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 법륭사 2

등록 2006.01.26 13:50수정 2006.01.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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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재현한 호류지 금당 석가정토도 벽화, 당당한 부처님 주위에 제법 관능적인 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당나라와 통일신라에서 유행한 형태이다.

재현한 호류지 금당 석가정토도 벽화, 당당한 부처님 주위에 제법 관능적인 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당나라와 통일신라에서 유행한 형태이다. ⓒ 신병철

호류지 금당에는 불상말고도 세계적인 유물이 있으니, 금당벽화가 그것이다.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고 알려지고 있는 금당벽화는 안타깝게도 1949년 실화로 불에 그슬려 제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최대한 벽화를 복원하긴 했지만, 어두운 실내조명과 통제된 통로 때문에 하나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호류지금당벽화는 동서남북 아래 위 모든 벽면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방위에 따라 동쪽에는 석가정토도를 서쪽에는 아미타정토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벽과 남북의 벽에도 관련 불화를 그렸다.


a 불에 그을린 벽화, 호류지 금당은 1949년 실화로 크게 손상입었는데, 벽화는 대부분 이런 형태로 그을리고 말았다.

불에 그을린 벽화, 호류지 금당은 1949년 실화로 크게 손상입었는데, 벽화는 대부분 이런 형태로 그을리고 말았다. ⓒ 신병철

그런데, 이런 불화는 소실되기 전과 그슬린 모습을 토대로 복원한 그림이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삼국시기 불화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석가정토도를 보면 석가여래가 결가부좌한 자세로 항마촉지인을 갖추고 있다. 좌우에는 아름다운 보살과 주변에는 18제자들이 그려져 있다. 좌우의 두 보살은 상당히 육감적일 뿐만 아니라 몸을 3번을 굽힌 3곡자세이다.

중국 서역 돈황의 석굴벽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수나라 이전의 그림들은 상당히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고, 당나라부터 육감적인 부처와 보살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불상들을 봐도 그렇다. 통일신라 이전의 불상들은 대단히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어 육감을 느끼기 힘들다. 반면 통일신라 이후의 불상들은 옷이 대단히 얇아 몸매가 드러날 뿐 아니라 심하게 몸을 약간 비틀고 있어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석가여래좌상은 얼핏 석굴암의 본존불을 보는 듯하다.

a 보살상의 비교, 왼쪽은 호류지 금당 관세음보살그림, 중간은 중국 돈황 45번굴 중당대의 보살조각상, 오른쪽은 돈황 57굴의 초당의 보살그림이다. 호류지 벽화는 아무리 봐도 중당의 보살상과 비슷하다. 초당의 느낌과는 차이가 난다.

보살상의 비교, 왼쪽은 호류지 금당 관세음보살그림, 중간은 중국 돈황 45번굴 중당대의 보살조각상, 오른쪽은 돈황 57굴의 초당의 보살그림이다. 호류지 벽화는 아무리 봐도 중당의 보살상과 비슷하다. 초당의 느낌과는 차이가 난다. ⓒ 신병철

아미타정토도를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근엄하게 정좌하고 있는 아미타불 좌우에 연꽃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과 염주같은 것을 들고 있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두 보살은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연지까지 바르고 화려하게 최고 패션의 옷을 걸치고 있다. 역시 허리는 굽혀 요염하기까지 한 자세를 취하고 배꼽까지 내놓고 있다. 금당벽화들 중의 보살그림들은 대동소이하다. 이런 모습은 적어도 당나라 초기는 지나 중기쯤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와서 쇼토쿠 태자를 위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재건 법륭사가 680년 이후에나 지었음을 상기한다면 이 그림은 적어도 이때 아니면 그보다 더 이후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사람들은 고대 인물 중에서는 7세기 전반에 죽은 쇼토쿠태자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일본서기의 기사들 중에는 황당한 내용도 많아 사실로 인정하기에 의문가는 점이 너무나 많다. 금당벽화도 쇼토쿠태자 영웅만들기에 동원된 느낌이 다분히 든다.

a 백제금동관세음보살상과 호류지목제백제관세음보살상, 재료의 차이를 감안하면 같은 양식의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백제금동관세음보살상과 호류지목제백제관세음보살상, 재료의 차이를 감안하면 같은 양식의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 신병철

호류지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국보로 삼아 소중히 여기는 관세음보살이 두 분이 있다. 금당에서 나와 뒤로 가면 대보장전(大寶藏殿)이 나온다. 대보장전에는 사찰 문화재가 가득 차 있다. 왠만한 박물관 수준이었다. 여기에 나무로 만든 백제관세음보살상이 큼직하게 서 있다. 왜 백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에도시대에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보살상은 키가 제법 크고 호리호리하다. 그런데, 이 보살상과 가장 닮은 우리나라 보살상을 골라라고 하면 부여 군수리절터출토의 관세음보살상을 꼽을 수 있다.


