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 홍두깨,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널뛰기 대미외교가 어지럽다

등록 2006.01.20 09:44수정 2006.01.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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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진 후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진 후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오늘 새벽 1시쯤 긴급 뉴스가 타전됐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전략대화에서 "한국은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상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미 동맹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사항, 한반도 안위와 직결된 중대 사안은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먼저 짚어야 할 것

전략적 유연성, 그 자체에 대한 시시비비는 둘째 문제다. 먼저 수습해야 하는 게 있다. 벙벙한 어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제53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앞서 "최근 일부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둘러싸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제"라고도 했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한 달 뒤인 지난해 4월 정동영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시켜 청와대 외교안보팀을 조사하도록 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당시 정부 협상팀이 이를 수용하겠다고 합의해 놓고 후에 번복하지 않았느냐는 문제가 국정상황실에서 제기돼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 점검을 가졌다"고 공식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랬던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걸 지시 또는 용인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잘 돌아보면 급작스런 일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 감축, 이라크 파병 등 정치적 부담이 많은 한·미 동맹 현안들이 최근 2년여 동안에 모두 해결됐다면서 "해결" 항목에 전략적 유연성을 끼워넣었다. 오늘 합의를 보기 두 달 전에 이미 합의를 예고한 것이다.


"확고한 원칙"을 천명한 지 반 년 만에 태도를 돌변한 이유가 뭘까? 그 사이에 한·미 간에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걸까?

"한국 입장 존중" 달랑 한마디 뿐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합의 내용을 보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전략적 유연성 이행에 있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한국의 입장을 미국은 존중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돼 있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이것으로 안전판이 확보됐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다면 상황 인식은 안이하고 미래 전망은 위험하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언급했다는 "존중" 발언이 외교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갖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최소한의 표현, 즉 한국 정부와 협의 또는 합의한다는 언급은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을 문서로 보장한다는 얘기도 없다.

설령 그런 보장이 있다 해도 한반도 주변국이 받아들이는 감도와 대응은 한·미 양국의 합의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뭐라 하든 북한이나 중국, 더 나아가 러시아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화될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덜컥 합의를 해버렸다. 국내에서의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정부는 그 때마다 이 문제는 비공개 협상 대상이라며 말을 아꼈다.

공론화할 필요도 없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라고 한 마당이니 따지고 말고 할 여지도 없었다.

널뛰기 대미외교가 어지럽다

정말 어지럽다. 참여정부 들어 외교방향, 특히 대미관계에 대해서는 널뛰기를 하고 있다. 비단 이 번 뿐 만이 아니다. '자주'를 선창하던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찬미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미국의 은공으로 돌리며 찬미가를 불렀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터키를 방문했을 때는 정반대의 얘기를 했다. "한국 국민들 중에서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을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하자 논란이 일었다. 자주파냐, 숭미파냐는 논란이었다. 되돌아보자. 그 논란은 어떤 생산성을 담보한 논란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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