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강원도는 온통 산이다. 마을은 그 산의 중턱에 있거나 아니면 산의 아래 자락으로 낮게 몸을 맡기고 있다. 때문에 강원도에선 산에 오르지 않는 한 시선이 멀리 갈 수가 없다. 항상 산이 그 시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강원도에서 20여 년을 자랐다. 영월 읍내로부터 40리 가량 떨어진 산골 마을이었다. 이번에 함께 태백산을 갔던 서울 사람들은 내가 자란 그 첩첩산중을 지나면서 "야, 이런 곳에서 서울을 왔으니 크게 출세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뜨면 산부터 보이는 곳에서 자란 나에게 사실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자랄 때 나에게 있어 '산을 오른다'는 것은 그냥 '산을 걷는다'였다. 그러니까 나는 산을 올라다닌 것이 아니라 산을 걸어다녔던 셈이다. 그 둘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약간의 차이를 갖고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을 염두에 두고 산의 꼭대기까지 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산을 걸어다닐 때는 그냥 산을 돌아다니는 것이며, 그때의 시선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마치 평지처럼 산길을 간다. 그리고 그 걸음의 와중에서 많은 것들을 만난다. 바람을 만나고, 나무를 만나며, 햇볕을 만난다. 나는 유독히 산길을 따라 이리저리 산을 돌아다니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알고 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길에서 부딪치는 그 많은 만남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난 4일, 태백산을 오를 때 나는 태백산을 오르기보다 예전처럼 산을 걸으며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만나고 있었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밭은 원래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평탄하다. 산비탈에 있어도 밭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법이 없다. 그러나 농부가 그 밭에 이랑을 내면 그때부터 밭엔 물결이 일렁인다. 오늘은 그 밭에 눈이 덮였다. 황토빛 물결이 오늘은 흰빛 물결이 되었다. 나는 발목까지 빠지는 밭에 들어가 물결 위를 걸었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나무는 키가 작을 때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있지만 키가 크게 자라면 그때부터 하늘을 콕콕 찌른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입에 올리긴 쉽지만 천 년이란 세월은 사실 얼마나 아득한 것인가. 오늘 이 태백산 주목의 아래쪽을 지나간 사람들은 그가 지켜가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의 세월 속에 아득한 흔적 하나를 남기고 가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르는 산길은 태백산 주목이 지켜온 아득한 천 년 세월의 길이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몸을 꼿꼿이 세우고 키를 키운 나무는 하늘을 찌르지만 구불구불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난 나무는 키가 자라도 하늘을 찌르지 않는다. 그냥 날 좋은 날 더듬더듬 푸른 하늘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칠 뿐이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가끔 사람들이 없을 때면 나무를 안아 보고 싶다. 나무가 옆으로 펼쳐든 가지가 나의 포옹을 기다리는 나무의 반가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내 고향의 작은 뒷산이나 앞산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산에 오르니 저 아래 내가 올려다 보던 산들이 큰 산 아래 올망졸망 모여살고 있다. 큰 산 아래 작은 산들이 모여 살고, 작은 산 아래 마을이 모여 산다. 산 아래 모여사는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 느낌이 따뜻하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아아, 마이크 시험 중. 안녕하세요, 태백산의 온갖 나무, 새, 바람, 동물 여러분! 태백산 이장 천년 주목입니다. 오늘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희 산을 찾아왔습니다. 부디 반갑게 맞아주시고, 외지분들이 등산로 아닌 곳에 들어가지 말고 쓰레기 버리지 않도록 잘 지도해 주세요." 이장님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바람을 타고 태백산 산길에 울려퍼질 듯한 느낌이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호리호리한 몸매로 허리 한 번 비트니 그 자태가 너무 선정적이다. 사람들 눈치보며 몰래 훔쳐 보았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주목은 그 이름은 붉지만 가지 끝의 나뭇잎엔 푸른 색이 산다. 눈이 내리면 그 푸른 색이나 붉은 색 위에 잠시 흰색이 거처하다 간다. 큰사진보기 ▲김동원 이날 유난히 하늘이 파랬다. 주목이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얘기는 살아있을 때 땅 속 깊은 곳의 물을 길어올려 목을 축이고, 죽어선 푸른 하늘로 목을 축이기에 가능한 얘기이리라. 그러고 보면 주목의 죽어 천 년은 푸르고 시린 이 나라의 하늘이 가져다 준 또 다른 삶인 셈이다. 주목의 옆에서 한참 동안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슴의 갈증이 크게 가셨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7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김동원 (backnine) 내방 구독하기 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모이] 베란다에서 지켜본 '블랙이글스' 에어쇼 연습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AD AD AD 인기기사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사람들이 없을 때면 나무를 안고 싶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팔순잔치 쓰레기 어쩔 거야? 시골 어르신들의 '다툼' 윤석열 대통령 골프 논란... 국힘-용산의 '대환장' 질의응답 [주장] 변호사가 본 이재명 1심 판결과 민주당이 해야할 일 천막 탈의하는 여자선수들이 충격? 더한 것도 있습니다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