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물을 마시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머리에는 '단결·투쟁' 구호가 쓰인 빨간띠를 둘렀고, 손에는 찬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목장갑과 함께 비닐장갑을 꼈다. 바지가 젖지 않도록 비닐로 된 파란색 우의도 입었다. 등에는 "확약서 즉각 완전이행하라"고 쓰인 피켓을 붙였다.
행렬 선두에는 "확약서 무효화하는 현대하이스코 규탄한다", "현대하이스코 확약서 이행 촉구 삼보일배 행진"이 쓰인 플래카드가 앞장 섰고, "비정규직을 일터로"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 10여개가 대열을 이끌었다.
정지은(순천·26)씨는 18개월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에 다니던 남편 김모(30)씨는 현재 4개월간 일을 중단한 상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나왔다"는 정씨의 얼굴엔 서글픔이 가득했다. 아이 옆에 놓인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포스터가 눈에 띈다.
200여명이 일제히 엎드리자 등에 붙인 "확약서 즉각 완전이행하라"는 피켓이 하늘을 향했다. 확성기에선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고 단지 법과 제도안에서 합법적인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거리로 내몰린 자들이다", "현대하이스코는 확약서를 이행해야 한다" 등 서울 시민을 향한 호소가 이어졌다.
현대하이스코 본사에 다다를수록 눈앞을 가릴 정도로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노동자들의 장갑은 흙탕물로 까맣게 물들었고, 일부는 젖은 장갑을 걸레짜듯 비틀기도 했다.
김종안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비정규직도 이 땅의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타워크레인에 올랐고 오늘 또다시 투쟁의 깃발을 세웠다"며 "몸을 숙여 피눈물로 호소하니 회사 측이 대화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현대하이스코네"하며 이들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이준기(회사원·27)씨는 "여자친구도 모 제약회사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정규직의 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고 있던 터라 (5보1배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저들이나 여자친구나 올해 모두 정규직이 됐음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들은 애초 5보1배를 마친 뒤 현대하이스코 본사에서 사장과 면담할 예정이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참가자 일부는 비정규직법안 관련한 민주노총의 집회를가 열리는 여의도 국회 앞으로 이동했다.
3개월 지나도 이행되지 않는 확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