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찻잔은 장철궁의 가슴에 닿기도 전에 가루로 산산조각이 나며 깨져버렸고, 장철궁의 옷깃조차 어찌해보지 못했다. 호신강기(護身罡氣)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회마가 냉소를 터트렸다.
"북명신공(北溟神功)이 극성에 달했군."
북명신공은 건곤대나이신공(乾坤大那移神功)과 더불어 백련교의 이대비공(二大秘功). 흡성대법(吸成大法)의 사악함을 제거하고 한 단계 발전시킨 무공이 바로 북명신공이다.
나직이 뇌까리는 것과 동시에 회마의 쌍수가 뒤집어지며 뿌연 회색기류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동시에 짙은 회색을 띠고 있던 그의 열손가락이 장철궁의 목과 가슴을 노리며 빠르게 공격해 들어갔다. 바로 회마의 독문무공인 회음조(灰陰爪). 철판이라도 종이장 찢듯 갈가리 찢어버린다는 가공할 조공(爪功)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손톱은 이미 날카롭게 세워져 녹색의 광망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회음조는 단순한 조공이 아니었다. 회마의 손톱에는 시독(屍毒)이 발라져 있어 스치기만 해도 금방 썩어 들어가고, 더구나 주위에 회음조가 뿌려대는 시독으로 인해 직접 부닥치지 않아도 시독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기회를 너무나 쉽게 버리는군. 하기야 벌레만도 못한 네놈들이 결국 하는 짓이란 몇 놈이 작당해 이따위 비겁한 암습이나 하는 것이겠지."
장철궁은 맹렬한 회마의 공격에도 비스듬히 상체만을 기울여 회마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저 피하기만 한다면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충분히 피해낼 수가 있었다. 굳이 쌍수를 들어 막아낼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옆에 있는 운령이었다. 그녀는 무공을 모르는 상태. 시독에 중독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네놈들이 이 따위 짓을 하면서 진정한 절대구마의 후인이라 할 수 있느냐? 진정한 구마의 혼(魂)조차 배우지 못한 하류잡배들…!"
장철궁의 말에 대군과 회마는 내심 부끄러웠다. 장철궁의 말대로 이런 암습 따위나 하는 짓은 과거 절대구마의 영명(榮名)에 먹칠을 하는 짓거리였다. 세인들은 그들을 악마라 했지만 진정으로 힘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인물들이었다. 전 무림이 그들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대군과 회마는 자신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절대구마와 같은 그릇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과거 절대구마가 가지고 있던 경천동지할 무학은 이미 대부분이 소실된 터였다. 그 정도만으로 지금의 무위를 가지게 된 것도 피나는 노력 덕이었다. 대군과 회마는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더욱 맹렬하게 공격해 들어갔다.
장철궁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뒤집자 장철궁의 상체를 뒤덮었던 회마의 조영(爪影)이 부서져 나가듯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동작 같았지만 가공할 내력과 함께 무엇이든 파괴해 버릴 것 같은 기류가 허공을 갈랐다.
파파파팍----!
사방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장철궁 쪽으로 밀려들었던 회색기류가 밀려나갔다. 그것은 옆에 있는 운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는데, 그 순간 장철궁은 기이한 느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 왜…?)
갑자기 내부에서 진기가 끊기는 것과 같은 느낌이 오며 대혈에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운령과 장철궁 사이에 서 있던 당새아의 소매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며 장철궁의 뒤 쪽 옆구리에 뭔가가 박혔다.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단검이라고 하기엔 길어 보이는 검이었다. 바로 성화대전(聖火臺展)이 열리던 날 유항의 손에 들려있던 요서보검(妖書寶劍)이었다. 손잡이에 칠채보석(七彩寶石)이 박혀있고, 성화령과 함께 백련교 성물이자, 배신자를 처단하는 집행(執行)의 검.
