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아빠, 제왕절개의 대가를 깨닫다

알려지지 않는 진실... 자연분만으로 엄마의 좋은 세균 물려받아야

등록 2006.02.02 14:32수정 2006.02.02 16:36
0
원고료로 응원
a 자연분만 과정에서 태아는 세균이 풍부한 엄마의 산도 내부 분비물과 접촉하게 된다. 이 순간 인간에게 유익한 세균들이 순식간에 태아의 몸 속에 들어가 증식하게 된다.

자연분만 과정에서 태아는 세균이 풍부한 엄마의 산도 내부 분비물과 접촉하게 된다. 이 순간 인간에게 유익한 세균들이 순식간에 태아의 몸 속에 들어가 증식하게 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쳐내고 있었다. 아내의 출산일이었다. 이제 곧 아빠가 되는 순간이다.

에일리언이 등장하는 B급 영화의 기괴한 장면처럼 아내 배 위의 조그맣게 절개된 틈을 통해 아기가 머리를 내밀었다. 내 카메라 플래시의 섬광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넘게 흐르는 사이 아내와 나는 또 하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갖게 되었다. 비록 다시 제왕절개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내 두 아이들이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2005년 말 출산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담은 '질병관리센터(CDC)'의 건강통계를 보게 된 후였다.

첫 아이가 태어난 1996년 이후 제왕절개 비율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지난 10년 사이 무려 40%가 늘어났다. 2004년 미국에서 출산된 아이 가운데 29.1%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는데, 이는 산모 120만명 가량이 제왕절개를 했다는 뜻이다.

제왕절개가 급증하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자연분만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의료과실 ▲부모의 선호 ▲산모와 태아의 건강상태 등에 대한 고려와 아울러 ▲간단하고 편리하게 출산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질병관리센터의 통계자료가 출간된 뒤 급증하는 제왕절개에 관심을 갖고 그런 현상이 불러올 잠재적 문제를 다룬 보도가 있는지 자세히 조사해 보았다. 인체 생리학·세균·포유동물과 같은 주요 관련어, 2005년 한 해 파문을 일으킨 두 글자 '진화'를 중심으로 검색했다. 그러나 이런 관련 검색어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기사는 단 한 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상적 경로인 산도(産道)를 통한 출산은 인간 진화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제왕절개에 대한 선호가 급작스럽게 대두하고 있는 현상은 수백만년에 걸쳐 형성된 몇몇 중요한 과정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이제 자세히 살펴보겠다.


아기는 아내의 배 위 틈새로 머리를 내밀었다

영국의 유명한 다윈주의자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안정화전략'이라 명명한 이론에 비춰보면, 인간은 장 내에 자생하는 특수하고도 복합적인 세균들과 공생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전체 숫자로 따지면 수조 마리에 이르는 500여 종 세균들은 우리 내장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데 대부분은 생태학적으로 주변부인 결장에 붙어 서식한다.


진화안정화전략 이론이 제시하듯, 구강에서 항문에 이르는 인체의 '개방된' 내장 안에 접근할 수 있는 세균 중 이 수백여 종의 세균들만이 생존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내장의 생태체계가 영양학적·생리학적으로 인체와 조화가 가능한 세균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진화를 통해 인체에 자리잡은 세균들이 병원균과 같은 외부의 세균들을 철저히 막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출산 이전 태아의 내장은 무균상태다. 그러나 자연분만 과정에서 태아는 세균이 풍부한 산도 내부 분비물과 접촉하게 된다. 이 순간 세균들은 순식간에 태아의 몸 속에 들어가 증식하게 된다.

이 과정은 어머니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되는 내장 '미생물군'과의 공진화와 관련되어 있다. 세균의 존재를 이해하는 이들에게 인간과 세균의 공생관계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자연분만을 통해 진화해 온 세균은 인류의 성장과 포유류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아기는 이토록 중요한 진화론적 통과의례를 건너뛰게 된다. 물론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 역시 산모의 세균을 물려받기는 한다. 그러나 자연분만 과정에서 산도의 분비물과 배설물로부터 얻어지는 세균의 다양하고 조밀한 '기본 개체수'에 이르지는 못 한다.

