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지금처럼 행복해라"

'테디베어 팜'에서 보낸 8살 둘째의 생일

등록 2006.01.18 15:23수정 2006.01.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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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지난 토요일(14일)은 둘째 딸의 생일이었다. 딸아이가 일 년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온 생일이다. 생일날이 되면 뭔가 멋진 일이 생길 줄 아는지 아이는 정말 생일을 애타게도 기다렸다.


아이가 하도 생일을 기다리니까 내심 걱정도 됐다. 생일을 위해 특별한 준비는커녕 완구점 가서 선물이나 하나 사주고 그냥저냥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아이의 지나친 기대를 지켜보면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기다리는데 시시하게 대충 넘겼다가는 아이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될 것 같아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생일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생일날 하고 싶은 일을 쪽지에 적어서 달라고 했다. 그럼 엄마가 참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적어준 쪽지를 보고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바란 것들이 정말 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방울과 풍선을 사달라고 적었다. 영화에서 봤던 대로 생일을 맞아 자기 방에 풍선과 방울을 매달아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솜솜이 2개와 오잉 2개, 콜라 한 병, 뿌셔뿌셔 2봉지, 그리고 인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선물은 이미 작년 생일을 치른 다음날부터 사주기로 한 약속이라 의무에 가까웠고, 나머지 과자들은 아마도 풍선으로 꾸민 방에서 언니와 함께 인형들과 파티를 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정말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고작 이 정도를 갖고 일 년을 그렇게 기다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날 아침 해가 드디어 솟아올랐다. 다른 날과는 뭔가 다른 날이 돼야 할 생일날.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 그냥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오고.”


천국이 따로 없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마냥 행복한 사람이 돼 있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속초로 갔다. 우리가 사는 양양에는 아이들 선물을 살 만한 완구점이 없어서 속초까지 원정을 나간 것이다.

마침 속초 들어가는 초입에 대형 완구점이 있었다. 곰 인형, 토끼인형, 말 인형, 꼬리 흔들고 ‘멍멍’ 소리까지 내는 강아지 인형을 비롯해 임진왜란을 재현해낼 수 있는 레고 등이 즐비한 완구점은 아이들에게는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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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작은 애의 흥분은 거의 극에 달해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행복감에 들떠 지붕이라도 뚫고 하늘로 올라갈 기세였다. 수많은 장난감이 있었지만 아이는 마루인형을 모아놓은 곳에서 발길이 멈췄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노란 머리 인형과 검은 발레복을 입은 검은 머리 인형이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그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못해 아이는 끙끙 앓았다. 둘 다 마음에 드는데 하나만 골라야 하니까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검은 머리 인형으로 골라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8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우리가 찾은 곳은 '테디베어 팜'이다. 속초 시내에서 미시령을 향해 가다 보면 대명콘도 못 미쳐서 왼편에 테디베어를 전시하는 '테디베어 팜'이 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게 곰 인형이다. 특히 우리 애들은 '곰돌이 푸' 마니아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도 애기 때 이모에게서 선물 받은 곰 인형을 갖고 놀 정도. 그런 아이들에게 곰 인형들의 세상에 간다고 하니 벌써부터 흥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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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테디베어 팜'은 두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는데, 한 전시관은 갤러리의 역할을 하고, 다른 전시관은 사진 찍기에 적합하게 꾸며져 있었다. 먼저 제1전시관으로 갔다. 다양한 곰 인형을 만날 수가 있었다. 피노키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어린 왕자 등 동화 속의 주인공이 모두 곰 인형이었다.

그리고 다른 벽면의 유리 상자 안에는 풍악놀이를 하고 있는 곰 인형이 보였고, 옆에는 암벽 타는 곰 인형들도 보였다. 그 규모도 수십 개의 곰 인 형이 한 작품을 이루는 곰 인형 집단 예술 작품의 수준이었다. 곰 인형의 크기도 어른 키만큼 큰 곰 인형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 정도로 작은 곰 인형까지 각양각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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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제1전시관에서 곰 인형이 연출하는 작품을 감상했다면 제2전시관에서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었다. 여기서는 곰 인형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다소 분주했다. 신랑 곰 인형과 신부 곰 인형 사이에는 푹신푹신한 의자가 있는데, 곰 인형 신혼부부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이밖에도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은, 피아노 치는 곰 인형 옆에서 사진을 찍는 등 제2전시관은 방문객이 사진 찍기 좋도록 공간을 잘 배치하고 있었다.

원래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사진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요란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평소의 넘치는 끼를 사진 찍을 때도 어김없이 표현하는, 생일을 맞은 작은 애는 역시 사진사를 자부한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쪽저쪽에서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한 채 사진 찍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마치 자신이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인형들 사이를 누비며 폼을 잡았다. 행복에 들뜬 표정의 둘째를 디카 액정화면을 통해 바라보면서 이런 바람을 가졌다.

“지금 이 순간처럼 올 해 내내 이렇게 행복하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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