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시대는 진정 갔는가?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과 권인숙의<대한민국은 군대다>

등록 2006.01.31 09:23수정 2006.01.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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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과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함의한 저서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밖으로 끄집어 내기 어려웠거나 금기시되어 온 부분인 법조계와 군문화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이 두 책에서 속속들이 까발려진다.

<헌법의 풍경>은 소장 법학자가 짧은 법조계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우리 법조 문화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한 여성학자가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한 '군사화'의 속성과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획일화된 권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화의 초상

두 저서는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에 내재하는 획일화된 폭압과 억압의 일그러진 문화에서 한국 근대화의 왜곡된 코드를 찾아 낸다. <헌법의 풍경>은 그 동안 쉬쉬 되어 왔던 법조계의 비리와 권력 지상주의에서 오는 한국 법조계의 타락 양상을 여지없이 비판의 칼날로 도려내고 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여성의 시각에서 본 한국 사회의 '군사화'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획일화된 부성 중심의 완고한 폭력과 억압의 실태를 낱낱이 분석해 낸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 내재하는 남성 중심 혹은 부성 중심성 속에 억눌려 왔던 개인과 실존, 특히 여성 실존의 본질에 대한 부재를 역설한다.

한국 현대사는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질곡 속에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선언을 계기로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그 빛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기본 틀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백안시되었던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내재하던 부분들이 문제로 가시화된다. 두 저서는 이런 한국 사회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문제들을 아프지만 날카롭게 끄집어 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겠다.

법조계의 권력지향와 비리, 그 이면을 들여다보다


a <헌법의 풍경> 겉표지

<헌법의 풍경> 겉표지 ⓒ 교양인

<헌법의 풍경>은 소장 법학자의 한국 법조계의 비리와 서민과는 거리가 먼 권력 지상의 풍경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담은 양심 고백서라 할 수 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이 시를 통해 당시 일제 강점기의 시대에 대한 양심 고백과 아픔을 토로했던 것 같이, 순교도적인 저자의 양심 고백은 우리 법조 사회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비판에 가름한다.

뿐만 아니라 법이 약자 편이 아니라, 항상 강자의 편에서 그들을 저울질한다는 고뇌와 아픔 때문에 법조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고뇌에 찬 양심 선언은 읽는 이들의 가슴에 충분한 감동의 여운으로 다가오기에 부족함이 없다.


"피의자·피고인의 신병(구속여부)과 관련하여 많은 수임료를 받는 폐해는 지금 당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등을 쳐 먹는 야비한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형사 사법을 왜곡시키는 주범이기도 합니다."(37쪽)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국가 권력의 통제를 생각하기보다는 국가 권력을 누리는 쪽으로 자신의 역할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지요."(111쪽)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나라 법률가들의 현 위치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절들이다. 변호사들은 오직 돈에만 눈이 멀어 판검사에게 읍소하는 형식의 구시대적 발상과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의뢰인을 마치 죄인 취급하는 구태의연한 풍조를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직 법조인들도 달콤한 권력 지향에만 관심을 두지, 진정으로 국가라는 거대 권력에 비판적으로 다가서려는 정신이 없음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 내재한 '군사화'의 본질을 꿰뚫어 보다

a <대한민국은 군대다> 겉표지

<대한민국은 군대다> 겉표지 ⓒ 청년사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지니는 절대권력의 실상이 만들어 내는 폭력성에서부터 80년대 학생 운동에서 드러난 남성 중심의 획일화된 문화에서 오는 경직성, 그리고 최근 군문제와 관련한 첨예한 문제들을 여성의 입장에서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던져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저서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군사주의'와 '군사화'라는 개념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간다. 우선 한국이라는 사회에 존재하는 평화라는 개념 그 자체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명제라는 사실을, 국가가 가지는 절대 권력,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남성 우월주의와 부성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실상과 관련시키면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군사주의'는 군대의 존재와 힘의 부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군사화'는 이념 또는 가치 체계로서의 군사주의의 일상화·사회화를 일컫는다."(27쪽)

"이런 힘의 논리에 기초한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는 논리는 평화나 군사화와 관련한 세 가지 특수성을 낳는 이유가 된다. (중략) 이런 사회에서 국민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가 방어의 역할이고 한국에서 이를 결정짓는 것은 징병제이다. 이런 정체성으로부터 여성은 배제되었고, 보조적이고 보호받는 존재로 여성을 규정짓게 된다."(53쪽)


위 책은 무엇보다 평화의 논리에 기초한 국가권력에의 폭력과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군대의 존재와 남성 중심 사회의 존립이 근대 한국을 형성한 핵심 기제였음을 역설한다. 여기에 나아가 80년대 학생운동도 보이지 않는 남성 중심의 위계 문화가 엄연하게 존재했음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위계질서나 보이지 않는 권위에 대한 순응성, 조직에 대한 충성도, 조직에 가족주의적인 가치관의 적용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특징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118쪽)

2004년과 2005년에 발간된 <헌법의 풍경>과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제시한 명저라 할 수 있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인 괴물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권력의 주름에 편승한 우리 일상의 구속과 억압의 파편들을 속시원하게 보여준다. 20세기 한국의 근대화가 나은 모순과 억압의 그늘에서 벗어나 21세기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의 단초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보고 싶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교양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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