두 보살상은 연꽃 받침대에 올라 서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다. 겉옷이 아랫배에서 큰 X자형으로 교차하고 있다. 형식화된 겉옷이 아래로 늘여져 있다.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위로 들고 있다. 동일한 양식의 보살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백제의 보살상은 얼굴이 둥그스레한 백제 미인형이다. 일본과는 달리 정병 같은 것을 양손에 쥐고 있다. 일본의 백제관음상은 긴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중국 북위에서 만든 모습이다. 매듭의 위치도 조금 다르다. 결국 일본의 관세음보살입상도 중국과 백제 보살입상과 동일한 양식 아래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개성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a 호류지 동원의 몽전, 8각형의 금당이다. 평지에 제법 높게 2중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계단, 지붕, 건물높이와 크기가 적당히 어울려 멋지다.

호류지 동원의 몽전, 8각형의 금당이다. 평지에 제법 높게 2중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계단, 지붕, 건물높이와 크기가 적당히 어울려 멋지다. ⓒ 신병철

또 한 분의 관세음보살상은 호류지 동원가람(東院伽藍)의 중심건물인 몽전에 있다. 동원가람은 언제 건축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로서는 특이한 건물이었다. 8각형 건물인데, 동서남북에 올라가는 계단과 문을 달았다. 2중의 높은 기단과 적당한 높이의 건물은 보기에 아름다웠다. 몽전은 꼭꼭 문을 닫아 보살상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왜 관람시간에 철통같이 막아서 볼 수조차도 없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으로 볼 수밖에 없다.

몽전관세음보살상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서 뭔가를 감싸쥐고 있다. 키가 훤칠하고 입이 오목한 듯했다. 작은 신광과 두광을 갖추고 있고, 가사는 어깨에서 내려와 양손을 거쳐서 허벅지쯤에서 큰 U자를 이루고 있다. 하의의 끝이 바깥으로 쭉쭉 뻗쳤다. 하의의 모습은 북위 불상의 모습인데, 고구려 불상도 대부분 같은 모습이다.

a 몽전관세음보살과 서산마애삼존불의 관세음보살의 비교, 손모양, 옷주름 처리, 매듭 같은 점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점도 보인다.

몽전관세음보살과 서산마애삼존불의 관세음보살의 비교, 손모양, 옷주름 처리, 매듭 같은 점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점도 보인다. ⓒ 신병철

이 관세음보살상과 가장 유사한 우리나라 보살상은 서산마애삼존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상이라 보인다. 전체적인 모습이 동일하다. 하의의 끝이 바깥으로 뻗친 정도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언제부터 몽전에 모셔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백제관세음보살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에 백제나 고구려의 지원이나 영향 아래 제작된 불상이 아닐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조불공(造佛工)이 일본에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a 몽전의 회랑과 종탑, 종탑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종탑은 대부분 아래쪽은 기둥만 있는 누각이 많은데, 일본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종탑이 지니고 있다. 나름대로 멋있다.

몽전의 회랑과 종탑, 종탑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종탑은 대부분 아래쪽은 기둥만 있는 누각이 많은데, 일본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종탑이 지니고 있다. 나름대로 멋있다. ⓒ 신병철

이제 호류지 관람은 끝났다. 몽전 옆에 있는 중궁지에 들어가 본다. 비구니 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입장료 받는 사람만 여자이고 비구니들은 보이지 않는다. 정원에 작은 자갈을 깔아놓고 그것을 일정한 간격으로 긁어 무늬를 내놓았다. 저렇게까지 정리정돈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본인의 감각을 생각해본다. 중궁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다. 나라시대 이후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a 중궁지의 정원의 빗질 흔적, 일정한 간격으로 줄이 드러나게 빗질을 잘해놓았다. 저렇게 정리정돈이 철저해야 맘이 놓이는 일본인의 감각이 보인다.

중궁지의 정원의 빗질 흔적, 일정한 간격으로 줄이 드러나게 빗질을 잘해놓았다. 저렇게 정리정돈이 철저해야 맘이 놓이는 일본인의 감각이 보인다. ⓒ 신병철

만감이 교차한다. 이 시기의 문화재를 이렇게 많이 보관한 점이 놀라웠고 부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정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해석이 필요함을 느꼈다. 일본의 고대 문화재는 우리의 고대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이들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배치한다.

고대사에 일본이 불리한 부분이 있으면 직간접적으로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한반도는 그 통로 구실밖에 못했다. 한반도의 고대 문화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라는 게 일본의 고대사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인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의 고대사가 넘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 본다.

a 호류지 중문쪽 전경, 중문과 그 안에서 보이는 5층탑이 높이와 넓이가 적당히 어울린다. 좌우에 심은 소나무 대칭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류지 중문쪽 전경, 중문과 그 안에서 보이는 5층탑이 높이와 넓이가 적당히 어울린다. 좌우에 심은 소나무 대칭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신병철

덧붙이는 글 |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여행한 것의 기록입니다.

덧붙이는 글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여행한 것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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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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