수백 년을 이어온 백련교도들의 영혼이 깃든 검이어서 그 검에 베일 때 죄과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전설 속의 검으로 장식용으로 쓰는 검 같았지만 그 날카로움과 예리함은 어떠한 명검이라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검이 바로 요서보검이었다.
요서보검은 장철궁의 몸에 완전히 박히지 못한 채 그 날을 드러내고 있었다. 통증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장철궁의 두 눈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듯한 무서운 광망이 뿜어졌다.
"감히 네년이…!"
장철궁의 왼손이 허공을 갈랐다.
퍼---퍽----!
당새아는 장철궁의 몸에 박힌 요서보검을 더 찔러 넣거나 회수하지도 못한 채 급히 몸을 날려 피하려 했다. 그녀의 몸놀림은 절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장철궁이었고 스치듯 어깨를 격타당하며 나동그라졌다.
"악---!"
그녀의 몸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벽에 처박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급히 피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정통으로 맞았다면 당새아의 몸은 제대로 형체를 갖추지 못했을 터였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입에서 핏덩이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비록 일류고수를 능가하는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단지 스쳤다고는 하나 그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순간 대군이 기회를 노리다가 빠르게 쌍장을 날렸다.
"요서보검마저 파고들기 어려운 몸이라니… 정말 곡주는 무신(武神)이로군!"
공격을 하고 있으나 진정 감탄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천년거암도 무처럼 잘라낸다는 검이 요서보검이었다. 그 검마저 호신강기에 막혀 다 파고들지 못할 정도라면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몸이 아닐 수 없었다.
정녕 무인으로서 존경하고픈 사내였다. 무신이 존재한다면 바로 장철궁이 무신이었다. 자신에게 완벽하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겨 준 인물. 허나 반드시 죽여야 할 상대였다. 대군은 붉은색 기류를 일으키며 맹렬하게 쌍수를 교차시켰다.
우당탕----!
그가 몸을 일으키며 장철궁을 공격해 가는 통에 가운데 놓인 탁자가 부셔져 나가며 탁자를 안고 운령이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부러진 탁자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우어 ---우 ---"
그녀는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무슨 짓들이냐고 호통을 치고 있는 말 같았지만 이미 그녀의 입인 당새아가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말은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장철궁은 요서보검이 몸에 박힌 채 슬쩍 그녀를 부드러운 기운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면서 자신의 몸을 뒤덮어 오고 있는 대군의 장영(掌影)을 마주쳐 갔다.
퍼--퍼-- 퍽---!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손 그림자와 손 그림자가 허공에서 무수한 격돌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장력과 장력이 부닥칠 때 들려야 할 폭음은 없었고, 오히려 둔중한 물체가 부닥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었다. 장력 따위로 상대를 어찌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온 내력을 실어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자 오히려 기가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으로 갈무리되어 오히려 공력을 싣지 않은 것과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혈투였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현란하다거나 빠르지 않았지만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치명적인 수를 교환하고 있었다.
회마마저도 호시탐탐 합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감히 틈을 파고들 수 없을 정도였다. 자칫 어설프게 자신이 끼어들었다가는 자신은 물론 대군마저 정신이 산란해져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연혼마공을 대성했군. 하지만 아직 완전치 못하다!"
퍼--퍽---!
한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 북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갈라졌다. 아니 대군이 두 걸음 뒤로 밀려나갔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대군의 무위가 아직 장철궁의 무위에 비해 한 수 뒤진다는 증거.
그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회마가 지체 없이 쌍수를 빠르게 엇갈리면서 장철궁의 하체를 노렸다. 몸을 지면과 수평으로 뉘여 일직선으로 파고 들어가는 비익탐조(飛翼眈操)의 형상.
어디 그 뿐이랴! 물러섰던 대군이 용수철 튕기듯 다시 빛살처럼 몸을 허공에 띠워 장철궁의 상체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하지만 그의 각법(脚法)은 특이했다. 마치 몸이 뻣뻣한 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딱딱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의 몸에서 구부러지는 것은 유일하게 무릎과 허리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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