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덕에 명절이 힘겹지 않아요!

아직도 시집살이 한 번 시키지 않으신 시어머님

등록 2006.01.28 18:40수정 2006.01.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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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음식을 장만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는 어제부터 이른 휴가가 시작되었는데, 덕분에 오늘 한가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어제 하루는 집에서 쉬고, 오늘은 일찍 시댁에 가서 음식장만을 도와야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머님께서는 일을 하시는데 오늘도 밤늦은 시간에야 집에 오신다는 것이다.


시댁과 우리 집은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미리 가서 어머님을 기다려도 상관없는데 남편도 오늘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와 둘이만 있어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으신 모양이다. 어쩌면 나 혼자 일하게 될 것을 염려하신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좀 안 좋아진 이후로 어머님은 나에게 더욱 일을 시키려고 하지 않으신다. 어머님께서는 내일 아침 일찍 오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친구들은 나에게, 당신보다 늘 며느리인 나를 먼저 챙기시는 우리 어머님을 부럽다고 말한다.(참고로 우리 어머니는 나를 만나면 늘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쪽 해주신다^^) 나 역시 남편을 만난 기간만큼 만나온 어머님이 친어머님처럼 살갑고 그 관계가 참 소중하다. 시어머니라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어머님 역시 힘든 일이 있으면 힘든 대로,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대로 그렇게 서로 모든 걸 다 이야기하며 살아왔다.

그런 사이이다 보니 '고부갈등'이란 단어는 사실 어머님과 나에게는 거리가 먼 단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과 나의 인연 역시 벌써 십오 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처음 남편의 여자친구로 인사를 한 날 후덕한 인상의 어머님은 얼마나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시던지 오랜 시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님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결혼하고 처음 맞이했던 '설'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11월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 처음 맞이한 명절이 바로 설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설 전날 일이 끝나자마자 선물을 챙겨들고 어머님 댁에 갔다. 어머님은 이미 장을 다 봐 놓으셨고,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남편이 벌렁 눕더니 "아, 피곤하다" 이러는 것이다.

그러자 어머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가, 애비 베개 좀 꺼내주고 너는 여기서 전 좀 부치거라."

부쳐 놓은 것보다 먹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은 먹음직스러운 전
부쳐 놓은 것보다 먹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은 먹음직스러운 전김미영
나는 갑자기 부아가 났다. 그래서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며 어머님께 말했다.


"어머니, 저도 똑같이 일하고 왔는데, 저한테는 일하라고 하시고 왜 애비만 누워서 자라고 하세요~~."

어머님은 그때 나를 한마디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웃으시면서, "그래 그게 서운해? 애비야, 얼른 일어나! 너두 일어나서 전 같이 부치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에도 어머님은 남편과 나에게 자주 말씀을 하셨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미영이가 밥 해줄 때 바라지 말고 먼저 오는 사람이 따뜻하게 밥 해놓고 기다려라. 부부지간에 누가 먼저랄 것 없는 거야. 괜한 오기 부리지 말고 서로 생각하고 사랑해 주는 게 최고다."

그때는 어머님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님은 나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고 계신 것이다.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말이다.

통화 끝에 나는 어머님께 내가 음식을 장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그럴 것 없다고 하셨지만, 내가 만들지 않으면 어머님이 피곤한 몸으로 새벽같이 음식을 장만하실 것이 눈에 보이듯 뻔했기에 고집을 피웠다. 어머님은 많이 만들지 말고 한 접시씩만 해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사진 찍는다고 하니 엄마는 이쁘게 보여야 한다며 다시 가지런히 담으셨네요. ^^
사진 찍는다고 하니 엄마는 이쁘게 보여야 한다며 다시 가지런히 담으셨네요. ^^김미영
그래서 나는 어제 집에서 친정엄마와 함께 음식을 장만했다. 함께 장만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엄마가 손을 보셨고 나는 앉아서 엄마가 시키시는 대로 전만 부쳤다. 동그랑땡은 돼지고기를 갈아 갖은 야채를 섞어서 간을 보신 후 동그랗게 만들어 부쳤고, 동태와 버섯 그리고 고추도 부쳤다. 차례상에 올릴 김치전과 두부까지 다 부쳐 놓았다.

내일 새벽에 이렇게 만든 음식을 가져가면 우리 어머님은 또 얼마나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씀하시며 위해 주실지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남들 다 하는 일을 하고도 몇 배나 더 칭찬받는 나, 그렇게 칭찬해 주시는 우리 어머님이 계셔서 사실 난 명절이 그리 힘겹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아버님도 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저에게 늘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시어머니 태를 내신 적도 한 번 없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뵐 때면 그저 저를 늘 사랑해 주시는 어머님께 제대로 효도 한 번 하지 못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을 꼭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글로 대신합니다. 어머님,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덧붙이는 글 아버님도 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저에게 늘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시어머니 태를 내신 적도 한 번 없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뵐 때면 그저 저를 늘 사랑해 주시는 어머님께 제대로 효도 한 번 하지 못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을 꼭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글로 대신합니다. 어머님, 오래 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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