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래도 효녀는 아닌가 봅니다

부모님 가슴에 상처만 남긴 나쁜 딸입니다

등록 2006.02.08 10:21수정 2006.02.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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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온 지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난 십삼 년 동안 내가 단 하루도 잊지 않고 해온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저녁이 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는 일이었다.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날들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부모님에게 전화를 거르는 일이 없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딸이 걸어주는 전화 한 통화에 하루 시름 다 털어낸다는 부모님이기에 전화 한 통은 단순히 요금 몇 백 원 그 이상으로 나를 효녀로 만들어주었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 전화를 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고향집으로의 전화는 부모님보다는 나를 위한 삶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부모님의 응원 한마디에 바닥까지 내려간 희망을 다시 주워 올리고, 부모님의 웃음소리에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닌 전화 한 통화에 행복해 하시는 부모님이 있어,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내 부모님의 딸이어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오늘 그 부모님에게 죄를 짓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고향집에 전화를 넣은 건 저녁상을 물린 뒤였다. 변한 게 있다면 지금은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시간에 전화를 넣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려고 하면 남편이 꼭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확 줄어버린 어획량에 생활비는커녕 등허리 파스 값도 못 번다는 얘기와 변변한 치료를 할 수가 없어 하루 종일 붙들고 앉아 있는다는 아버지의 아픈 다리 얘기를 현재 아무 도움도 드릴 수 없는 사위는 차라리 안 듣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등 돌리며 애써 자리를 비켜주는 남편의 그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여보세요, 엄마, 저녁 드셨어요?"


그런데 엄마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왜요?"
"느그 아부지 땜시…."


그렇게 이어진 엄마의 이야기는 나를 기어이 불효자식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마실 나가신 아버지가 저녁거름이 다 돼서야 집으로 들어서더니 남들 사위는 지난 설에 장인어른한테 이것저것 선물에 용돈까지 줬는데 우리 사위는 어찌 생겨먹은 것이 백날이 가도 장인한테 용돈 한 푼 줄 줄도 모른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온 엄마의 말.

"해서 나가 니한테 전화 오믄 아부지 용돈 부치라고 말해 준다 그랬다!!" 하시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부쳐드리는 용돈이 절대 딸이 벌어서 드리는 돈이 아님은 두 분이 더 잘 알고 계실 텐데, 그럼 이제껏 부쳐드린 돈은 어디 땅에서 솟았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인가.

그리고 왜 항상 나여야만 하는가? 좋은 일 있을 때는 아들을 찾고, 돈들 일, 힘든 일 있을 때는 딸을 부르는 부모님을 난 지난 13년 동안 봐와야 했다. 없는 돈에 빚을 내서라도 아들들은 전셋집이라도 얻어주셨지만 난 딸이라는, 그리고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햇빛도 들지 않는 단칸 월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해야 했고,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뼈가 바스라질 것 같은 서럽고, 외로운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한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내 부모님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한 채 원하시는 거, 바라시는 거 능력 닿는 대로 해드렸다. 다달이 사드리는 약에, 철철이 챙겨드리는 용돈에 옷 장사 할 때는 남부럽지 않게 새 옷을 부쳐드렸고, 고향집의 김치냉장고, 가스렌지, 밥통에 전자렌지, 전화기…. 심지어 이불까지 모두 딸인 내가 사드렸다.

나는 비록 잘 먹고 살진 못 해도 내 아버지 무김치, 배추김치 뚝뚝 베어 드셔 보시라고 근 2년을 모아서 이빨 값도 해드렸고, 내 남편에게도 한번 못 사준 메이커 구두는 딸인 내가 맡아 놓고 사 드렸다.

그물이 삭아도 딸아!
약이 떨어져도 딸아!
용돈이 떨어져도 딸아!

오죽하면… 아니 내가 비록 딸이지만 얼마나 미더우면 나를 아들보다 더 의지하실까 싶어서 난 부모님에게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 이런 때 용돈을 요구하시다니, 사위가 근 한 달을 집에서 쉬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여타 저타 구구절절한 사정 얘기하지 않아도 사위가 집에 있으면서도 명절날 처갓집도 못 찾아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딸의 형편이 어떤 줄 짐작하고도 남아야 할 내 부모님이 오늘 저녁 기어이 나의 퍽퍽한 가슴을 두드려댄 것이다. 아니 이제껏 눌러두었던 나의 섭섭함이 엄마의 이물 없는 딸에 대한 투정 한마디에 터져나와 버린 것이다.

먼지가 나듯 설움이 피어오르더니, "나도 친정이 잘 살아서 한번 기대봤으면 싶네요!" 하고 말을 해버렸다.

들려오는 한숨소리…, 깊어가는 한숨소리….

엄마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고 계시던 아버지의 고함이 날아온 건 그때였다.

"전화도 헐 필요없다, 잘 살도 못 허는 친정에 날마다 전화는 뭣 헐라고 허냐? 끊어라!"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차가운 기계음만이 전해오는 수화기를 그 후로도 한참을 붙들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건 역시 아버지의 구수한 음성이 아닌 뚜뚜 거리는 차가운 소음뿐이었다.

백 번도 더 망설였다. 평생을 그저 먹고사는 일에 치여 곁눈질 한번 못하고 살아오시고 이제는 늙어버린 그 가여운 부모님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두 양주가 마주앉아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리쉴까? 그래 내가 천번만번 잘못했으니까. 전화를 넣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려야지….

그런데 나도 사람인가 보다. 아니 나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효녀는 아니었던가 보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파는 듯 서운했다. 못 살아도 못 산 티 안 내고, 서운해도 속 없는 듯 그저 허허 웃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 부모님에게만은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딸이 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부모님 가슴에 상처만 남긴 나쁜 딸, 부모님에게 용돈 한 푼 드릴 줄 모르는 독한 딸이었다.

저녁 9시면 잠이 드시는 부모님은 아마도 오늘밤은 잠 못 드신 채 뒤척이시겠지…. 맥없는 바람을 탓하며, 파도소리를 탓하며….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이고, 엄마 없으면 절대 못 산다고 엄마가 슈퍼라도 갈라치면 두 번 세 번 못을 박으며 따라나서는 다섯살배기 딸아이가 막 잠이 들려는데….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잠드는 그 순간도 놓치기 아까워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쳐다보면서 좋은 꿈꾸라고, 꽃길만 걸으라고 정수리를 쓸어내려주시며 나를 꿈나라도 인도했겠지 생각했다.

"민아… 우리는 행복하게 살자, 싸우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알았지?"
"응, 엄마 우리는 가족이잖아… 엄마 싸랑해!"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아이의 얼굴 위로 주름모자 잔뜩 눌러쓴 엄마의 늙은 얼굴이 오버랩되어 나의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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