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삶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를 통해 되새겨보는 시간

등록 2006.02.03 14:53수정 2006.02.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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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림:주기한

그림:주기한 ⓒ 민은실

뭔가 회상하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은 희끄무레해진다. 세 살 때 마른 흙을 만지고 놀다 벌에 쏘였을 때의 찌릿한 통증과 초경을 했을 때 화장실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시간에 '미시시피 강' 답을 맞췄다고 박수 세례를 받고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기억….

특정한 몇 가지 사건을 제외하고는 유년기를 거쳤을까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하다. 하기야 죄다 기억하고 산다면 카오스 상태로 고생 깨나 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뇌가 시스템을 갖췄다는 증거는 기억이 있는 동시에 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일상적인 의문은 아니지만, 가끔 기억에 관한 궁금증이 일 때가 있다. 이를테면 왜 서너 살 이전의 기억은 없을까? 왜 수치스런 경험은 잊혀지지 않을까? 처음 겪는 일인데도 왜 꿈 속에서 본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Why?'에 토를 달기 곤란한 건 기억이라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나열할 수 없는 무형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아직 서른을 넘기지 못한 처녀지만 나이가 들수록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당황스러우리만치 빠르다. 이팔청춘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라는 명제는 달라진 게 없는데 왜 하루에 지구가 한 바퀴를 돈 것처럼 심리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빨리 흐르는 건지.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의 저자인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 교수는 자전적 기억에 관한 궁금증에 친절히 답해준다. 심리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때로는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때로는 시적인 감수성으로 설명한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에 대해 저자는 시간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기억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망원경의 효과'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는 것. 망원경을 보면 물체가 아주 선명하고 자세히 보이기 때문에 그 물체까지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도 마치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사건들이 확대되어 보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거리가 축소되고 그 사건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영화의 클론들처럼 며칠 전 점심에 먹었던 음식과 동료와 나눴던 기억들을 정확하게 회상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는 게 명료해질지도 모르지만 조그만 뇌세포들이 과부하에 걸려 자살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지만 기억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나는 머물러 있는데 시간 혼자 저만치 가버리는 아쉬움이 들어도 어찌할 수 없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
에코리브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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