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이 적은 곳에서 터키식 주말 보내기

[2주간의 터키 여행기] 오르타쿄이의 주말을 느껴보세요

등록 2006.02.02 11:35수정 2006.02.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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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돌마바흐체 궁전(오스만 터키 제국 전성기 시절 만들어진 궁전)도 보지 못하고 '오르타쿄이'로 향했다. 여행객이 비교적 적은 곳에서 현지인들이 누리는 주말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 택한 장소였다. 보스포러스 다리 바로 아래에 있는 이곳은 주말만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오늘은 바로 즐거운 토요일 아니던가!

늦은 오후가 되니 이스탄불의 교통 체증이 시작되었다. 지도를 보니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닌데 버스는 움직일 줄 몰랐다. 도착했을 때 이 조그만 바닷가 마을은 이미 많은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마도'라는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앞 야외 테이블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콤해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앞에 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들의 머리카락과 야외에 놓여진 화분의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쫄깃쫄깃 '죽죽' 늘어나는 아이스크림 '돈 두르마'

a 떡같이 생긴 돈 두르마 아이스크림. 쫄깃쫄깃하다.

떡같이 생긴 돈 두르마 아이스크림. 쫄깃쫄깃하다. ⓒ 김동희

형형색색 다양한 아이스크림 중 신기해 보이는 두 개를 시켜놓고, 나도 그들의 평화로운 주말 오후에 동참했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그 아이스크림은 정말이지 죽을 만큼 달았다. 내 모든 장기들을 설탕에 절이는 느낌이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깔끔한 홍차를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 중에는 터키의 유명한 아이스크림인 '돈 두르마'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돈 두르마는 흘러내리지 않고 '죽죽' 늘어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 만드는 재료 때문에 쫄깃쫄깃하니 씹는 맛이 있다.

주말 오르타쿄이가 유명한 이유는 수많은 액세서리 노점상 때문이라고 한다. 산책 겸 바닷가 근처에 갔다. 나같이 액세서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눈을 돌리며 구경할 정도로 아름답고 독특한 액세서리들이 골목골목을 점령하고 있었다. 터키석을 박아놓은 반지들, 세련되게 디자인되고 만들어진 수제 목걸이들, 이블 아이가 박혀 있는 조그만 귀걸이부터 저걸 어떻게 귀에 달고 다닐까 싶을 정도로 무겁고 큰 귀걸이까지 없는 액세서리가 없다.

오르타쿄이의 명물로 불리는 '쿰피르'를 하나 샀다. 쿰피르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아주 큰 감자를 오븐에 구운 후 중간을 갈라 그 속에 치즈를 넣어 비빈 음식이다. 마지막에 진열된 올리브 저린 것, 옥수수, 콩, 피클 등을 입맛대로 얹어달라고 하면 완성된다. 연인들이 쿰피르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아주 다정해 보였다.


a 오르타쿄이의 명물 쿰피르. 연인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될 것 같다.

오르타쿄이의 명물 쿰피르. 연인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될 것 같다. ⓒ 김동희

쿰피르를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오르타쿄이 자미('모스크'의 터키 말)가 있는 바닷가는 보스포러스 다리와 어우러져 또 다른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보스포러스 투어! 10분 후 출발합니다."


a 오르타쿄이 자미의 모습

오르타쿄이 자미의 모습 ⓒ 김동희

이런 행운이 있나! 원래 이스탄불에 있으면서 보스포러스 크루즈(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러스해협 여행)를 꼭 해보리라 계획을 세우고 왔지만 아픈 발과 늘어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 게으름을 피우다가 포기했던 차였다. 보스포러스 크루즈가 많은 에미뉴 선착장에서 멀리 떠나가는 배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를 얻었다. 시간도 딱 한 시간.

'그래 크루즈 맛이라도 보는 거야!'

배에 타니 갑판에 어마어마하게 큰 쿠션들이 놓여져 있다. 그곳에 몸을 기대니 너무 편하다. 크루즈 코스는 아주 단순하지만 맘에 들었다. 보스포러스 다리 아래에서 시작해서 유럽 지구를 따라 그 다음 다리인 폐티흐 다리까지 올라간다. 다시 바다를 가로질러 아시아 지구 쪽으로 이동한 뒤, 그 쪽 해변을 따라 보스포러스 다리까지 다시 내려오는 루트다.

a 크루즈를 하면서 이스탄불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크루즈를 하면서 이스탄불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김동희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배를 탔더니 모든 풍경들이 순간순간 변했다. 어스름할 때 유럽 지구를 돌았는데, 어느 순간 깜깜해진 세상에 불빛들이 하나하나 밝혀졌다.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페티흐 다리 옆의 루메리 히사르도 보인다. 돌아오는 길은 완전 다른 세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보스포러스 다리에 불이 들어왔다. 진한 남색 하늘에 전등 불빛이 흔들거린다. 오르타쿄이 자미에도 불이 들어왔다. 쿠션에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선선한 바닷바람을 느껴본다. 몸이 나른해진다.

a 보스포러스 다리 밑

보스포러스 다리 밑 ⓒ 김동희


a 야경이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다리

야경이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다리 ⓒ 김동희

깜깜한 밤이 되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큰 길 가로 나왔는데 도로에 꽉 찬 차들. 젊은이들을 보니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꾸 저 멀리 있는 펍(pub, 술집)은 심장까지 울리는 음악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홀리듯 펍으로 들어갔다.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역겨운 맛 '라키'

a 오르타쿄이의 밤풍경. 주말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오르타쿄이의 밤풍경. 주말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 김동희

선곡이 너무 좋았고 심장을 타고 머리까지 울리는 소리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사람을 취하게 만들었다. '라키'라는 터키 전통 술을 주문했다. 레몬 색 라키 한잔과 물 한잔이 나왔다.

"이 물은 뭐죠?"
"라키 한 모금 먹고 물을 먹는 거예요."

입에 대니 냄새가 정말 이상하다. 한 모금 먹고 물을 안 마실 수 없는 맛이다. 종업원은 내가 웃긴지 계속 옆에서 코를 막고 먹으라며 조언을 해준다.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내 라키의 양을 확인하고 내가 입에 컵을 가져갈 때마다 옆에서 배꼽을 잡고 웃는다. 라키 한 잔으로 모르는 사람과 신나게 웃었다. 비록 반밖에 못 마셨지만.

a 터키의 전통 술 라키. 이런 지독한 냄새의 술은 처음이다.

터키의 전통 술 라키. 이런 지독한 냄새의 술은 처음이다. ⓒ 김동희

"이 노래는 제목이 뭐죠? 터키에 있는 동안 아주 많이 들었는데 유명한 터키 가수인가 보네요."
"이건 터키 노래가 아니고 아프리카 노래예요."

아프리카 노래라. 내가 접해본 적 없는 노래다. 아니 접한 적이 있었어도 그 노래가 아프리카 노래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멋진 노래가 있구나, 내가 모르는 많은 대륙에서 멋진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내가 접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속상해졌다. 그 많은 노래를 다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다.

음악에 취해 있는데 저 멀리 건물에서 터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토요일 밤이 젊은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이다. 한참을 쳐다보니 그 먼 곳에서 어떻게 나를 발견했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멀리 있어 얼굴이 작게 보이지만 함박웃음 같아 보였다. 아니 함박웃음이었다. 나도 힘껏 손을 흔들었다. 함박웃음과 함께 어둠 속에 즐거운 비명들이, 즐거운 몸짓들이 묻혀져 간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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