두 출산방법 가운데 어느 쪽이건 태아는 분만실 안의 모든 세균에 노출되어 있다. 정말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채 마치 의료진을 도와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고무장갑을 끼고 어정쩡하게 구석에 서 있는 아빠의 세균에도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아기는 엄마의 세균을 물려받으면서 태어난다

a 지난 2003년 8월 세계모유수유주간을 맞아 지하철 6호선 전동차 안에서 열린 '엄마젖 먹이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엄마들이 젖을 먹이며 모유수유공간확보를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세계모유수유주간을 맞아 지하철 6호선 전동차 안에서 열린 '엄마젖 먹이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엄마들이 젖을 먹이며 모유수유공간확보를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우먼타임스 장철영

진정 신비롭고 진땀나는 출산 의식이 마무리되면 신생아는 보통 씻겨진 뒤 잠시 엄마와 짧은 첫 대면을 한다. 이후 따뜻한 곳으로 옮겨져 갓 태어난 다른 친구들과 한동안 머물게 된다. 산모는 회복에 필요한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되고, 초보아빠는 복도를 서성이며 앞으로 바꾸고 개선시켜야 할 모든 것들을 떠올리고 자신과의 대화시간을 갖게 된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산 후 24시간에서 48시간 내에 산모와 신생아 모두에게 발생학적으로 중요한 또다른 단계가 있는데 바로 모유수유다. 모든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모유는 신생아의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다. 그럼에도 30%가 넘는 산모가 출산 후 병원에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는다. 이후에도 아예 모유를 먹이지 않는 산모도 적지 않다. 신생아에게 젖을 먹이는데 문제가 있거나 단지 관심이 없어 수유를 간과하는 경우도 많다.

아기가 생후 6개월이 되면 모유를 수유받는 비율은 31%로 떨어지며 12개월째는 17%로 훨씬 낮아진다. 24개월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는 아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제왕절개와 짧은 수유기간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전례가 없던 일이다. 보험회사나 체계적인 현대의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태아들이 출생의 자연스런 경로를 통해 출생했으며 오랜 시간 인정된 진화적 주기에 참여해 엄마로부터 전달되는 세균을 이어받았다. 원숭이를 비롯한 현대의 몇몇 포유류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모유수유는 24개월에서 36개월까지 계속되며 경우에 따라 더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산도를 통한 진화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신생아에 대한 모유수유는 세균과 관계가 있다. 모유는 신생아의 성장과 건강, 면역체계를 유지시켜주고 특별하고도 충분한 영양을 주는 데 적합하도록 오랜 세월 적응과정을 거쳐왔다. 연구자들은 모유를 통해 성장한 아기들이 그렇지 않은 아기에 비해 장 안에 유익한 세균을 눈에 띄게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오래 전에 발견해냈다.

모유에는 있고 우유에는 없다

그 세균들 가운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종은 유산균이다. '살아있는 세균'이라는 광고 문구를 붙인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에 첨가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산균에 대해 이미 들어본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생후 1개월 된 아기는 모유수유에 관계없이 유산균을 보유한다. 그러나 분유를 먹은 아이의 유산균 보유 비율은 모유를 먹은 아이의 1/10에 불과하다. 아기가 한 살에서 두 살에 이르는 기간 동안 건강하고 왕성한 유산균을 보유하게 되면 장 내부조직의 발달은 물론 감염에 대한 저항능력과 더불어 전반적인 면역체계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

이런 특정 유산균들이 분비하는 물질은 병원균 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장 주위를 산성화시키는데 이는 외부 병원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추가적인 보호막이 된다. 한 마디로 모유를 먹은 아이가 덜 아프고 탈없이 자라게 된다. 설사를 하는 경우도 적으며 하더라도 곧 그친다. 내장 활동도 더 부드럽고 왕성함은 물론이다.

