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 위에 쌓아올린 야생의 감동

환경운동연합 소모임 '하호' 야생조류 탐사기 (2) 월드컵 공원

등록 2006.02.14 18:25수정 2006.02.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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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우리 모두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대한민국을 온통 붉게 물들인 함성과 감동. 타원의 경기장과 거리에서 울고 웃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기억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놀라운 감동이었다. 그러나 뜨거운 열광의 흔적이 녹아 있는 그 월드컵 경기장 옆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2002년부터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를 잡은 월드컵 공원. 그 공원이 더러운 쓰레기 더미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낯설기만 하다.

고물을 주워 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명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들이 뒹굴고 쌓여 산처럼 만들어졌던 그곳은 93년 쓰레기 반입이 중단됐다. 이후 6년간 안정화 사업과 공원화 사업을 거쳐 2002년 공원으로 변모했다. 공원 꼭대기 하늘공원 입구에서 보이는 낮은 구릉이 사실 쓰레기더미 위에 얇은 흙을 덮어 만들어진 것이라니! 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양 편으로 보이는 작은 나무들과 풀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무에 앉아 있는 오색딱다구리
나무에 앉아 있는 오색딱다구리하호
나무 저편에서 '딱딱'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렸다. 쌍안경 너머로 선명히 보이는 오색딱따구리의 붉은 배. 그리고 겨울 나뭇가지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까치들. 쓰레기 위에 얕은 흙이 덮이던 어느 날 새들은 어디선가 씨앗을 물고와 그 위에 뿌렸을 것이다. 그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었다. 어느 새 그 씨앗이 싹트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내 열매를 맺고…. 자연의 생명력은 느리지만 자신들의 법칙대로 걸으며 놀라운 생명의 세상을 우리 앞에 보여 주었다.

하늘공원 위는 아직 다양한 식물이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인공적으로 조성된 억새풀만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억새풀 안에서 들리는 꿩의 울음소리. 좀처럼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줍은 소리에 귀기울이며 우리는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공원에서 훤히 보이는 월드컵 경기장과 아파트 건물들. 아파트 건물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그 곳엔 오래 전 쓰레기더미 안에서 고물을 주워 팔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새들이 이곳으로 날아오던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억새밭 안의 참새들
억새밭 안의 참새들하호
스모그에 쌓여 온통 회색인 서울의 건물들 사이로 빛나는 한강이 보였다. 이 서울을 길러내고 풍성하게 성장시킨 것은 그 한강이었다. 멀리 위엄을 과시하며 서 있는 북한산은 식물을 틔우고 열매를 키워 야생동물들을 번성시켜 주었다. 그 천혜의 장관 안에서 아름다운 도형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들. 억새풀들 사이 무리를 지어 둥근 원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는 붉은머리 오목눈이와 참새는 저 멀리 낯선 세상에 있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그 시간 동안 자연의 풍경 안에서. 그리고 생태적 부활을 꿈꾸는 서울 안에서.

맹꽁이와 꽃뱀이 바라본 인간의 모습은?

공원 중간에 '맹꽁이와 꽃뱀의 서식지'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새끼들이 인공배수로에 빠지지 않도록 자연 흙으로 만든 배수로는 사뭇 세심한 배려로 보였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맹꽁이는 멍청한 사람에게, 그리고 꽃뱀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특정 직업여성에게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자체의 모습과 습관으로 자신들의 삶을 다할 것이다. 혹시 그들의 눈에 우리 인간이 오히려 한심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건 아닐지.


노랑지빠귀
노랑지빠귀하호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하늘공원을 내려오는 계단 아래 높게 솟은 나무 위로 삐잇-삐잇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직박구리! 파도치듯 날아가는 직박구리의 회갈색 날개 저 너머로 맑게 갠 하늘을 홀로 날고 있는 큰 말똥가리가 보였다. 가는 줄무늬로 수놓은 큰 말똥가리의 느릿한 날갯짓은 오랜 시간 우리를 그 자리에 머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연이 만들어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공원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보다 더욱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모차르트의 영감조차 저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월드컵 공원 탐조의 또 하나의 재미는 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탐조교실이다. 주말 오후.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뒤를 따라 난지천으로 이동했다. 인공 놀이공원에 익숙한 아이들은 강 주위에 떼 지어 나는 참새와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빠른 움직임, 하얀 몸체를 뽐내는 백할미새, 검은색 띠를 두른 박새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듯했다. 아이들의 탄성에 놀라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노랑지빠귀. 아이들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빛나는 난지천에서 새들이 속한 세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소중한 진리를 배웠을 것이다.


물위를 헤엄치는 흰뺨검둥오리
물위를 헤엄치는 흰뺨검둥오리하호
매서운 1월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난지천 곳곳에서 청둥오리와 흰뺨 검둥오리 쇠오리는 천천히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느릿하고 여유 있는 날갯짓으로 물 위에 아름다운 파장을 만들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더욱 빨리 달리고, 더욱 많이 소비하려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사이 자연의 소박하지만 넉넉하고 아름다운 빛을 그들만은 풍요롭게 누리고 있었다.

어느새 월드컵 경기장 뒤로 붉은 기운이 퍼졌다. 그리고 곳곳에서 날아오르는 새들. 생명이라고는 한 줌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던 폐허 위에 새들은 희망을 물고 왔다. 우리가 던져 놓은 쓰레기 더미 위에 아름답게 꽃피운 생명. 하늘 공원 위 바람에 돌고 있던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이 탁한 서울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살아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시작일 것이다.

서울은 그리고 우리들의 지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 새들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가슴에 품고 돌아간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생태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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