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하늘원장례식장에 최광식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였던 강희도 경위의 빈소가 차려졌다. 창문 너머로 강 경위의 영정사진과 관계자가 보인다.연합뉴스 이상학
'게이트'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윤상림 게이트 진상조사특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정치권의 속성을 고려하면 한나라당의 명명은 '과장법'의 산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눈 여겨 볼 것은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다. 두 신문은 오늘자 관련 기사에서 똑 같이 "게이트로 번지나"라는 제목을 뽑았다. 두 달 넘게 관련 기사를 쏟아내면서도 자제하던 단어를 전진배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일까?
두 신문이 '게이트'란 단어를 사전에서 끄집어 낸 계기는 최광식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인 강희도 경위의 자살사건이다.
<중앙일보>는 "윤상림 사건이 '게이트'로 번지는 양상이다.…(강희도 경위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 결정적 계기다"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윤상림 사건이 현직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의 죽음까지 몰고 옴에 따라 윤씨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강희도 경위 자살과 '게이트', 즉 권력형 비리사건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스스로 "경찰조직 보호를 위한 공명심 때문에 자살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고 전했을 정도다. 아직 '게이트'의 몸통인 권력 실세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윤상림 사건'이다.
이해찬 총리가 윤씨와 골프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고, 열린우리당의 전병헌 대변인이 윤씨와 돈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이것으론 '정황'을 구성하기에도 벅차다. 이해찬 총리의 경우 총리가 되기 전, 즉 평의원 시절의 일이고, 전병헌 대변인의 경우는 '급'이 낮다.
"청와대 전화통화·출입기록 내놔라" - "통화도, 출입한 적도 없다"
'게이트' 여부를 가릴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윤씨의 청와대 출입 의혹이다. 한나라당 '윤상림 게이트 진상조사특위'는 어제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윤씨가 구속되기 직전까지 청와대 최측근 인사 2명과 전화통화한 적이 있고, 청와대 인사들과 골프장을 드나들었다는 의혹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청와대에 전화통화 내역과 출입기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체 확인 결과, 전화통화한 적이 없고, 윤씨의 청와대 출입기록도 없다고 부인했다. 문 수석의 이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청와대의 설명과 이전의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출입기록 공개 거부 이유로 "사생활 보호"를 들고 있지만 행담도 사건 당시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과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의 면담 사실 등 출입기록을 선별 공개한 전례에 비춰볼 때 "사생활 보호"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그래서일까? <경향신문>은 "윤씨의 뒤에 훨씬 '센' 실제 몸통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거두지 않았고, <조선일보>는 윤씨가 청와대를 출입한 적인 없다는 문 수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출입 여부를 확인할 자료를 내놓아야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법조 브로커라는 윤씨가 희한하게도 돈을 준 게 아니라 받았고, 더구나 윤씨에게 돈을 갖다 바친 사람들이 전·현직 판·검사와 경찰수뇌부, 정치인 등 한결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란 점 때문에 제기되기 시작한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급기야 '게이트'란 단어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정 단계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의문형 제목이 그걸 반영하고 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 또는 확증이 없는 단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지방선거 앞두고, 야당에겐 호재 여권에겐 악재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이미 샅바 싸움을 시작한 터이니 상황은 미래진행형으로 전개될 것이고, 오가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진 '윤상림 사건'이다. 야당에겐 호재요 여권에겐 악재다. 그래서 샅바에 쏟는 손아귀 힘은 꽤 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낼 것 같지도 않다. 벌써부터 국정조사 얘기가 나오지만 그것의 생산성이 별로 없음은 이전의 다른 국정조사 사례에서 충분히 살펴본 바 있다.
관건은 역시 검찰 수사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전화통화 내역과 출입기록을 놓고 "내놔라" "없다"고 공방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다. 검찰이 나서 확보하면 된다. 검찰이 직접 청와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안 되면 다른 법적 방법을 동원하면 된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한 바 없다. 그래서 수사가 아직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미 자료를 확보해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한나라당처럼 '퇴짜'를 맞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중요 잣대가 하나 확보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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