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들'

[인터뷰] 인니 한인사회 문화보고서 <아름다운 한국인> 펴낸 손인식씨

등록 2006.02.08 15:36수정 2006.02.0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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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지음, 아름다운 한국인, 신국판, 304쪽, 2006년
손인식 지음, 아름다운 한국인, 신국판, 304쪽, 2006년손인식
병술년(丙戌年)으로 해가 바뀌고 열흘이 지난 1월 10일, 인도네시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서예가 인재 손인식씨로부터 200자 원고지 1200매에 달하는 <아름다운 한국인> 단행본 원고를 받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인도네시아 교민신문 <한타임스>에 기획연재하였던 '예술가가 만난 사람들' 원고였다.

첨부된 사진과 원고를 읽고 편집하면서, 작가가 전달하고 묘사해낸 인터뷰이(interviewee)들에게서 인터뷰어(interviewer)인 작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터뷰어가 자신의 내면과의 인터뷰로 상징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 손인식씨는 다양한 인터뷰이들로부터 어떠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서예가'인 저자에게 어떻게 다가왔으며, 또 어떻게 창작 동인으로 작동하였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 기사는 1월 15일부터 31일까지 수 차례에 걸쳐 이메일 및 메신저, 전화로 인터뷰한 기록이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교민신문인 <한타임스>에 많은 글들을 기고해온 것으로 압니다. 이번 단행본 <아름다운 한국인>으로 출간된 '예술가가 만난 사람들' 연재는 언제부터 시작하였습니까?
"저는 서예가로서 더러 문학적 수단을 통해 서예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붓꽃>이라는 연작 시집도 그렇고, <먹빛 찾기>, <서예 창작의 원리> 등과 작품집을 출간하면서도 꼭 창작단상을 통해 작품 이면의 이야기 붙인 것 등이 그 예입니다. 국내보다 여기는 제 글쓰기가 더 필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서예와 저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작품 이상의 수단이었어요. '예술가가 만난 사람들'은 제가 2004년 일 년에 걸쳐 진행했던 '아름다운 축제'에 이은 것으로서, 2005년 일년을 계획하고 1월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한해 52주를 격주로 26회를 진행 하려던 것이었는데, 첫 회 시작이 1월 17일이어서 12월 말까지 25회로 마친 것입니다."

- '예술가가 만난 사람들' 기획연재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돈 벌기 바쁜 사업가들은 문화적 기록을 생각하지 않지요. 역사의 많은 문헌들이 서예 고전이요 서예가는 늘 그 중심에 있다는 역사적 사실도 저를 자극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앞에서도 밝혔듯이 우선 제 가치성 증거였지만, 이곳 한인사회가 너무 기록이 안 되고 있는 점도 안타까웠어요.

이젠 교민들이 많아져서 이런 저런 문화활동도 많은데 그 실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것은 물론 성과는 더욱 기록되지 않고 있는 거예요. 예컨대 1972년에 출범한 한국부인회가 지금까지 이어졌지만 연혁을 제가 찾아 작성했거든요. 대표적인 종교 공동체와 문화단체, 활동이 도드라지는 문화인, 그리고 한인사회의 중심이 되는 공동체와 기관을 선정해서 탐방하고 이를 기록한 것이지요."


재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이선진 대사와 인터뷰 중인 저자 손인식 씨
재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이선진 대사와 인터뷰 중인 저자 손인식 씨손인식
-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체 혹은 개인들을 간단히 분류, 언급해주십시오.

"우선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 공동체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문화예술 단체와 교육계, 체육계도 포함되어 있으며, 국제결혼한 한국인 여성단체, 활동이 매우 활발한 한국인 2세들, 사회단체로서 3곳의 한인회와 노인대학, 부인회, 정부파견 기관으로서 코이카와 홍보센터, 대사관을 탐방했습니다. 대개 역할과 공로, 비전 등을 기록한 것이지요."


