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흡-흡-흡 싫어! 당신의 담배연기!

[해외리포트] 공공장소 실내흡연 금지한 '이탈리아 금연법' 1년

등록 2006.01.27 19:42수정 2006.01.28 03:39
0
원고료로 응원
a 정부주도의 '담배와의 전쟁'으로 자신의 집 또는 야외에서밖에 합법적인 흡연을 하지 못하게 된 이탈리아의 흡연자.

정부주도의 '담배와의 전쟁'으로 자신의 집 또는 야외에서밖에 합법적인 흡연을 하지 못하게 된 이탈리아의 흡연자. ⓒ 김은정

이탈리아의 흡연자 수가 줄었다. 50만 명이 담배를 끊었다. 2004년에 26.2%였던 흡연율이 1년 뒤인 2005년엔 25.6%로 감소했다. 이는 전체 흡연인구의 5%가 줄어든 결과다. 담배 판매율도 5.7% 하락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3년 만의 성과이자, 국가가 나서서 전 세계 최초로 모든 실내공간에서의 흡연을 금지시킨 금연법 시행 1년만의 일이다.

흡연자들을 향한 전방위 제재

이탈리아 사람들은 15세에서 17세 사이에 담배에 첫 불을 붙인다고 한다. 25세에서 44세 인구 중 남성흡연자가 35.9%이고, 여성흡연자가 31%를 차지한다.

2003년, 이탈리아 정부는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흡연율을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끊는 공무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기로 하는 한편, 의대와 약대 학생들에게는 담배의 악영향에 대한 과목을 수강토록 했다. 또 보건소와 병원에 흡연관련 질병을 안내토록 하고, 곳곳에 정부에서 제작한 금연홍보 광고문안을 배포했다.

이와 아울러 금연관련 시민포럼과 보건부 장관이 참석하는 금연법안 토론회를 수차례 열어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전국으로 방영했다. 연예인과 TV스타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흡연의 폐해를 알렸으며,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중계 프로에서도 금연토론이 이뤄졌다.

또 모든 언론과 방송에서 담배 선전과 광고를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허가받지 못한 곳에서 흡연한 사람에게는 고액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담배케이스에는 '라이트'나 '마일드' 등의 문구를 쓰지 못하게 했다. 이런 문구가 적힌 담배가 마치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대신 담배케이스에 '담배는 죽음이다', '흡연은 피부를 상하게 한다', '당신의 담배연기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라' 등의 금연문구를 큼직하게 집어넣도록 했다.


'담배와의 전쟁' 선포 2년 뒤 이탈리아 정부는 한층 더 높은 금연조치를 취했다. 2005년 1월부터 시행된 금연법이 바로 그 것. '이탈리아 금연법'은 전 세계 최초로 "닫힌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의 자유를 금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금연이 세계적 흐름이긴 하지만 이탈리아가 전 세계의 선두를 자처하면서까지 금연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탈리아 정부는 왜 금연 선두주자가 됐나

a 담배케이스에 큼직하게 쓰여진 경고문구들.

담배케이스에 큼직하게 쓰여진 경고문구들. ⓒ 김은정

발단은 한 재판이었다. 간접흡연에 시달리던 안나마리 루포라는 여성이 직장 내 간접흡연으로 건강이 악화돼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며 직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로마법정은 2003년 2월, 루포의 직장인 로마은행에 간접흡연으로 인한 배상금 1만5천 유로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법이 최초로 인정한 경우였다.

이 판결 이후 이탈리아 정부의 흡연규제가 본격화됐다. 개인생활 영역에서는 흡연권리를 규제할 수 없지만 공동생활 구역에서 만큼은 국가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 특히 금연법은 흡연자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함으로써 담배를 끊도록 돕고, 비흡연자들을 담배의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보건부 산하기구인 질병예방국은 금연법을 추진하면서 전문가들을 이용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신체의 여러 기관 중 담배 연기에 노출되어 있는 부위는 호흡기관과 심장인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같은 공간에서 담배연기를 마시면 신체에 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금연법 시행 이후 이탈리아 바나 식당 내 통풍기가 부착된 흡연실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담배 한 대당 2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특히 임산부나 아이(12세 이하)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될 경우, 두 배인 500유로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또 아파트의 계단, 로비 등 시민들이 이용하는 닫힌 공간에서의 흡연도 금지됐으며, 1인 이상이 사용하는 사무실과 공장 등 일터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흡연실을 따로 설치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이조차 까다로운 조항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흡연실을 원하는 업소나 일터는 이 법이 시행된 이후 120일 안에 정부가 제시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흡연실은 업소의 2분의 1을 넘지 않아야 하며, 간접흡연자가 통행할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흡연실에는 필터를 갈아 끼울 수 있는 통풍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것도 정부가 제시한 규격에 맞아야 한다. 통풍기는 흡연자 1사람당 30리터의 산소를 제공할 수 있는 규격이어야 하는데 이 규격에 맞추려면 업소나 일터에서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가로세로 3미터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정부는 흡연실이라는 명목아래 업소에 조금의 자유를 주는 듯하지만 업소가 통풍기를 설치하고 흡연실을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자해야 하고, 또 계속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소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업소 주인은 업소 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금연을 권유하고 흡연 시 고발할 책임도 갖고 있다.

