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치료는 미용성형이 아닙니다

상처보다 아픈 것은 무관심과 불합리한 제도

등록 2006.02.06 22:20수정 2006.02.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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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인연의 시작

경기 구리시 교문동 802-13 번지 지하에 '비전호프(vision hope)'란 조금 낯선 이름의 '어린이 화상 환자 후원회'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후원회 안현주 대표는 12명의 임원과 함께 2003년부터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중증 어린이 화상 환자를 자기 자녀처럼 보살펴 온 야무지고 가슴 따듯한 40대 주부다.

사무실에 들어서며 "호프(Hoff)집 인줄 알았습니다"하고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네자 안대표는 "오시는 분마다 그런 농담을 하시지요"하고 맞받아친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비전호프란 화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를 도와주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그들이 미래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평범한 봉사자들이 설립한 단체지요"라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a 벽에 걸린 어린이들 사진을 가리키며 자세하게 설명하는 안현주 대표

벽에 걸린 어린이들 사진을 가리키며 자세하게 설명하는 안현주 대표 ⓒ 송영한

수인사를 끝내고 어떻게 어린이 화상 환자들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를 먼저 물었다. "2003년에 대전에 사는 박희주(여·15)와 박성주(남·13) 남매를 만나면서부터 입니다"라고 말문을 연다. "그때 대전에 사는 두 남매가 화재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다는 기사를 생활정보지 같은 신문에서 우연히 봤는데 당시 열 살이던 아들이 꼭 동갑내기인 성주를 만나봐야겠다고 우겨서 인연이 시작됐지요"하고 소중한 인연을 털어놓는다.

a 성주는 의사의 꿈을 접고 기관사가 돼 자기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겠다는 꿈을 꾼다.

성주는 의사의 꿈을 접고 기관사가 돼 자기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겠다는 꿈을 꾼다. ⓒ 비전호프

치료의 첫 걸음은 밖으로 나오기

보통 사람들은 끔찍한 모습의 화상환자를 보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모금운동 할 때도 어린이들은 환자들의 사진이 걸린 모금통까지 오기를 주저하고 실제로 환자를 보고 기절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저는 간호사란 직업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어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이 일하는 임원들도 다 그런 경험을 했다고 그럽니다"하는 말을 들으니 특별한 인연인 것은 분명하다.

이어서 "사실 저희가 화상 환자 어린이들을 맡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이미 자기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 봐라. 이것이 너희가 평생 이겨내고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이렇게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나 서글픈 것은 애써 바깥세상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이젠 도리어 처음 자기들을 만나러 온 어른들이 자기들을 보고 충격을 받을까봐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배려하는 등 자기정체성 관리를 할 때입니다"하고 데인 상처만큼이나 정신적인 상처도 깊음을 말해준다.


부모를 자동차화재사고로 여의고 화상환자가 돼 역시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최은찬(12) 최금찬(11) 형제는 아직도 눈앞에서 자동차가 폭발해 어머니가 숨지는 모습이 정신적 충격으로 남아 악몽과 환상, 환청을 호소해 형제가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정신적인 아픔에 더해 살을 찢는 것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이중 고통을 감당하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고 안 대표는 안쓰러워한다.

a 할머니와 함께 '찰칵'. 은찬이(오른쪽)는 피아니스트, 금찬이(왼쪽)는 경찰관이 되고 싶단다.

할머니와 함께 '찰칵'. 은찬이(오른쪽)는 피아니스트, 금찬이(왼쪽)는 경찰관이 되고 싶단다. ⓒ 비전호프

"불에 덴 곳이 치료가 끝나도 그렇게 아픈가요?"하고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안대표는 "어느 지체장애자 분도 '우리도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세상과 부딪치며 떳떳하게 살아가는데 당신들은 왜 수술에 그렇게 목을 매느냐'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하고 설명한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아세요?

"일단 성장이 멈춘 어른들은 데인 상처를 치료하고 나면 흉터는 남지만 아프지는 않지요.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화상으로 손이 녹아버렸으면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부 속에서 뼈가 계속해서 자라는데 이에 맞춰 제때 수술을 해주지 않으면 뼈는 뒤틀리게 되고 생살을 찢는 것 같은 아픔이 오는 거죠. 실제로 성주는 생후 14개월에 가스폭발로 온몸에 중한 화상을 입은 뒤 지금까지 30회 이상의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도 성장이 멈출 때까지 계속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 수술실 앞에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온몸으로 버티며 수술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죠."

a 2006 비전호프 콘서트에서 남희석씨와 함께 무대에 선 은찬이와 성주

2006 비전호프 콘서트에서 남희석씨와 함께 무대에 선 은찬이와 성주 ⓒ 비전호프

회원들이 몇 명이나 되며 일 년에 얼마나 후원금이 모이느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회원은 약 500여 명쯤 되고 작년에도 1억3천여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며 "특히 지난 1월 14일 박학기, 유리상자, 지누션 등 유명가수들이 출연하고 남희석씨가 사회를 본 '비전호프 콘서트 <2006 VisionHope Again 꿈으로 희망으로>'에 후원해 주신 한분 한분께 감사드린다"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

a 조선족인 려나(중앙)는 비전호프의 초청으로 조국의 품에 안겨 치료를 받고 있다.

