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시오! 캐라가 일하는 곳한나영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캐라의 거짓 주장은 몇 가지 지적만으로도 금세 탄로가 날 만큼 허술했기에 나는 이 문제가 곧 해결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캐라의 주장 말고는 우리가 그에게 개수기 수리를 신청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느긋하게 마음 먹고 일단 캐라에게 주의만 환기시킨 뒤 사무실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이런 캐라의 부당한 주장을 <오마이뉴스>에 올릴 요량으로 당당하게(?) 제목을 뽑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린 봉이 아니야"
오마이 시민기자, 미국에서 본 때를 보이다
물론 오마이 시민기자가 아니어도 이런 정도의 부당한 사건은 누구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처럼 사소한 일에 얽혀드는 걸 싫어한다. 우선은 귀찮아서이고, 또는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대충 함구하거나 무시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편의주의가 비록 개인적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간혹 더 큰 부조리를 낳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사회악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는지라 나는 이번 사건에서 개인의 권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사건은 그렇게 내 마음같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캐라의 억지 주장은 너무나 단호했다. 그녀는 아무런 증거도 들이대지 못하면서 자기 메모만을 증거로 무조건 돈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22불50센트' 사건은 금세 해결되지 못한 채 며칠 더 묵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남편의 대학 국제 협력처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우리에게 별 불편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캐라 사건'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캐라가 뭔가 착각한 것 같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캐라가 도대체 얼마의 돈을 내라고 하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22불50센트"
"큰 돈은 아닌데…."
말끝을 흐리는 직원의 표정은 큰 돈도 아닌데 뭐 그렇게 속을 끓이냐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그 돈을 내고 잊어버리는 게 골치 아프지 않겠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건 그냥 돈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진실게임이에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는…."
캐라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신의 잘못을 내게 전가시키고 있는데 그걸 참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국제협력처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라고 했다. 사건이 커지고 있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이쯤되면 캐라 쪽에서 사과를 하고 없던 일로 할 거라고 말했지만 캐라는 뻔뻔했다.
결국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학교 변호사가 캐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캐라가 주장하는 '누군가'는 분명 내가 아닌 다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증언해 주었다. 왜냐하면 내 여권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캐라는 이를 수긍할 수 없다며 끝내 버텼다. 그래서 내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캐라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게 전화국 같은 데서 통화내역을 조회하면 될 게 아니냐."
인상좋게 생긴 여자 변호사 딜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면 비용이 훨씬 더 든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돈을 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신 앞으로는 절대로 전화로 신청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줘라. 이메일이나 직접 찾아가는 방법을 택할 거라고. 하여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엄마, '캐라 사건' 말이야, 말로 해결이 안 되면 여기서 발행되는 신문에 고발한다며…. 제목까지 써 두고 <신문고>를 울린다더니 왜 슬며시 빠지려고 해."
사실이 그랬다. 나는 캐라의 뻔뻔함을 보면서 '정직하지 못한 어느 미국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응,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많네. 변호사도 그렇고 학교 직원도 그렇고, 미국에 오래 산 정미 아빠도 그냥 참으라고 하고. 이러다가 소탐대실할 수도 있다고 아빠도 그러시고…. 이제 그만 조용히 지내자고 하잖아. 똥이 뭐,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사실 이번 결론은 엄마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어쩌겠니, 우리가 약자여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다음날 나는 다시 캐라를 찾았다. 그리고 따끔한 한마디를 해주었다.
"너, 여전히 내가 전화를 했다고 믿느냐?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결코' 안 했다. 네가 뭔가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 나중에라도 네 잘못을 깨달으면 그 돈 다시 돌려주기 바란다.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않기를 바란다(캐라,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문득 19세기 말,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었던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인 드레퓌스 대위를 떠올렸다. 물론 이깟 사소한 일로 그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는 게 언감생심,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억울한 드레피스 대위의 심정을 손톱만큼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미국에 오래 산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인들이 정직하다고 말한다. 아마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목격한 대학의 도서관이나 서점 앞 물건 보관소에서도 자신의 소지품을 전혀 주저하지 않고 내려놓는 학생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