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그 사이 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행주를 가져다 닦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번쩍 들어 주방 한 구석에다 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곤 밥통을 올려놓았습니다. 자로 잰 듯 장 높이가 어머니 허리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연습 삼아 밥 푸는 시늉을 해보셨습니다. 싱글벙글 연신 웃음을 흘리시는 모습으로 봐 아주 흡족하신 듯했습니다.
"장모님,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그럼 그럼. 누가 만들어 준건데. 하여간 우리 사위 솜씨는 여간 아니라니까."
"실은 쌀도 넣고 밥통도 얹고 하는 쌑통을 하나 사드리고 싶었는데. 파는 것보다 많이 엉성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신 뭘 사. 그리고 파는 것하고 이거 하고 어떻게 비기나. 이건 세상에서 하나뿐인 명품 아닌가. 명품!"
"네 명품요?"
"그렇지. 이게 바로 명품 아닌가. 쓰는 사람이 귀하게 생각하면 그게 바로 명품인 거야. 이보게. 고맙네. 두고두고 자네 생각하면서 잘 쓸게."
주방에선 장모님과 사위의 사랑에 불이 붙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그 말이 그 말일지라도 칭찬의 말은 영 질리지가 않나 봅니다. 아버지는 그새 노여움이 풀어지셨는지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 두 사람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을 봐선 안방에 놓던 주방에 놓던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신들 사위가 사랑으로 손수 만든 것이니 그저 가까이 두고서 사위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뭇해하시는 두 분을 뵙고 있자니 남편이 효도를 톡톡히 한 것 같습니다. 원가로 따지자면 채 만원도 되지 않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그 물건에는 장모님을 생각하는 사위의 마음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깃들어 있습니다. 효도건 사랑이건 마음과 정성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장 위에 놓인 밥통에서 밥을 풀 때마다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 그리고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았는데도 자꾸 닦아대고 싶구나. 또 손으로 한 번씩 쓰다듬어 보기도 하지. 그럴 때면 가슴이 뻐근하고 묵직한 것이 괜히 코끝이 찡해지곤 한단다. 하여간 여간 속 깊은 사람이 아니다. 애미 너도 신랑 하늘같이 생각하고 항상 잘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제 가슴 깊은 곳에 애틋함으로 남겨집니다. 효도! 늘 어렵고 힘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과 정성!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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