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책표지문학동네
그렇지만 이러한 사전적인 꿈의 의미와 항상 엄중하게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상호 어떠한 작용을 하는 것일까? 이 막연한 질문이 소설가 김도연의 <검은 눈>을 비롯한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읽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이 소설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겠는 또는 애써 구분하지 않으려는 줄거리와 상황들이 여러 차례 묘사된다.
'꿈인 줄 알고 꾸는 꿈의 쓸쓸한 풍경'을 그렸던 저자의 집이 있는 평창 진부로 가는 길도 으레 겨울의 풍경이 그렇듯 조금은 쓸쓸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과, 겨울채비를 끝낸 산들의 나무들도 잎과 줄기를 떨구어 내고 맨몸으로 한 겨울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황량한 소진의 계절이 아닌 준비와 휴식의 계절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소리를 내는 소와 닭, 오리들… 하긴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어 모든 것이 날고 기고 하는 시대이기에 소가 물을 달라느니, 물이 차갑다느니 하는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피력하고, 이에 더해 먹이를 제때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축들이 반란에 준하는 소요를 일으키더라도 무엇이 이상하고, 무엇이 비현실적이랴.
올해는 유달리 포근해 눈이 적은 겨울인지라 소설에서 말하는 지독한 눈의 내림과 거대한 쌓임에 대한 현실적인 감은 없었지만, 유달리 작가 김도연의 주인공들은 폭설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 앉아 몽환에 잠기는 장면들이 많다. 눈은 쉽게 옛 기억을 되살려내고, 주위로부터 한 인간을 고립 시킨다. 하기야 눈 속에 갇힌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잠자기와 꿈꾸기일 밖에 다른 것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