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김대중 칼럼'을 통박함

[정치 톺아보기 117] 13일자 칼럼을 읽는 다섯가지 키워드

등록 2006.02.14 12:56수정 2006.02.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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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 계획을 둘러싸고 검증되지 않은 예단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논의를 할 것이라는 둥, 노무현 대통령 전용철도로 방북해 국군포로나 납북어부를 일부 데리고 귀환할 것이라는 둥 하는 얘기가 그것이다.

최근 들어 DJ의 '4월 방북효과'를 미리부터 경계하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경고성 발언이 이어지더니, 급기야는 13일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까지 나서서 'DJ 방북 재고해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DJ의 방북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 김 전 대통령측에 따르면, DJ는 현재 정부를 통해 "4월 하순경 철도를 통해 방북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하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현단계에서 DJ에게 방북을 재고하라는 것은 사실상 반대여론 조성용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 김대중 고문의 칼럼을 톺아보자 : ① 유치함

a <조선일보> 13일자 '김대중 칼럼'. 칼럼의 핵심요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하순' 방북 계획은 재고되었으면 한다"는 첫문장에 다 있다.

<조선일보> 13일자 '김대중 칼럼'. 칼럼의 핵심요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하순' 방북 계획은 재고되었으면 한다"는 첫문장에 다 있다. ⓒ 조선일보 PDF

성질 급한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도 '단도직입'으로 결론부터 앞세웠다. 칼럼의 핵심요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하순' 방북(訪北) 계획은 재고(再考)되었으면 한다"는 '점잖은' 첫 문장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나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 '점잖음'은 곧바로 '유치함'으로 바뀐다.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고, 재임 기간 중 김정일의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통탄해왔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이번 재도전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답방과 남북연방제 '진전'을 위해 비판언론에 끝내 세무조사와 발행인 구속이라는 '독약처방'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여기서 멈출 수가 없을 것으로 이해된다."

DJ의 재방북 의지를 '재도전'으로 표현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재방북 계획을 지난 2001년에 이뤄진 언론사 세무조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세무조사로 골수에 사무친 그의 원한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왜 난데없이 언론사 세무조사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② 과문? 무지?

DJ의 재방북 배경에 대해 "자신의 생전에 자신이 시작했던 대북(對北) 이니셔티브에 어떤 매듭을 얻고 싶었을 것"이라는 해석과 "그것은 거의 신앙이나 집념에 가까운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DJ가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과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일단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런 집념과 열정은 무리수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는 현직이 아니다. 그는 권한도 없다. 그가 북한의 지도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든 그것은 국민적 수임의 무게를 지닐 수 없다. 그런 여건에서 그의 집념은 과욕을 불러올 수 있고 그 과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DJ는 지난 94년 5월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NPC)에서 연설을 했다. 갈팡질팡하며 냉·온탕을 오간 김영삼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과 북한의 핵개발 위협이 한반도를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을 때였다.

한국인 중에서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 가장 많이 선 인물인 DJ는 NPC 초청연설에서 "북·미 관계 개선을 원하는 북한에 미국의 원로급 정치인을 보내 핵문제를 일괄타결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미 92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해 정계를 은퇴한 그는 당시 '현직'이 아니었다.

이후 클린턴 행정부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냈고, 이를 계기로 북한핵 문제는 DJ의 해법대로 일괄타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해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상회담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 카터는 6월 방북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선물보따리까지 들고 왔다. 카터는 오히려 '전직'이었기에 형식과 의전에 얽매인 '현직'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기자와 임원(이사)에 걸쳐 워싱턴특파원을 두 번씩이나 지낸 것으로 알려진 대기자이다. 그런만큼 94년 여름 북핵 1차위기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과 카터 전 대통령이 했던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과문'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오히려 DJ가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더라도 부담이 적고, 그렇기에 그로서는 과욕을 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에 입각한 올바른 글쓰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의 국가를 위한 마지막 봉사에 대해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가론을 펴는 것은, 그의 과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과를 걱정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③ 독심술

a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시내 목란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로부터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시내 목란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로부터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사진공동취재단

오지랖 넓은 김대중 고문의 '우국충정'은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넘나든다. 타인의 성격과 기분까지 들여다보는 그의 독심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심중을 꿰뚫는다.

