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배시대, 정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고-박성민 MIN대표] 대선후보 경쟁력을 재보는 '9대 결정 요소'

등록 2006.02.13 16:09수정 2006.02.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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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이 확정된 직 후 민주당사에서 꽃다발을 받은 노무현 당선자와 권양숙 여사.
당선이 확정된 직 후 민주당사에서 꽃다발을 받은 노무현 당선자와 권양숙 여사.마이너

솔직히 말해 2001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이 있었을까?

대통령은 고사하고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경선을 코앞에 둔 2002년 봄까지도 노무현의 찬란한 앞날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기야 후보가 된 뒤 지지도가 60%를 넘는 상황에서도 '설마(?) 노무현이…'라면서 선뜻 믿지 못했으니 말이다.

2006년 1월 현재 노무현은 임기 절반을 넘긴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무현만큼이나 '극적으로' 유시민은 대한민국의 장관이 되었다. 이들만큼 극적인 사람이 또 있다. 기존 질서에 거의 혁명적(?) 수준의 충격을 주며 법무부장관이 되었던 변호사 강금실은 "정치보다 춤이 좋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자리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수도 없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데렐라'처럼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연일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극적이기는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불과 '재선'의원이었던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고 유력한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이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거대한 판과 판이 부닥친 '탄핵'의 큰 지진이 기존의 지형을 완전히 무너뜨리던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새로운 산맥으로 우뚝 솟았다. 고건 역시 탄핵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새로운 대륙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청계천의 뗏목'을 타고 이명박이 미래로 흐르고 있다. 한때는 '권부'로 통한 2인자 권노갑의 면전에서 허를 찌르는 "2선으로 물러나라"는 한 마디를 날려 일약 정치계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던 정동영도 통일부 장관을 거쳐 다시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접수하려고 하고 있다. 그 역시 박 대표와 마찬가지로 50대 초반의 재선의원이다.

이들이 차기 대권을 놓고 다투는 사이 이회창·이인제·정몽준·조순은 어디로 갔는가. 이들은 차치하더라도 4·5선의 '거물급' 의원들은 왜 하나같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과거 같으면 계파를 거느린 이들이 정치를 쥐락펴락 했을 뿐만 아니라 대권 경쟁도 당연히 이들의 것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신화 그 뒤, 중진은 없다


세상은 변했다. 변해도 아주 많이 변했다. 정치에서 중진은 더 이상 권위도 아니고 경륜도 아니다. '구태의연'의 상징일 뿐이다. 대중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하는 구식 모델의 상품일 뿐이다. 이제 대중은 다른 것이 아니면 새롭게 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지금은 대중의 시대다. 대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정치인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인을 지배한다. 정치인의 성공 여부는 오직 대중성에 있을 뿐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예견처럼 '모든 대중이 엘리트가 되고 모든 엘리트가 대중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에는 학력·경력·사회적 지위·경제력·정보력에서 정치인이 대중을 압도하던 시대가 있었다. 대중이 갖지 못한 것을 정치인이 갖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없다. 이제는 정치인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인을 지배하고 통치한다. 이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권력기관을 욕하면서 겁 먹는 대중은 거의 없다. 대중이 무서워서 말못하는 정치인이 있을 뿐이다.

여기 원형극장이 있다. 이 극장에서 노예 출신의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을 황제와 귀족들은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라! 누가 칼을 들고 싸우고 있는가. 바로 황제가 아닌가? 그렇다. 이제는 황제가 칼을 들고 싸우고 대중은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다. 노무현·부시·박근혜·고이즈미가 칼을 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낮은 지지도를 걱정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의 낮은 인기가 아니다. 그가 비록 대통령으로서는 인기가 없을지 몰라도(그것도 임기가 끝나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신화는 예상못했던 그가 대통령이 된 사실에 있다. 아니 그가 간 길은 모두가 전설과 신화의 길이다.

2001년 대통령 후보로 예상되는 민주당의 정치인들 중 거의 꼴찌였던 그가 어떻게 이인제와 정몽준을 꺾고 마침내 이회창을 꺾었을까. 그가 만든 열린우리당 역시 17대 총선에서 아무도 예상못한 151석의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노무현은 어떻게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한편 이회창·정몽준·이인제·조순 같은 정치인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대통령이 거의 될 뻔했다가 결국 실패한 것일까.