조선족인 려나(중앙)는 비전호프의 초청으로 조국의 품에 안겨 치료를 받고 있다. ⓒ 비전호프

그 정도의 후원금으로 몇 명의 중환자를 후원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작년 7월에 조선족 소녀 최려나(14)가 치료를 받으러 비전호프 초청으로 조국에 왔는데 3번 수술에만 5천여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지금 10여 명의 어린이를 후원하는데 얼마나 드는지 상상해보십시오. 이 같이 치료비가 많이 드는 이유는 피부이식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중증화상 환자는 진피(표피와 지방층 사이에 있는 피부층)이식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허벅지 등 자기 피부를 도려내 이식을 합니다. 그러나 계속 수술을 하다 보면 더는 도려낼 곳이 없어 배양 피부와 인조진피를 써야하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니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들 수밖에요. 또 화상에 쓰이는 치료약 등이 거의 수입품이고 어쩌다 아이들과 나들이라도 한 번 가려면 꼭 발라야하는 자외선 차단 크림 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a 이 다리를 수술하는 것이 미용성형이라니! (수술하기 전 은찬이 다리)

이 다리를 수술하는 것이 미용성형이라니! (수술하기 전 은찬이 다리) ⓒ 비전호프

화상치료가 미용성형?

이 대목에서 안 대표는 목소리를 높이며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화상환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초기에 상처를 드레싱 하는 비용은 보험이 되지만 어린이 화상환자가 받는 수술은 '미용성형'으로 분류돼 보험이 한 푼도 적용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형편으로는 지레 치료를 포기하고 말죠. 이웃 일본은 화상환자에 대해 모두 보험적용을 해주고 미국도 13세까지 전액 국비로 치료해줍니다. 또 그 이상의 청소년도 화상치료 재단에서 치료비를 부담하는데 아무리 국력 차이가 있다 해도 너무 내버려두는 것 아닌가 하고 분노가 치밀 때도 있습니다"하고 끓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화상환자에 대한 장애인 인정도 지체장애에 비해 매우 비합리적입니다. 작년에야 지정된 안면장애는 목을 포함해서 얼굴 전체에 60%의 화상을 입어야 겨우 4급 장애로 인정됩니다. 만약 어떤 이의 얼굴이 60% 화상을 입었다면 그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겠습니까?"하며 성토를 멈추지 않는다.

a 운동을 좋아하던 수인이(8)는 손가락에 신경근 손상을 입어 국내에서는 치료가 어렵다.

운동을 좋아하던 수인이(8)는 손가락에 신경근 손상을 입어 국내에서는 치료가 어렵다. ⓒ 비전호프 제공

안 대표는 계속 격앙된 표정으로 "보건복지부에는 국내에 화상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한 자료조차 없습니다.(약 30만으로 추정) 또 화상에 대한 단체라야 학술연구를 하는 '대한화상학회'와 '한강성심병원 모교인 한림대학 내 화상환자 후원회' 그리고 우리(비전호프) 이렇게 3개 단체 뿐인 것이 현실입니다. 제 소원은 '국립암센터'와 같은 '국립 화상센터' 설립인데 과연 제 생전에 이뤄질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의료 사각지대인 화상환자에 대한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왜 이렇게 의료 사각에 들게 됐느냐고 되묻자 "정부의 무관심도 문제지만 화상환자들을 괴물 취급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숨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권리 주장을 못 한 것도 큰 원인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보도되는 어린이들의 이름과 사진도 다 실명으로 내주시기 바랍니다"하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고통은 나누고 절망은 희망으로

"모든 사고가 그렇듯 화상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입니다. 그러나 사고가 난 뒤 그들의 삶은 180도 뒤틀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며 사회의 같은 구성원입니다.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같이 나누고 그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희망을 주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선진사회로 가는 길 일 것입니다"하고 말하는 안 대표는 어느덧 평상심으로 돌아와 있었다.

a 아무리 힘들어도 웃고 살 겁니다. 환하게 웃는 희주

아무리 힘들어도 웃고 살 겁니다. 환하게 웃는 희주 ⓒ 비전호프

안 대표는 "일단 밖으로 나온 화상 환자 아이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아세요?" 하며 기자에게 묻고는 이내 "아이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쇼핑매장에서 카트 타고 쇼핑하는 것이고 사진 찍는 것입니다.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아이들의 동심은 일그러진 모습을 극복하고 순수하게 제자리로 곧 돌아갑니다. 그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와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따돌리고 냉대하며 무관심한데도 말이죠"하고 정부와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말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 비전호프 홈페이지:www.visionhope.net
후원문의:031-551-6113

덧붙이는 글 비전호프 홈페이지:www.visionhope.net
후원문의:031-55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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