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비록 '짝퉁'이지만 내 마음은 명품이라고"

출장 다녀온 남편이 사 온 '짝퉁' 핸드백

등록 2006.02.03 22:38수정 2006.02.0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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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남편이 세미나 차 중국에 다녀왔다. 처음에 중국에 가족과 같이 가기로 계획했다가 같이 가는 동료도 있고 개인적인 관광을 할 수 없어서 혼자 떠나게 되었다. 가기 전 며칠 전에 우리 부부는 사소한 일로 다툰 터라 별로 나눌 말이 없었고 이른 아침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남편은 달랑 배낭 하나 매고 3박4일간의 여행을 떠나버렸다.


국외여행의 기회가 많다지만 쉽게 얻어지는 기회가 아닌데 그래도 시간 있을 때 면세점에서 그 흔한 립스틱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그가 무척 야속하게 느껴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평소에 일찍 들어오는 편이 아닌데도 그 4일이 어찌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아니, 중국에는 전화기도 없나? 전화 한 통을 못해. 에이고….'

평소에 살갑게 자주 연락하는 성격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꾸만 전화기로 눈이 가고 전화 소리에 놀라 달려가면 부동산 광고 전화나 통신사의 전화들뿐 이었다.

그럭저럭 4일이 지나 남편이 돌아오기로 예정된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뭔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2층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남편의 발소리였다. 벨 소리가 울리기 바로 직전 내가 문을 열자 해바라기처럼 환한 얼굴을 한 남편이 들어왔다. 양손 가득 비닐을 든 채로.

"아빠! 내 선물은?"

달려가 반갑게 맞이하는 아들들은 자신의 선물이 든 비닐봉지일 거라고 확신하며 아빠를 반갑게 맞이했고 그 속에는 큰아이가 좋아하는 레고 한통과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한 상자가 들어있었다.


난 관심 없는 척했지만 그 비닐봉지 속에 내 선물이 없음을 알고 무척 서운했다. 늦었지만 간단한 저녁을 차려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무심결에 침대 옆에 있던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꽤 많은 페이지가 넘어갔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딸칵."


저녁을 마친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빨래할 옷은 다 세탁실에 두고 가방은 거실에 그냥 두세요. 내일 아침에 정돈하게."

책 속에 머리를 넣은 채 내가 먼저 말을 던졌다. 그때 남편이 살며시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요?"
"여기 열어 봐."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낭을 가리켰다. 배낭을 열었다. 그 배낭 속에는 숄더형 백이 들어 있었다. *찌 상표의 백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한 개씩 이 상품을 사 가더라고. 나도 얼른 가서 한 개 골랐지. 제일 색깔도 예쁘고 지갑이 있어서 두 배로 비싸게 주고 말이야. 역시 명품은 다르다니까."
"아니 이건 명품이 아니라 '짝퉁'이에요. 누가 이 명품을 그렇게 싸게 판대요."
"아냐. 이건 진짜 진짜래. 거기 간 친구들 다 하나씩 샀는 걸.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이고 머리야. 저 황당한 '짝퉁'을 어디에 쓴담' 나는 내심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의 성의를 생각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누워 잠에 막 들려 할 때였다. 남편이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봐! 이건 비록 '짝퉁'이지만 내 마음은 명품이라고. 내 맘 알지? 나중에 돈 벌면 명품으로 도배를 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알겠지?'

외면에 비치는 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남편이 '짝퉁'을 사 온 것은 그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님을 나는 잘 안다. 그날 밤 나는 '짝퉁' 핸드백이 있어 행복했다.

남편이 사 온 '짝퉁' 핸드백
남편이 사 온 '짝퉁' 핸드백송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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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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