정치인들은 왜 성공하고, 왜 실패하는가

이러한 의문 때문에 필자는 한국의 대표적 대중 정치인들의 10년 행로를 추적했다. 어떤 정치인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에서 승리하는 반면, 어떤 정치인은 거의 손에 넣었던 승리를 허무하게 놓치고 어이없는 패배자가 되는 것은 어떤 요소 때문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대중지배시대에 정치인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아홉 가지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치의 주도권이 정치인에게서 대중으로 넘어오는 파워시프트의 현실을 고려할 때 필자는 이 아홉 가지의 조건이 정치적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홉 가지 조건은 ▲대중성 ▲자기다움 ▲지지기반 ▲선거기여도 ▲이슈주도력 ▲권력의지 ▲미래비전 ▲정치적 감각 ▲시대적 운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인은 '대중성이 있는 정치인'과 '대중성이 없는 정치인'으로 나눌 수 있다. 그만큼 대중성은 정치인의 절대 조건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의 언어를 쓸 줄 알며, 대중에게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정치인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대중성을 얻겠다는 이유로 어색하고 어울지지 않는 가벼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매운 것은 매워서, 짠 것은 짜서 좋아한다. 매운탕에 설탕을 넣거나 커피에 소금을 쳐서는 제 맛을 낼 수 없다. 자기만의 색깔로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 '자기다움'이다.

한국정치에서 지역주의의 위력은 여전하다. 언론·기업·종교·학계·시민단체 등 정치인의 사회적 기반도 사실 알고 보면 지역기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지역대표성(지지기반)을 가진 정치인이 그렇지 못한 정치인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전문가 집단이 점수매긴 아홉가지 경쟁력은

대중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의 선거에서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수'는 '선수들'에게서 인정받아야 한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에게서 '선거 기여도'로 평가받는다. 정치의 꽃은 선거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정치는 이기게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슈를 주도한다는 것은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중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기주장을 분명히 내세우는 정치인에 열광한다. 그래서 이슈를 주도하는 능력과 의지는 대중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첫번째 덕목이다.

오늘날 승리한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공통된 덕목은 '권력의지'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피하지 않겠다"는 식의 겸손을 가장한 욕심은 오히려 추해 보인다. 하고 싶으면 "꼭 한번 하고 싶다"고 말하고 "정말 준비를 많이 했으니 나에게 맡겨 달라"고 말해야 대중은 그 일을 믿고 맡긴다.

대중은 '미래비전'을 보여주는 정치인에게 매료당한다. 그가 과거에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을 했더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대중은 그 정치인이 가져다 줄 미래가치를 통해 그의 과거를 볼 뿐이다. '미래를 파는' 사람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메시지 그 자체보다 메시지를 언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더 신경써야 한다. 대중은 정치인이 전하는 메시지보다 그가 보여주는 결단력, 일관성, 타이밍을 통해서 지도자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그런 '정치적 감각'에서 지도자의 이미지를 찾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남 출신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또 영남 출신의 불안정한 대통령 이미지 때문에 호남 출신의 안정된 이미지의 고건이 주목받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경제인 출신이 각광받는다. 이렇듯 정치인은 '시대적 운'이 따라야 한다. 다만 그 운은 준비된 정치인에게 온다.

필자는 어떤 정치인이 승리할 것인가는 결국 위의 아홉가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해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9대 결정 요소'를 통해 대선후보들의 경쟁력을 조사하였다.

물론 이 틀은 이론적으로 검증된 모형은 아니다. 또한 2007년 대선까지는 많은 변수들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조사는 당선이 유력한 대권후보를 예측해보는 데 있지 않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각 캠프가 대권경쟁의 전반부를 마친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한 번 점검해 보는 계기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획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성민(정치컨설팅그룹 MIN 대표)은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컨설턴트 중의 한 사람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약 15년 동안 대선, 총선 등을 비롯한 100여 차례 이상의 크고 작은 선거에 참여해왔다. 저서로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웅진지식하우스)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박성민(정치컨설팅그룹 MIN 대표)은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컨설턴트 중의 한 사람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약 15년 동안 대선, 총선 등을 비롯한 100여 차례 이상의 크고 작은 선거에 참여해왔다. 저서로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웅진지식하우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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