"김정일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식특사가 아닌 DJ와 무슨 책임 있는 얘기를 나누려 할 것인가. 북의 DJ 초청은 센티멘털한 성격의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대남교란용일는지도 모른다. 시기도 김일성 생일이 든 달이란 점에서 북측이 DJ 방북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그렇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왜 하필이면 4월이냐"며 "가더라도 5·31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다녀오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양국간의 의전이 있고 무엇보다도 이쪽이 손님인 만큼 초청자의 뜻이 중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미 수 차례 방북 초청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꽃피는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꽃피는 좋은 계절'이라는 표현에는 '부담없이 다녀가라'는 중의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꽃피는 춘3월은 양력으로 4월이다.

또 DJ측에서 4월 방북을 희망한 것은 4월중 경의선 철도 개통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경의선 철도는 이미 연결되었지만 북측의 사정으로 개통이 연기되는 것을 방북을 계기로 앞당기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④ 이간질

사정이 그런데도 김대중 고문의 눈길은 오직 정치 쪽으로만 향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그의 방북은 문제가 있다. 우선 4월 중순이라는 시기가 5·31 지방선거와 연관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아주 치사한 북풍(北風)유도 책동이다. 방북결과에 따라서는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와 관련 DJ의 한 측근은 "남북한에는 서로 기피하는 기념일이 많다"고 전제하고 "북측의 기념일(4·15 태양절)과 남측의 정치일정(5·31 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4월 하순을 택일한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에게 북풍 유도 운운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와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한나라당 소원대로 지방선거 끝나고 6월에 간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그러면 또 김대중 고문은 "'조국해방전쟁(6·25) 전승 기념일'이 든 달이란 점에서 북측이 DJ 방북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반대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대중 고문이 실제로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 대목에 있는 듯싶다. 어쩌면 이 대목을 쓰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도 그 자신이 남북정상회담을 능동적으로 추진할 입장인데 그것을 굳이 '전직'의 후광에 기대는 것 같은 모양새는 그를 초라하게 만든다. 설령 DJ 방북에 무슨 성과가 있더라도 주연(主演)이어야 할 노 대통령은 조연(助演)으로 밀려나는 모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노 정권이 그의 방북을 종용하는 것은 DJ의 햇볕정책 계승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DJ가 내세우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과 정치적 거래(?)를 하는 인상마저 준다."

스스로 '모욕'과 '정치적 거래'라는 표현에 '물음표'를 사용해 '자신없음'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런 억지 주장은 실제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노 정권은 DJ에게 방북을 '종용'한 적이 없다. DJ가 정부에 방북을 희망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인상분석이야말로 김대중 고문식 표현을 빌리면 전·현직 대통령의 틈새를 벌리려는 '아주 치사한 이간질 유도 책동'이 아닐 수 없다.

DJ측은 현재 정부를 통해 '4월 하순께 철도를 통해 방북하길 희망한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하고 회답을 기다리는 상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언론과 정치권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DJ측은 일부 언론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근 방북한 임채정 의원과 이철 철도공사 사장을 통해 북측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일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비서실의 최경환 비서관은 14일 "모든 연락은 정부를 통해 하고 있을 뿐이고 (일부 언론 보도처럼) 다른 창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비서관은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어제 당정협의에서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이 지나야 북측의 회신이 올 것 같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고 말했다.

⑤ 마지막으로, 노추(老醜)

a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돌이켜보면 지난 94년 1차 북핵위기 때 현직이 아니었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과 카터 전 대통령의 방향(일괄타결) 제시와 중재(정상회담)로 북한과 미국은 그해 10월 체결한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를 통해 전쟁위기를 넘겼다. 나중에야 드러났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당시 북한 핵시설을 겨냥한 '정밀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북·미 제네바합의의 틀은 뒤이어 조성된 공화당의 의회 장악과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출범으로 흔들린 '불안한 평화'였지만, 그 체제로 근 10년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 틀은 미국을 겨냥한 국제테러를 계기로 파기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지금 '6자회담'의 틀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원로 정치인 김대중은 지금 젊은 현직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6자회담의 틀을 쌓는 데 벽돌 한 장을 보태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방북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남북상황이 DJ에 목을 맨 처지도 아니고 그가 해결의 마력(魔力)을 인정 받은 것도 아니다"는 원로 언론인 김대중의 현실인식은 너무 안일하다 못해 노추(老醜)의 인상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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