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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1만4500원이라고?"
모처럼 일찍 퇴근해 온 가족이 치킨이나 시켜먹을까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치킨 값이 1만4500원이랍니다. 사실 치킨 값이 상향평준화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치킨을 시켜먹은 지 꽤 오래됐던 우리 식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황해서 순간 "얼마요?"하고 되물을 뻔했는데 치킨 상자에 친절하게 영수증이 떠억 붙어있더군요. 저는 한 만 원 정도면 넉넉할 줄 알았거든요. 이미 주문한 거 무를 수도 없고 해서 온 가족이 치킨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그 비싼 치킨은 양도 적었습니다. 어머니께 스모크 치킨을 드리고 아내와 원재 그리고 저까지 한 조각씩 손에 들었더니 딱 한 조각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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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은 진화하고 있다. 가격상승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닭을 선보이고 있는 교촌치킨, BBQ, 또래오래와 저가정책을 내세운 오마이치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실 언제부터인가 치킨이 고급음식화 되어가기 시작한 듯합니다. 교*치킨, 비*큐, **카나, 처*집, 오*이치킨 등등 가게 이름도 많더군요. 치킨 종류는 더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튀김닭이나 통닭이 전부였는데 후라이드, 양념은 기본이고 올리브, 골드 휭거에 골드윙, 바비큐, 간장양념, 스모크, 불닭 등등 정말 '닭들의 진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와, 정말 적다. 비싸고…."
순식간에 한 조각을 먹고 나니 참 허전하더군요. 입맛만 버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그래도 맛있잖아. 식용유도 좋은 걸로 쓴대."
"내 입에는 시장통 통닭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양도 푸짐하잖아. 배달만 되면 좋은데…."
올리브에 간장양념, 스모크... 닭은 '비싸게' 진화중
결국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물배를 채우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먹은 것 같지도 않게 닭 맛을 보고 나니 재래시장 통닭집이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시장통 통닭집에서 닭 한 마리 튀겨 달라고 하면 작은 건 육천 원, 큰 건 칠천 원을 받고 만 원을 내면 반 마리를 더 튀겨 줍니다. 양념 통닭은 직접 만든 소스로 맛있게 버무려 주지요.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닭고기는 그나마 자주 맛볼 수 있는 '고기'였습니다. 돼지고기는 동네잔치 할 때나 맛볼 수 있었고 소고기는 명절 같은 때나 멀리서 손님이 신문지에 싸서 갖다주시면 소고깃국을 끓여 먹곤 했지요.
게다가 저희 집은 누나가 넷, 저, 동생 이렇게 자식이 여섯에다 부모님까지 하면 여덟 식구였으니 돼지비계 한 점 맛볼 기회도 흔치 않았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으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죠. 그래서 선택은 언제나 닭고기였습니다. 시장에서 닭 한 마리 사서 찹쌀에 마늘 넣고 푹푹 끓여 백숙을 만들기도 했고 닭죽을 해 양을 더 불리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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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통에서 옷을 벗고 진열되어 있는 닭고기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오리이고, 뒤쪽에 보이는 것이 생닭이다. ⓒ 푸른깨비 최형국
가뭄에 콩 나듯이 어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시장 통닭을 사들고 오는 날이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버스에 튀긴 닭을 들고 타서 버스 안에 닭 냄새가 진동할 때면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그래서 닭이 들어 있는 누런 종이 봉지는 항상 제가 들었습니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튀김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저는 온갖 유혹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봉지를 살며시 열고 몰래 하나만 먹을까 숱하게 고민했고 그 유혹을 견디기 위해 1부터 100까지 천천히 세기도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개선장군처럼 닭튀김 봉지를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닭튀김은 같은 돈의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느낄 수 없는 포만감을 주었습니다.
생닭 가격 내렸어도 치킨 값은 그대로
그런데 '닭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광고 문구처럼 닭은 달라졌습니다. 닭 한 마리라고는 하지만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대형 할인점에 가면 생닭 한 마리에 5, 6천 원 하는데 거기에다 소스만 입혔을 뿐인데 가격은 천지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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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돼지고기를 쓰는 탕수육은 싸지고 닭고기를 쓰는 치킨은 비싸진 걸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 강충민
작년 11월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산지 닭값이 29개월 만에 최고치인 17%나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치킨 값은 내릴 줄을 모릅니다. 때문에 치킨업계에서 가격 담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지요.
인터넷에는 생닭 가격은 내렸는데 왜 가공해서 파는 치킨 가격은 그대로냐는, 치킨 마니아들의 푸념 섞인 글도 있더군요. 이제 밤중에 출출하다고 닭 한 마리 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탕수육과 치킨. 집에서 시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탕수육은 1만2천~1만5천 원 내외였고 통닭은 6천~8천 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통닭은 탕수육보다는 그나마 자주 시켜 먹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예전보다 돼지고기 가격이 싸진 것도 아닌데 탕수육 가격은 많이 저렴해졌습니다. 요릿집 말고 일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배달시키면 적은 양은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도 맛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닭고기는 갈수록 맛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탕수육 따돌린 치킨 값, 도대체 왜?
한 포털 사이트에서 야식거리로 치킨과 탕수육 중에서 뭐가 좋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탕수육을 추천하더군요. 치킨은 너무 비싸다는 게 대부분 이유였습니다. 이제 치킨은 웰빙과 고급화라는 이름으로 점점 저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거 아세요? 이날 시켜 먹은 치킨 값 1만4500원으로 돼지고기 뒷다리를 사면 정말 양이 많습니다. 혹자는 살코기가 퍽퍽해서 맛이 없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맛있고 값싸기까지 해서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다음엔 꼭 돼지고기 뒷다리나 한 이만 원어치 사서 된장 풀고 푹 삶아 먹자고 의견 일치를 봤습니다.
"아빠. 우리 이제 부자 된 거야?"
"왜?"
"우리도 이제 치킨 시켜먹으니까…."
어이없는 원재의 이 말에 아내도 어머니도 저도 웃었습니다. 하긴 이렇게 가다 보면 치킨 한 마리 시켜 먹는 게 겁이 날 법도 합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치킨, 왜 이렇게 비싼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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