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이 발견 되었나요?”
몽화의 물음에 갈인규가 고개를 끄떡였다. 실내에는 갈인규 뿐 아니라 구양휘, 광도, 혜청까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구양휘의 형제가 아닌 사람은 몽화와 무진권 목득 뿐이었다.
“차에서 모두 봉미독(蜂尾毒)이 발견되었소. 이상한 것은 다기에서 쏟아진 찻물에는 봉미독이 없다는 점이오.”
찻잔에만 봉미독이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독공(毒功)에 있어 절대고수가 아니라면 찻잔에만 하독하기 어렵다.
“단문주가 봉미독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말인가요?”
봉미독(蜂尾毒)은 벌의 침에 있는 독이다.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체질에 따라 치명적이 될 수도 있었고, 독을 사용하는 전문가라면 벌에서 빼낸 봉미독을 농축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벌에 쏘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단 한 방울만으로도 능히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었다.
“전혀 아니오. 직접적인 사인은 치명적인 급소에 박힌 매화침이오. 다만 몸이 약간 부어있는 것으로 보아 죽기 전에 봉미독에 중독된 것은 틀림없지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양이오.”
“미세한 양이라도 봉미독에 이미 중독되었다면 반응은 매우 느려졌겠군요.”
흉수가 살수를 전개할 때 피하거나 반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의미였다. 단세적 같은 고수가 왜 반항하지 못하고 당했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랬을 것이오. 또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마지막으로 차를 나누었던 인물은 차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이오.”
단세적 맞은편에 놓여있는 찻잔은 가득 따라져 있어 마신 흔적이 없었다. 이 사실을 지적한 갈인규의 지적은 아주 명백한 암시를 담고 있었다. 차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맞은편에 있는 자는 이미 찻잔에 봉미독이 있음을 알았던 것이고, 바로 그가 흉수라는 점이었다.
“아주 재미있군요. 너무 명백해 어리둥절할 지경이에요.”
몽화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다가 문득 옆에 서있던 무진권 목득을 향해 물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이 독혈군자 당대협이라 했나요?”
“그… 그렇소.”
갑작스런 물음에 목득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 뒤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구요?”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요.”
“호호… 정말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일이군요.”
몽화는 여전히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과장되게 웃었다. 그것을 본 성질 급한 구양휘가 물었다.
“뭔가 찾아냈소?”
“지금 상황은 아주 명백히 흉수가 누군지 가르쳐주고 있지 않나요? 독을 사용하고 암기까지 사용했어요. 더구나 찻잔에만 하독하는 솜씨라면 다른 인물이 있을 수 없죠. 또한 일반적인 매화침이라고는 하나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단문주의 사혈에 정확히 박혔어요.”
모두들 느끼고 있었지만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몽화의 말은 흉수가 누군지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구양휘가 물었다.
“그럼 당일기가 흉수란 말이오?”
당연한 물음이었다. 모든 정황이 당일기가 흉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몽화는 다시 교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호호… 그래서 우습다는 것이죠. 이 사건을 조사하면 누구라도 당대협이 흉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소첩이 아는 한 당대협은 그리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에요.”
“……?”
구양휘는 물론 그 천막 안에 있던 갈인규와 혜청, 그리고 무진권 목득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몽화가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당대협이 흉수라면 이렇게 뻔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의 하독 솜씨라면 독을 썼더라도 그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당대협은 흉수가 아니에요.”
그녀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흉수는 매우 치밀한 자였다. 단세적을 죽인 인물로 교묘하게 당일기를 흉수로 몰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은 단세적을 죽이고 또한 당일기 마저 흉수로 몰아 죽이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흉계였다.
“아마 오늘 단문주의 천궁시에 매달아 쏜 암기에는 봉미독이 발라져 있을 거예요. 이 사실은 나와 내기를 해도 좋아요. 하지만 봉미독을 사용한 것까지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흉수의 범위를 매우 좁힐 수 있죠.”
그러더니 문득 목득을 바라보며 물었다.
“단문주께서 봉미독을 사용했다고 말씀하지 않던가요?”
갑작스런 질문에 목득은 당황하는 기색이더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모르오.”
몽화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듯 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보고 있는 구양휘 일행을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목부문주께서 말씀하신 상황대로라면 분명 당대협이 흉수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말한 대로 그는 절대 아니에요. 자… 그럼 이제부터 다시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도록 하죠.”
그녀는 이제 확신을 가진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여기에는 많은 분들이 다녀갔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누가 있었느냐는 것이죠.”
“당일기라 하지 않았소?”
“물론이에요. 헌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요. 단문주는 모용가주 그리고 당대협과 같이 저녁식사를 했어요. 그 후에 자연스럽게 차를 마셨겠죠. 참….”
그녀는 다시 시선을 돌려 목득을 보면서 물었다.
“저녁식사 후 차를 다시 내온 것이겠죠?”
목득은 기억을 더듬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단문주께서는 유독 철관음(鐵觀音)을 좋아하셨다고 들었는데….”
“맞는 말씀이오. 문주께서는 철관음(鐵觀音)만 드셨소. 그래서 항상 가지고 다니시면서 직접 물을 끓이고 다기를 다루셨소.”
“그럼 차를 내온 것이 아니라 다기와 찻잔만 내온 것이겠군요.”
“그렇소.”
“많은 참고가 되었어요. 고맙군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구양휘와 좌중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리켰다.
“자… 일단 찻잔이 놓여진 위치를 보도록 하죠. 저녁식사 후 세 분은 여기에서 차를 마셨죠. 모용가주가 먼저 자리를 떴고, 당대협은 단문주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리고는 자리를 떴죠. 그렇다면 저 잔은 누구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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