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닭에다 무슨 짓을 했길래?

[주장] 탕수육보다 비싼 치킨 값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등록 2006.02.07 10:26수정 2006.02.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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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1만4500원이라고?"


모처럼 일찍 퇴근해 온 가족이 치킨이나 시켜먹을까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치킨 값이 1만4500원이랍니다. 사실 치킨 값이 상향평준화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치킨을 시켜먹은 지 꽤 오래됐던 우리 식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황해서 순간 "얼마요?"하고 되물을 뻔했는데 치킨 상자에 친절하게 영수증이 떠억 붙어있더군요. 저는 한 만 원 정도면 넉넉할 줄 알았거든요. 이미 주문한 거 무를 수도 없고 해서 온 가족이 치킨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그 비싼 치킨은 양도 적었습니다. 어머니께 스모크 치킨을 드리고 아내와 원재 그리고 저까지 한 조각씩 손에 들었더니 딱 한 조각이 남더군요.

a 닭은 진화하고 있다. 가격상승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닭을 선보이고 있는 교촌치킨, BBQ, 또래오래와 저가정책을 내세운 오마이치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닭은 진화하고 있다. 가격상승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닭을 선보이고 있는 교촌치킨, BBQ, 또래오래와 저가정책을 내세운 오마이치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실 언제부터인가 치킨이 고급음식화 되어가기 시작한 듯합니다. 교*치킨, 비*큐, **카나, 처*집, 오*이치킨 등등 가게 이름도 많더군요. 치킨 종류는 더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튀김닭이나 통닭이 전부였는데 후라이드, 양념은 기본이고 올리브, 골드 휭거에 골드윙, 바비큐, 간장양념, 스모크, 불닭 등등 정말 '닭들의 진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와, 정말 적다. 비싸고…."

순식간에 한 조각을 먹고 나니 참 허전하더군요. 입맛만 버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그래도 맛있잖아. 식용유도 좋은 걸로 쓴대."
"내 입에는 시장통 통닭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양도 푸짐하잖아. 배달만 되면 좋은데…."

올리브에 간장양념, 스모크... 닭은 '비싸게' 진화중


결국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물배를 채우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먹은 것 같지도 않게 닭 맛을 보고 나니 재래시장 통닭집이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시장통 통닭집에서 닭 한 마리 튀겨 달라고 하면 작은 건 육천 원, 큰 건 칠천 원을 받고 만 원을 내면 반 마리를 더 튀겨 줍니다. 양념 통닭은 직접 만든 소스로 맛있게 버무려 주지요.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닭고기는 그나마 자주 맛볼 수 있는 '고기'였습니다. 돼지고기는 동네잔치 할 때나 맛볼 수 있었고 소고기는 명절 같은 때나 멀리서 손님이 신문지에 싸서 갖다주시면 소고깃국을 끓여 먹곤 했지요.

게다가 저희 집은 누나가 넷, 저, 동생 이렇게 자식이 여섯에다 부모님까지 하면 여덟 식구였으니 돼지비계 한 점 맛볼 기회도 흔치 않았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으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죠. 그래서 선택은 언제나 닭고기였습니다. 시장에서 닭 한 마리 사서 찹쌀에 마늘 넣고 푹푹 끓여 백숙을 만들기도 했고 닭죽을 해 양을 더 불리기도 했죠.

a 시장통에서 옷을 벗고 진열되어 있는 닭고기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오리이고, 뒤쪽에 보이는 것이 생닭이다.

시장통에서 옷을 벗고 진열되어 있는 닭고기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오리이고, 뒤쪽에 보이는 것이 생닭이다. ⓒ 푸른깨비 최형국

가뭄에 콩 나듯이 어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시장 통닭을 사들고 오는 날이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버스에 튀긴 닭을 들고 타서 버스 안에 닭 냄새가 진동할 때면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그래서 닭이 들어 있는 누런 종이 봉지는 항상 제가 들었습니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튀김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저는 온갖 유혹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봉지를 살며시 열고 몰래 하나만 먹을까 숱하게 고민했고 그 유혹을 견디기 위해 1부터 100까지 천천히 세기도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개선장군처럼 닭튀김 봉지를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닭튀김은 같은 돈의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느낄 수 없는 포만감을 주었습니다.

생닭 가격 내렸어도 치킨 값은 그대로

그런데 '닭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광고 문구처럼 닭은 달라졌습니다. 닭 한 마리라고는 하지만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대형 할인점에 가면 생닭 한 마리에 5, 6천 원 하는데 거기에다 소스만 입혔을 뿐인데 가격은 천지차이입니다.

a 왜 돼지고기를 쓰는 탕수육은 싸지고 닭고기를 쓰는 치킨은 비싸진 걸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왜 돼지고기를 쓰는 탕수육은 싸지고 닭고기를 쓰는 치킨은 비싸진 걸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 강충민

작년 11월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산지 닭값이 29개월 만에 최고치인 17%나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치킨 값은 내릴 줄을 모릅니다. 때문에 치킨업계에서 가격 담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지요.

인터넷에는 생닭 가격은 내렸는데 왜 가공해서 파는 치킨 가격은 그대로냐는, 치킨 마니아들의 푸념 섞인 글도 있더군요. 이제 밤중에 출출하다고 닭 한 마리 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탕수육과 치킨. 집에서 시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탕수육은 1만2천~1만5천 원 내외였고 통닭은 6천~8천 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통닭은 탕수육보다는 그나마 자주 시켜 먹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예전보다 돼지고기 가격이 싸진 것도 아닌데 탕수육 가격은 많이 저렴해졌습니다. 요릿집 말고 일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배달시키면 적은 양은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도 맛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닭고기는 갈수록 맛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탕수육 따돌린 치킨 값, 도대체 왜?

한 포털 사이트에서 야식거리로 치킨과 탕수육 중에서 뭐가 좋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탕수육을 추천하더군요. 치킨은 너무 비싸다는 게 대부분 이유였습니다. 이제 치킨은 웰빙과 고급화라는 이름으로 점점 저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거 아세요? 이날 시켜 먹은 치킨 값 1만4500원으로 돼지고기 뒷다리를 사면 정말 양이 많습니다. 혹자는 살코기가 퍽퍽해서 맛이 없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맛있고 값싸기까지 해서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다음엔 꼭 돼지고기 뒷다리나 한 이만 원어치 사서 된장 풀고 푹 삶아 먹자고 의견 일치를 봤습니다.

"아빠. 우리 이제 부자 된 거야?"
"왜?"
"우리도 이제 치킨 시켜먹으니까…."

어이없는 원재의 이 말에 아내도 어머니도 저도 웃었습니다. 하긴 이렇게 가다 보면 치킨 한 마리 시켜 먹는 게 겁이 날 법도 합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치킨, 왜 이렇게 비싼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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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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