 폐기의 일정을 담지 않고, 경수로 문제에 대해 양보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다른 언론들도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공동성명에 대한 비판론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강경파들은 우라늄 농축 문제가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이와 관련해 힐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이라는 표현에 우라늄 농축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강경파들은 이를 명확히 했어야 했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 강경파들은 언론을 통해 공동성명 폄훼하기에 나서면서 '부실한 협상(?)'의 책임을 힐 차관보에게 떠넘겼다. 이는 공동성명의 주역이라는 힐이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다.
강경파의 반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경파들은 공동성명에 경수로가 포함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러나 중국의 압력에 밀려 이를 수용했지만, 곧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을 이용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공동성명 채택 직후, 힐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수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뜻밖에도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모두 없애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받을 때" 경수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바로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대북 신뢰 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에 복귀하고 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경수로 문제에 대한 선공(先攻)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서 나왔던 것이다.
문제는 왜 미국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경수로 문제에 대해 초강수를 뒀냐는 점에 있다. 이 의문은 "적절한 시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조지프 국무부 차관의 주도 하에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풀리게 된다. 조지프는 대북 협상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매파이다.
그가 의도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경수로 문제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힐에게 발표하게 함으로써,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6자회담 프로세스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딕 체니와 조지프를 주목하라
이후 딕 체니 부통령과 조지프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반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힐은 공동성명 채택 이후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자 11월에 방북을 추진했다. 그러자 체니는 "평양에 가려면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약속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평양에 가지 말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힐의 평양행은 2005년 5월에 이어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또 한가지 수법은 북한의 핵포기에 따른 '기대효과'를 크게 반감시키는 발언을 함으로써, 북한의 핵포기 동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일례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10월 하순 모스크바 방문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더라도 당분간 북한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한 금융제재는 6자회담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6자회담과 관계없이 대북 제재가 계속될 것임을 강력히 암시했다. 아울러 작년 여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과는 달리,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입을 통해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을 잇따라하고,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북한인권특사와 미국 대사 등 정부 관리를 대거 참석시켜 인권문제를 전면화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힐을 비롯한 미국 내 협상파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네오콘을 비롯한 강경파들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듯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12월 19일자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의 정책이 "외교적 협상에서 북한을 봉쇄하고 불법적인 외화 수입원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미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힐 수석대표가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다툼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유에스 & 월드리포트> 역시 최근호에서 체니와 조지프가 힐을 밀어내고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며 분석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맞춤형 봉쇄'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부시 행정부 초기 때부터 구상되었던 다양한 대북 제재 및 봉쇄 방안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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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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