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화 카롤리 마르코의 '밀 수확'을 보며

등록 2006.02.10 20:44수정 2006.02.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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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패턴도 시대와 화가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풍경을 소재(素材)로 삼은 사실화법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a 이 그림은 헝가리 화가 카롤리 마르코의 작품으로  60-70년대, 우리나라 6월 중순 농촌 모습과 지극히 흡사합니다

이 그림은 헝가리 화가 카롤리 마르코의 작품으로 60-70년대, 우리나라 6월 중순 농촌 모습과 지극히 흡사합니다 ⓒ 김청구

이 방법의 서양화 대가에 헝가리 태생의 화가 카롤리 마르코(Karoly Marko)가 있습니다. 마르코는 1791년에 태어나 1860년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에 여러 그림이 있겠지만 나는 그의 작품 '밀 수확'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렸을 적 여름철에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밀ㆍ보리밭에서 밀ㆍ보리를 베고 나르던 생각이 짙게 피어오릅니다.

그때는 그 일이 얼마나 지겨웠는지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밀 수확을 대체로 6월 상순∼중순에 하게 됩니다. 6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장마의 문턱에 임한 때인지라 하늘엔 흰 구름 몇 점 날리고 태양은 이글거리는 계절이지요.

이런 일을 생각하며 카롤리 마르코의 '밀 수확'을 보노라면, 어릴 때 부모님을 도와 밀밭에서 땀 줄줄 흘리며 일할 때 얼굴과 목덜미에 꾹꾹 찌르는 밀 꺼끄러기(밀이나 보리 껍질에 바늘같이 치솟은 수염 같은 털. 이 수염에 매우 작은 가시가 달려 있어 몸에 닿으면 살을 꾹꾹 찌름)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이것은 일하는 농부들을 성가시게 합니다.

다시 카롤리 마르코의 '밀 수확'을 바라봅니다. 그림 중앙에 뙤약볕에 일하던 농부들이 피곤을 달랠 수 있는, 낮은 언덕과 평화롭게 잘 자란 나무들이 보입니다. 그 언덕을 경계로 하여 하늘과 땅(지평)을 나누었습니다.

이 그림 전면(全面)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바라보면, 그림을 가로지른 지평선을 위에서부터 약 4/7쯤 내려온 곳에 설정했습니다. 즉 하늘 공간이 약 4/7를, 그리고 밀밭과 언덕이 3/7을 차지했습니다. 아주 균형 잡힌 분할이라 생각합니다.


하늘은 색으로 보나 물질(무상의 공기)로 생각하나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는 하늘 공간을 땅 넓이보다 조금 더 넓게 배치한 것 같습니다. 이 지평선을 하늘 쪽으로 조금 더 올려 '하늘과 땅'의 비를 3:4로 구도했다면, (땅이 넓으므로) 그림이 너무 무겁고 (하늘이 좁아서) 갑갑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절도 찌는 듯 무더운 때인데, 드높아야 할 하늘마저 좁다면 보는 이들의 시선이 답답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그림이 좋은 점은 잘 익은 밀이 대지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익은 밀은 황금색입니다. 찬란한 빛깔도 좋거니와 그 빛이 화면을 밝게 해주어 좋습니다. 대지에는 여남은 명의 농부 가족, 일하는 사람, 수레를 타고 작업장으로 가는 사람이, 숲이 죽 늘어선 강에는 배를 타고 농장으로 건너오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고향에서 수없이 본 바로 그 전경입니다. 일하는 그들이 '나'라면 덥고, 밀 꺼끄러기가 몸을 꾹꾹 찌르는 힘든 농장이겠지만, 이 그림을 바라보는 현재의 나는, 눈과 귀가 늘 혹사당해야 하는 도회의 모습에 대조되어, 마음이 착 가라앉고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그 농장 위에는 7월이면 연거푸 비를 내릴 하늘이 장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구름과 그 아래 한결 짙은 회색 구름. 이런 날이 여러 날 지나면 장마와 폭우는 어김없이 찾아오거든요. 그림 속의 저 농부들도 그날이 오기 전에 수확을 하려고 모두 비지땀을 흘리고 있겠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빼면 밀보리를 경작하는 농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중부 지역에서도 카롤리 마르코의 '밀 수확' 같은 모습을 실물로 볼 수 있으면 이 땅에서도 '청맥화'가 아닌, 저런 세계적 명화가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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