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56회

등록 2006.01.27 08:27수정 2006.01.27 08:27
0
원고료로 응원
고통이란 것은 계속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퇴색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몸이란 묘해서 처음에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일정시간 지나면 몸이 먼저 적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것은 몸이 적응할 시간을 늦추게 하여 고통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사라진 뒤 잠시 후에 다시 그러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을 하면 더욱 고통스럽다. 아무리 굳건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 해도 그러한 고통 앞에서는 이성이 마비되고, 신지를 잃기 마련이다.


“한 시진 후부터는 온몸의 혈맥이 부어오르고, 뜨거운 물이나 불에 덴 것 같이 전신에 수포(水疱)가 나타나게 되오. 또한 실제 뜨거운 물이나 불에 덴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오.”

당일기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부드러웠지만 그 말을 듣는 목득은 혼백이 이미 저승길에 접어 든 것과 마찬가지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저 자는 반드시 입을 열게 되겠군요. 허나 나는 그 정도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

좌중의 얼굴에 의혹스런 표정이 떠오르자 몽화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중에 변장술이 아주 뛰어난 사람을 알고 있나요? 음성이나 눈빛마저도 저 자를 쏙 빼닮을 수 있도록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당중(唐重)... 그 아이는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소.”


“아주 좋군요. 당대협은 지금 저 자를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당대협의 거처로 옮기세요. 되도록 빨리 저 자에게서 흉수가 누군지 알아내세요. 대신 당중소협을 저 자의 모습으로 변장시켜 이쪽으로 보내시고는 두문불출하세요. 마치 범인으로 몰려 당황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더욱 좋아요. 하지만 이런 내막은 당가 식솔들에게도 절대 알리지 말아야 해요.”

당일기의 얼굴은 처음에는 의혹스런 표정이었으나 이내 아주 감탄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몽화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구양대협은 이곳 삼장 이내에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고 알린 후 경비는 허술하게 해두세요. 물론 누가 스며들어도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이 안에 은밀하게 대기하는 것을 잊지 말구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구양휘는 광도를 힐끗 보며 말끝을 흐렸다.

“제마척사맹에 단문주를 죽인 흉수를 잡아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방조자가 더 있는지, 그리고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 기회에 모두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하죠. 흉수에게 방조자가 더 있다면 저 자를 죽이러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올 거예요. 흉수가 직접오든지, 아니면 그 방조자가 오든지 말이에요. 저 자를 죽여 입을 막아야 할 테니까요.”

“만약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 자는 정말 무서운 자예요. 이미 제마척사맹을 자멸하게 만들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요.”

그 말에 천막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침음성을 터트렸다. 단세적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몽화가 구양휘를 보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내가 주시하라고 부탁한 인물은 어떤가요?”

그 말에 구양휘는 퍼뜩 한 인물을 떠올렸다.

(모용화궁..... 유곡은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둔 것일까? 하기야 당일기와 함께 식사를 한 인물도 바로 그다..... 당일기가 나간 후 다시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지금까지 이상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소.”

“어렵군요. 하지만 이것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군요.”

몽화의 어조는 조금 전과는 달리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녀 역시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가부좌를 틀고 앉았지만 들끓는 기혈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신의 몸속을 휘젓는 이 광폭한 역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줄기 진기를 끌어올리기도 어려웠는데 자신의 몸속 어디에 이렇게 거대한 기혈이 존재했던 것일까?

자신도 알 수 없었던, 그리고 전혀 제어할 수 없는 이 힘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잠력을 유발시킨 후유증일까? 제어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현심경의 심법을 운용해도 전혀 다스려지지 않았다. 마치 몸속에 또 다른 무언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부수고 있는 것 같았다. 혈맥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가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것은 세맥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증거.

만약 머리 쪽까지 올라가 역혈되어 휘돌다가는 머리의 혈관이 터져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것이었고, 결국 반신불수가 되거나, 아니면 목숨을 잃을 터였다. 간신히 머리 쪽을 보호하며 내리누르고, 단전으로 유도해 보았지만 오히려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우욱-- 왝---!”

다시 한사발이나 되는 피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의 상체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역혈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보이던 그 때. 송하령으로 인하여 꺾었던 검을 다시 들어 풍운삼절과의 혈투를 벌리고 난 뒤에 온 위기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무리한 진기의 운용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이번 것은 잠력의 격발이었다. 더구나 그때는 내상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내상이 아니라 기의 폭발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송하령이 가지고 있었던 귀진환이라는 영약이 있었다. 허나 지금 이러한 현상은 영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의도에 조예가 깊고, 내공이 정순한 인물이 진기를 유도해 준다면 아마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인물은 찾기도 어려웠지만 더구나 이곳에 있을 리 만무했다.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본디 그가 가지고 있던 선천지기에는 이렇듯 광폭한 기운이 없다. 이것은 무언가 응축되어 있던 외부의 힘이 그의 체내에서 발작을 일으킨 것일지 몰랐다.

귀진환의 약효가 그 동안 모두 체내에 흡수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가 제어하지 못할 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공을 익히면서 사부가 준 이름모를 영약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약이란 본디 독과 같다. 그것은 완전히 체내에 흡수하고 그 찌꺼기를 배출해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그 방법을 몰랐다. 오랜 시일이 흘렀다면 자연스럽게 흡수되었을 터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광폭한 기운은 그러한 외부의 힘이 아닐지도 몰랐다. 본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광폭함의 발로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선(善)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악(惡)의 표출일지 몰랐다. 부드러움 뒤에 숨은 광폭함, 인내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이성(理性)의 저편에 있는 일탈(逸脫)의 본능. 옳고 그름에서의 그름일지도 몰랐다. 마치 밝은 빛이 비추는 곳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

이제는 더 이상 정체를 알 수 없는 광폭한 이 기운을 제어할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지만 그는 이제 굴복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지막 힘까지 짜내 버티던 모든 심력(心力)을 풀었다.

여하한 것이라도 존재하는 것에는 반드시 그 의미가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악이 존재하기에 선이 돋보이고, 그름이 있기 때문에 옳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선과 악, 옳고 그름 역시 구별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일지도 몰랐다. 구별하고자 하는 것마저도 편견이 아닐까?

그는 이 광폭한 기운에 맞서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광무선사의 화두와 현심경의 오묘한 심법구절과 그리고 만검이 준 깨달음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그는 전신을 가장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죽음과도 같이.....
(제 84 장 完)

덧붙이는 글 | 고향가시는 분들은 안전운행 조심하시고 설 연휴 편안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 연휴 끝나고 다음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것이지만 새해 인사는 꼭 두 번씩 하게 되는군요.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덧붙이는 글 고향가시는 분들은 안전운행 조심하시고 설 연휴 편안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 연휴 끝나고 다음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것이지만 새해 인사는 꼭 두 번씩 하게 되는군요.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