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
개 이야기다. 12년만에 맞이한 개띠 해 첫날에 개 한 마리를 얻었다. 내가 개띠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사람은 그걸 고리삼아 내가 그 개를 넘겨받아야만 하는 필연적이고 역사적인 인연을 길게 설명했다. 야성이 있는 개는 역시 아파트에서 키울 게 못되고 시골집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별 내키지 않는 제안을 사양할 틈도 없이 나는 강아지 새 주인이 되어버렸다.
강아지를 받을 때 주인으로부터 꼭 듣게 되는 개의 특이한 족보나 예방주사 접종이력 등 얘기 목록을 다 알고 있는 나는 한두 가지만 되묻고는 다 건성으로 들었다. 시골생활 12년 동안 내가 내린 결론은, 나하고 개하고는 인연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라 전생에 상극관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에서 온 순종 진돗개는 잘 크다가 쥐약을 먹었는데 마당 짚 더미 속으로 계속 파고들면서 밤 내내 피를 토하는 신음으로 나를 찢어놓고 죽어갔다. 평양에 갔던 어떤 국회의원이 가져 온 풍산개는 천생연분인 듯 우리 집에 잘 적응을 하는가 싶더니 내가 모는 자동차에 깔려 죽었다. 새끼까지 낳은 개가 있긴 한데 강아지를 키우다가 두 마리나 죽어가는 꼴을 봐야 했다.
새로운 개를 받으러 투덜대며 대전까지 갔는데 개를 처음 보는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내가 후회스러웠다. 밤에 개를 받았는데 얼굴이 완전히 미련한 곰 같았고 온 몸이 새까만 개였다. 예의상 얼러가며 품에 안으니 이게 언제 봤다고 짖지도 않고 내 얼굴부터 핥는 게 너무 뻔뻔해 보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미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이 개가 우리 집에 와서 보여준 언행(?)은 감동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천덕꾸러기 강아지를 나는 이름도 성의 없이 '먹통'이라고 지었다가 애들의 항의가 심해서 새로 지었는데 그 이름마저 '곰탱이'였다.
이 곰탱이는 처음부터 자기가 개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처신하는 듯했다. 방에 들어 올 생각을 않고 마당에서 살았고 자동차가 움직이기 전에 섬돌에 앉혀두고 허리를 가볍게 눌러두면 자동차가 사라질 때까지 꼬리만 흔들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개집 옆에 어지럽게 늘린 개똥을 치우면서 별 생각 없이 한두 마디 군담을 했더니 그 순간부터 멀리 있는 거름자리에 가서 똥을 싸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옆집을 지나다가 송아지만한 옆집 개들이 동시에 짖어 놀란 내가 우리 개를 붙들려고 하자 이 놈은 도리어 개 철망에 다가가 얼굴을 바짝 대고 눈을 떼굴떼굴 굴려가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작년 말에 읽은 류시화 시인의 책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떠올랐다.
곰탱이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들여다보고는 짖던 개들이 민망한지 계면쩍어 하는 기색이었다.
집에 오는 그 어떤 손님에게도 먼저 짖지 않는다. 택배아저씨가 와도 꼬리부터 흔든다. 이 개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 갠지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첫 주인인 후배 녀석의 말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다만 내가 개띠라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농어민신문 2월 7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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