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집에 아이는 없고 송아지만 있습니다

[섬이야기10] 전남 고흥 나로도

등록 2006.01.24 10:45수정 2006.01.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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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엄마소와 아빠소가 떡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엄마소와 아빠소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마 옆의 집이 무너졌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지난 폭설 때문인지 아니면 바람 때문인지 송아지 가족이 사는 외양간은 무사했지만 옆의 헛간은 무너졌습니다. 그들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송아지를 보았습니다. 너무도 귀여웠습니다.


어린 송아지 이름을 '나롱이'라고 정했습니다. 고흥 나로도에서 태어난 작은 송아지라는 의미입니다. 나롱이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됐습니다. 주인은 송아지가 걱정됐던지 무너지지 않는 외양간 지붕을 손질하기 위해서 지붕에 올랐습니다. 텅텅거리며 망치질을 할 때 엄마소는 주인이 남은 집마저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김준
하지만 이내 안심이 되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주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롱이 바깥주인이 지붕을 손질하는 동안 안주인은 마늘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마늘이 유명한 고장입니다. 해풍을 맞고 자란 마늘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자란 것보다 높은 가격을 받습니다.

예쁘게 둘러쳐진 돌담이 있는 걸로 보아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작은 집 두 채가 있고 지붕은 양철지붕입니다. 나롱이가 살고 있는 집은 헛간으로 이용했을 법하고, 무너진 집에는 사람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졌지만 나롱이가 사는 잡은 그대로입니다. 마을로부터 약간 떨어져 길가에 지어진 이 집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듯합니다. 최근 이 마을에는 사람은 물론 가축도 새로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광주에서 3시간 가까이 달려온 이곳은 해상국립공원이며 한때 고기가 많아 팔도의 배들이 모여들던 곳이었습니다. 어장에서 삼치잡이하던 해들이 모여들던 마을 포구에 이제는 작은 배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김준
나롱이의 유일한 친구는 작은 강아지입니다. 주인이 가져다 놓은 강아지는 나롱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담집에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나롱이는 돌담집의 막내랍니다.

강아지의 집은 나롱이네 함석집 옆에 있습니다. 돌담과 함석 지붕이 얹어진 지붕이 잘 어울립니다. 낯선 사람이 다가서자 엄마소와 아빠소가 나롱이를 감싸고 서있는 통에 발견하질 못했던 모양입니다.


"엄마."
"저 사람들 왜 자꾸 왔다갔다 하며 우릴 쳐다보는 거야?"
"나롱아~"
"저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우리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야. 너도 도시 사람 처음 보지?"

엄마소와 아빠소와는 몇 차례 눈을 마주쳤지만 나롱이 녀석은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서너 차례 왔다 갔다 하자 나롱이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던 모양입니다.

김준
나롱이는 참 행복한 녀석입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칠 때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든든한 엄마 아빠가 옆에 있고 마음씨 좋은 주인이 늘 돌보아 줍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남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할 수 있고 겨울철에도 싱싱한 풀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나롱이 녀석은 섬마을 작은 언덕을 뛰어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송아지 티를 벗게 되면 돌담집을 떠나야할지도 모릅니다. 그 사이에 나롱이는 많은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겨울 해는 짧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게 눈 감추듯 숨어버립니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연말과 연초에 해를 보내고 맞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여운이 길지만 바다를 지나 섬 너머로 떨어지는 해는 짧습니다. 떨어지는 해를 보면 돌아오는 길에 빌었습니다.

'나롱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거라.'

김준
김준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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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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