모유로 자란 아기가 유산균을 많이 갖게 되는 이유는 올리고당으로 알려진 모유 속의 특정 탄수화물 때문이다. 우유에는 이 탄수화물이 거의 없다. 이런 탄수화물은 아기의 내장 속에서 소화·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결장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곳에서 어떤 세균보다 중요한 유산균의 먹이가 된다. 유산균은 모유에서 온 '먹이'로 빠르게 증식하며 수분을 흡수해 장의 운동을 부드럽고 규칙적이게 한다. 태아의 대변이 왕성하고 활동적인 유산균의 운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못 믿겠거든 직접 확인해 보시도록!

유아용 유동식 제조업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유산균의 활동을 촉진하는 '프리바이오틱스' 탄수화물이 담긴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양분이며, 이를 통해 증식된 유산균이 프로바이오틱스다. 모유가 지닌 이런 성분은 인위적으로 가공해내기 어렵지만, 올리고당을 통해 유산균을 배양시킴으로써 모유와 같은 생리학적 효과를 일정 부분 재현해내는 일은 가능하다.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회사는 모유 속 올리고당을 치커리 뿌리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커피의 대용으로 쓰이는 치커리 커피를 떠올리면 된다.) 수 년에 걸친 면밀한 조사와 업계의 평가를 통해 개발된 이 성분은 아기 유동식 생산에 점차 더 널리 채택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유아용 고급 유동식 시장에 진입하려는 회사라면 상품에 이 성분을 함유시켜야만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수백만년 진화의 결과

a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모습(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의 모습(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김규환

아내의 임신과 두 번에 걸친 출산과정에서 나는 여러 차례 의사를 만났지만 의사를 비롯한 누구도 내가 여기서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내용과 관련된 얘기를 꺼낸 이가 없었다. 우리가 읽는 책들은 주로 '좋은 엄마, 아빠가 되는 방법' '아기를 잘 키우는 방법' 같은 내용에 치우쳐 있다. 자연분만 과정을 통해 엄마로부터 아기에게 미생물군이 전달되는 과정이나 수유 그리고 유산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물론 제왕절개는 많은 경우 꼭 필요하며 또한 시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과 지난 10년 동안 40%가 늘어났다. 이런 현상을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이런 방식이 치러야 할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대가를 누구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먹는 일이야말로 아기가 엄마를 통해 삶을 한껏 호흡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인다면 우리는 앞 세대가 경험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인류의 새 식구를 출산하는 데 있어 발생론적으로 기초적인 과정을 부모가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통증을 줄이겠다며 배 일부를 쨌다가 꿰매는 방식으로 우리의 유구한 발생론적 과정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독특한 신체적, 영양학적, 신진대사적인 특징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확립되었다.

우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몰며 그리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문화나 사회적인 면에서 최신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는 고대의 수렵경제 시대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운동부족과 칼로리 과다섭취가 비만으로 이어져 각종 질환과 질병을 초래하듯, 어느 날 갑자기 복부를 열어 아이를 낳고 모유도 먹이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분명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산모와 아기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와 보호자들이 발생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 뒤 출산과 태아의 건강을 대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조금은 더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건강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완기)

덧붙이는 글 | 제프 리치는 인간 영양의 진화적 추이를 전문으로 연구 중인 인류학자다. 미국의 보건뉴스사이트인 GutFeelingColumn.com에서 건강과 웰빙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올해 1월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의 시민기자로 가입했다.

덧붙이는 글 제프 리치는 인간 영양의 진화적 추이를 전문으로 연구 중인 인류학자다. 미국의 보건뉴스사이트인 GutFeelingColumn.com에서 건강과 웰빙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올해 1월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의 시민기자로 가입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