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 안 보내면 양육비 지원도 없다?

[주장] 농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등록 2006.01.17 20:45수정 2006.01.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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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골마당에서 노는 아이와 아빠

산골마당에서 노는 아이와 아빠 ⓒ 이종득

며칠 전이었다. 이장님이 아침 일찍 찾아왔다. 요즘 느타리버섯 농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이장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두 살 된 딸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우리 동네 귀염둥이니까 건강하게 잘 커야지, 덕담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서류가방에서 신청서 한 장을 내놓았다. '농업인의 영유아 양육비 지원신청서'였다.

이장은 정부에서 농업인의 자녀에게 지원하는 것으로 한 달에 15만 원 가량이 지불된다는 내용을 설명했다.

나는 정부에서 그런 혜택도 받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분유 값과 기저귀 값 등등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고, 궁한 편이어서 잘되었다 싶었다. 이름과 주소 및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면서 나라의 보살핌을 받고 자랄 수 있는 우리 아이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장은 빈칸을 다 채운 서류 들고 면사무소로 가야한다며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틀 뒤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아내는 무언가에 실망한 얼굴을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말인즉슨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의 전화였는데, 우리 아이는 양육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그러니까 법인 시설에 위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했다. 아내의 말 그대로였다.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몰라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놀이방에 보내고 싶어도 아직은 너무 어리다고, 이제 겨우 1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인데, 어떻게 놀이방에 위탁을 하겠느냐고, 설령 놀이방에 맡기고 싶어도 산골마을까지 아이를 데리러 올 놀이방이나 어린이집도 없을 뿐더러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 50여 리나 되는 읍내로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올 수가 있겠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의 대답은 변함없었다. 무조건 법인 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양육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소 흥분한 어조를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농업인의 영유아 양육비 지원 사업이 아니지 않느냐고, 당신이라면 13개월 된 아이를 시설도 좋지 않은 놀이방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느냐고, 이것은 농업인의 영유아 양육비 지원 사업이 아니라 놀이방 지원 사업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담당 공무원은 내 말을 듣기가 불편했던지, 바빠서 길게 통화할 수 없다며 아무튼 놀이방에 보내지 않으면 지원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농업인의 영유아 양육비 지원 사업이라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의 자녀에게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만 더 확연해지는 것이었다. 놀이방을 보내야 지원해준다는 것은 농업인에게 그 돈이라도 받고 싶으면 싫던 좋든 상관 말고 놀이방에 보내라는 강제 사항으로만 생각되었다.

a 지난 여름 엄마와 개울에서 노는 아이

지난 여름 엄마와 개울에서 노는 아이 ⓒ 이종득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50여 리나 떨어진 읍내로 나가야 놀이방이 있는데, 그것도 영아를 받아주는 놀이방도 많지 않을뿐더러 시설이나 보육교사가 충분하지 못한 편이다.

다시 말해 보내고 싶어도 마음이 불안해서 보내기 싫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어느 부모가 이제 1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환경이 좋지 않은 시설에 맡기려고 하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은 분명 아닐 것이다.

나는 다시 군청 담당 공무원하고 전화 통화를 했다. 정부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더 이상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농업인을 위한다는 정책이라면 놀이방에 보내든 보내지 않던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농업인 자녀를 위한 양육비 지원 사업이 아니라, 놀이방 지원 사업으로서 농업인에게 지원 신청서를 받지 말고, 놀이방에서 지원 신청서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농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 신청은 만 0세~5세까지 지원하는 정부사업입니다.

덧붙이는 글 농업인 영유아 양육비 지원 신청은 만 0세~5세까지 지원하는 정부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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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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