국민들은 대찬성, 흡연자들은 '떨떠름'?

정부 주도 '금연법'에 대한 네티즌 찬반

이탈리아 웹 사이트 '케이타'에 올라온 금연법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

"나는 시가를 피우는 사람이지만 이 법에 찬성한다. 올바른 시민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의 권리를 생각해서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을 굳이 법으로 규정한 것은 시민정신의 부족이다." - 줄리아노

"16살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지금 41살이다. 간접흡연이 심장에 악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담배케이스에는 이미 니코틴과 타르의 함유량을 표시하고 있다. 아마 몇 년 안에는 탄소 산화물의 양을 적을 것을 권고할지도 모른다. 기름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모든 차와 오토바이가 많은 양의 탄소 산화물을 내뿜고 있는데 암이 간접흡연만으로 온다니? 그러면 공장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다른 방법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굳이 담배연기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비흡연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파브리지오

"자동차 매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산화물도 큰 문제지만 지금까지 자동차 배기통에 코를 틀어막고 숨 쉬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다. 비바 이탈리아!" - 바갈리오

"이 법에 정말 감사드린다. 어느 장소나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필요한 법을 쏙쏙 만들어 내는 다른 유럽 국가들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이 법만은 이탈리아가 선수를 쳤다." - 레오나르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금연법에 찬성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금연 보다는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흡연실을 따로 만들도록 정부가 지원했다면 누구나 권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파트리지아
정부 주도의 강력한 금연조치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탈리아 여론조사기관인 도사(doxa)가 2005년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149개 도시의 흡연자와 비흡연자 31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민 10명 중 9명이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실제 이탈리아의 웹 사이트 '케이타'에 올라온 금연법 관련 네티즌 반응도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박스 참조>

그러나 공공장소와 달리 일터에서 흡연자들이 금연법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장소에서 금연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90%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반면, 일터에서 금연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인구는 69%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 비흡연자들은 더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 웹사이트 '케이타'에 의견을 올린 '데니'는 "공공장소 환경은 훨씬 더 좋아졌지만 사무실에서 이 법은 별로 효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여전히 임산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등 문제가 많다,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흡연자들에게는 담배케이스에 새겨진 금연문구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흡연자들의 12.2%만이 이 경구에 충격을 받아 담배를 덜 피운다고 답했다. 반면 충격을 받았지만 담배 수는 줄지 않았다고 답한 흡연자들은 47%로 가장 많았고, 경구로부터 어떠한 충격도 받지 않았다고 답한 흡연자도 40.8%로 나왔다.

세계로 번지는 '담배와의 전쟁'

그러나 어찌됐든 이탈리아의 흡연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보건부 산하 질병예방국 집계에 따르면, 1990년 32%였던 흡연자가 2001년에 28.9%로 감소했다. 또 담배와의 전쟁 및 금연법 시행 뒤에는 25.6%(2005)까지 줄어든 상태다.

a

ⓒ 김은정

이탈리아의 금연법은 외국으로도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미국 <시애틀 타임>은 2005년 10월호에서 '금연법 통과 이후 이탈리아 국민들의 습관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글을 소개하며 이탈리아 중부지역을 예로 들었다.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출입하고 숙식하는 공간이 무분별한 흡연자와 담배연기로 가득 찼었는데 금연법 시행 이후 법을 지키는 이탈리아 인들에 의해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커피숍, 식당 등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장소에서도 이 법을 제법 지키고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벨기에에 이어 올해 초 스페인 역시 금연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스페인은 100평방미터 이상인 공공장소와 사무실, 일터 등에서 흡연을 금지키로 했다. 영국 정부도 지난해 하반기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영국인의 72%가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식당, 일터에서의 금연조치에 찬성하는 답을 내놨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담배와의 전쟁'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