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창남
하지만 내게 국밥보다 명절이 더 좋았던 이유는 바로 행여나 찾아올지 모르는 삼촌과 고모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하루에 한 번 오는 것도 힘들어서 사흘이 멀다 하고 결항이 되던 여객선이 명절만 됐다 하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왕복 네 번도 가뿐하게 바다를 가르며 보고 싶던 얼굴들을 부두 가득 내려놓았다.
삼촌, 고모, 이모,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작은애기, 큰애기. 내려놓는 것이 비단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일 년 가야 구경하기도 힘든 컬러텔레비전이며, 어른 키를 훌쩍 뛰어넘는 별이 세 개 그려진 냉장고, 게다가 귀가 멍멍해지도록 육자배기가락을 뽑아놓을 커다란 전축까지. 도깨비 방망이같은 이런 물건들이 섬마을에 선을 뵈는 것도 거의 명절 때였다. 출세한 아들이 사 준 냉장고에, 시집 잘 간 딸이 사주는 컬러텔레비전. 부두에는 늙은 자랑이 더 늘어졌다.
하지만 크고 매정한 여객선은 한번도 내 앞에 내 삼촌을 내 고모를 내려주지는 않았다. 혼자서 넘어오는 고갯마루는 어째 그렇게도 가파른지. 고모가 왔다고 자랑하는 지각대장 영우의 발걸음은 어째 저리 팔랑개비같은지.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꿈은 자식들이 얼른얼른 커서 명절에 사과 상자, 배 상자 앞세우고 여객선에서 일번으로 내리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찾아오는 친척이 별로 없었다. 고모도 있고, 삼촌도 있었지만 돼지막을 둘러쳐서 값을 매기고, 국밥을 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웃들 외에는 나를 닮고, 아버지를 닮은 그 일가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일가가 주는 용돈이 그리웠고, 일가가 사다주는 양말 한 켤레가 간절히 그리웠다. 친구들이 먹어보았다는 종합선물세트를 상상하느라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베개에 머리를 파묻던 그 잠충이가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그믐날 밤을 하품 한번 없이 지새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