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살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

인간의 어두움에 대한 상징이 가득한 연극 <사육제>

등록 2006.01.23 10:53수정 2006.01.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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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당선작인 연극 <사육제> 공연중 일부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당선작인 연극 <사육제> 공연중 일부 ⓒ 심은식

연극 <사육제>를 보고 나서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대부분의 연극이 그렇듯 이 연극도 사람이 나와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내용이 특이한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줄거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쟁 중인 어느 가상의 세계. 무대가 되는 어두운 지하실에는 공장에 다니는 딸과 그녀의 엄마, 이모가 살고 있다. 어느날 딸은 도망 중인 남자를 데려오고, 엄마와 이모는 먹을 것과 욕정을 위해 딸의 애인인 그 남자를 이용한다.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당선작인 연극 <사육제>의 내용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구성하는 연극적 상상력은 보기 드문 참신함과 깊은 통찰력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연극은 앞서 설명한 세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거짓과 유혹, 배신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작가와 연출가가 선택한 방법은 굉장히 음울하고 자극적이다. 조카의 남자를 유혹하는 이모, 애인들의 손가락을 모으는 엄마, 손목을 잘라버리는 딸, 먹을 것으로 시체를 구해오는 남자.

이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빛이 나는 플래시를 들고 있지만 오히려 그 빛 때문에 더 비참하게 보인다. 그들은 살기 위해 애쓰지만 그런 노력 때문에 더 고약하게 보인다. 연출을 맡은 김혜진씨는 이를 두고 삶 속의 한 '반복'이라고 표현한다.

a 연극은 세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거짓과 유혹, 배신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보여준다.

연극은 세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거짓과 유혹, 배신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보여준다. ⓒ 심은식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오히려 삶 속의 한 '반복'에 지나지 않아요. <사육제>에 유독 자주 나오는 '사랑'이라는 말은 그 '반복'의 변주이며 그 사랑이, 혹은 '사랑'이라는 말이 이들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요. 스스로 믿지 않으면서도 말이죠. 안과 밖, 여자와 남자, 빛과 어둠, 전쟁과 평화, 음식과 살덩이, 원형적인 이 낱말들이 이번 <사육제>의 키워드예요."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은 사람이 사는 것은 저렇게 끔찍하다는 무서운 진실로 이어진다. 삶의 이면이 갖는 잔인함. 그것이 이 연극의 정체다.

카니발? 카니발리즘?


a 연극에 등장하는 거울, 플래시 등의 도구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상징으로 작용하면서 연극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연극에 등장하는 거울, 플래시 등의 도구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상징으로 작용하면서 연극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 심은식

<사육제>라는 제목은 영어 카니발(Carnival). 즉 기독교의 사순절 금육기간 전에 고기를 먹으며 즐기는 축제를 뜻한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고기를 마음껏 먹는 축제는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굶주림과 어둠에 지쳐 서로를 파괴하고 갉아먹는다.

이는 마치 어감이 비슷한 카니발리즘(cannibalism - 인간이 인간을 먹는 식인풍습)과 가깝다. 원작자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이 과정을 잔인한 축제로 묘사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이제 의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의 살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로 옮겨진다.

이를 위해 연극은 다양한 상징과 소품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거울, 플래시, 닭고기, 라디오 등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상징들로 작용하며 연극의 흥미를 더해준다.

연극 속의 사람들, 또 그 연극을 보며 웃고 때로 마른침을 삼키는 우리의 살에서는 과연 어떤 맛이 날까? 단맛? 쓴맛? 그도 아니면 시고 떫은 맛일까? 답은 늘 그렇듯 자기 자신만이 아는 법이겠지만 말이다.

<공연정보>

공연일시: 2006. 1. 21(토) - 22(일), 24(화) - 26(목) 저녁 8시
장소: 충무로 영상센터 “오! 재미동” 소극장 (3,4호선 충무로 역사 내부에 위치)
입장료 : 5000원
문의: 02-2273-2392,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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