- 많은 사람들이 '붓' 한 자루 들고 서예문화 권외 지역인 인도네시아로 가서 "과연 그곳에서 '서예가'로서의 활동을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특히 일련의 다양한 활동은 한편으로 보면 '서예가'로서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서예가'라는 본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요?
"분명 저는 영역확장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일이지만,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어서 서예가라는 본분에 빗댄다면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외도이기도 할까요? 앞으로 이 경험과 확장된 관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확장이었는지 낭비였는지 외도였는지 결과가 나타나겠지요. 다만 이 경험을 통해서 이 사회가 지닌 정체성과 개인들의 심리, 단체들의 현상을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파악해냈다는 것이 현재의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대담을 하면서 제가 알고자 하는 부분을 많이 물었고, 다시 그 대담 내용을 정리하고 또 조사를 하면서 명료해진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대사관과 대사에 관해 쓰려니 한국인이 인니에 언제부터 살았을까가 궁금하더군요. 문헌을 뒤지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예전에는 그냥 스쳤던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옥 황후 일족의 이야기였어요. 이들이 인도 드라비다 지방의 아유타국에서 출발하여 해상로를 따라 한반도 남부로 유입될 때 인도네시아 경유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닷길, 일명 '향료길' 인근의 일부 언어와 풍습에 우리민족이 이곳을 경유한 문화의 흔적이 많이 있다는 문헌을 읽고 참 묘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 '예술'이란 작가 내면과의 부단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는데, 원고를 읽다가 보면 대담자와 만나서 얘기하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필자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 그대로 '예술가의 사회접촉'이었어요. 그것도 아주 낯선 사회를 말이에요. 자유롭게 접촉하고 싶어서 그런 제목을 붙였지요. 사실 예술가의 삶은 늘 낯선 것을 창출하기 위해 자기를 낯설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질문을 던지고 대담을 정리하는 일이 인니 한인사회 엘리트들의 내면과 현실 들여다보기였기 때문에 때에 따라 제 느낌을 밝힐 필요성도 느꼈어요. 이 사회의 선구자, 지도자들의 경험과 철학, 비전을 기록을 통해 널리 알리고 귀감으로 삼자는 것으로서, 기 보유한 문화현상을 잘 다듬어 내어 놓는 것이 곧 저를 다듬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네시아 교민신문 <한타임스>에 2005년 1년 동안 연재된 원고를 묶어 <아름다운 한국인>으로 펴냈다.
인도네시아 교민신문 <한타임스>에 2005년 1년 동안 연재된 원고를 묶어 <아름다운 한국인>으로 펴냈다.손인식
- 내용 중에 "세 번을 물었다. 출발하기 전 길을 물었고 골목 어귀에 들어선 다음 두 번을 더 물었다. 찾아도 찾지 않아도 길 끝에는 답이 있는 것인가."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은유로 읽혀졌는데, '한 번도 묻지 않았는데 저절로 찾아지는 집', 그것이 화두라고 했던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특히 '서(書)'에 있어서 '세 번의 물음'과 '한 번의 물음'은 어떠한 상징과 은유, 혹은 창작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는지요?
"찾아갈 때는 오직 길만 두리번거리면서 세 번 물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머릿속이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해서 길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사이 집에 다다랐어요. 간절히 찾아 갔던 낯선 집과 저절로 찾아지는 제 집 사이가 참 멀기도 하고 거리가 없는 것 같기도 했어요.

삶도 작품도 간절히 물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찌 쉬이 가는 길이라고 없겠습니까. 어쨌든 간절히 찾아온 이곳에서 무엇을 찾아 저와 제 작품을 살찌울지 아직 모르지만 제게 이 '새길'은 늘 화두가 아닐 수 없지요."

창작 및 작품 활동과 관련한 근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여전히 작품, 찾아오는 사람 지도 등 관련 활동을 하며 지냅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지방과 인근 국가 순회전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아직 실행을 못하고 있습니다. 순수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척박한 곳임에 틀림이 없지만, 일련의 제 활동들을 조금씩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로 근황을 대신하겠습니다. 서예창작 못지않게 읽고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요즈음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온 지 벌써 3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이 꺼내놓은 기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되도록 성원해주세요."

올해 세워놓은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여건이 되면 이번의 책 말고도 준비하고 있는 책 한 권 정도를 더 발간할까 합니다. 국내전도 계획하고 있는데 잘 될까 싶습니다. 확신을 못하는 것은 '되는 것도 없는 나라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가 인니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추이를 살펴가면서 실행해야지요. 그보다 이 기회를 빌려 저를 아는 국내의 모든 작가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 뜻대로 이루십시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서예가이자 시인인 손인식 씨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강원대, 경희대, 성균관대, 전주대, 한성대 등에서 서예, 문인화, 전각 과목의 이론과 실기를 강의했다. 『먹빛찾기』『서예창작의 원리』와 같은 이론서를 포함 작품집, 교본, 시집 등 11권의 저서와 공, 편저 2권을 출간했으며, 청와대, 예술의 전당, 서울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I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03년 4월부터 자카르타의 인니서예연구재단(YPKI)에서 서화를 지도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과 오마이뉴스의 뉴스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다. Homepage : www.soninjae.co.kr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예가이자 시인인 손인식 씨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강원대, 경희대, 성균관대, 전주대, 한성대 등에서 서예, 문인화, 전각 과목의 이론과 실기를 강의했다. 『먹빛찾기』『서예창작의 원리』와 같은 이론서를 포함 작품집, 교본, 시집 등 11권의 저서와 공, 편저 2권을 출간했으며, 청와대, 예술의 전당, 서울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I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03년 4월부터 자카르타의 인니서예연구재단(YPKI)에서 서화를 지도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과 오마이뉴스의 뉴스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다. Homepage : www.soninjae.co.kr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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