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들빼기 안에 웬 나이론 망사가?

부실한 품질관리, 김치종주국이 될 수 있을까

등록 2006.02.19 13:22수정 2006.02.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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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실수려니 했다.


'그래, 깨끗한 공장에서 전문가가 담근 김치라고 해도 이런 게 들어갈 수 있겠지.'

우체국 특산품인 고들빼기 김치가 태평양을 건너 왔다. 그런데 김치에서 질긴 나이론 망사가 나왔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세 번씩이나.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시라.

며칠 전, 우리 집에 귀한 소포가 도착했다. 발신인을 보니 올케였다. 그동안 올케와 몇 차례 통화를 했지만 소포를 부쳤다는 말은 없었던지라 내용물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뭘 보냈을까?'

식구들의 시선이 모두 낯선 소포에 집중되었다.


"엄마, 궁금해. 빨리 뜯어봐."

소포를 뜯어보았다. 하얀 스티로폼이 나오고 안에는 김치가 들어 있었다.


'에엥, 웬 김치. 우리가 김치도 못 먹고 사는 줄 아나? 비싼 김치를 뭐하러 보내. 여기서 다 사 먹을 수 있고 담가 먹기도 하는데. 괜한 돈을 쓰고.'

소포 겉 포장에 적힌 5만 2240원이라는 거금(?)을 보면서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50달러면 큰 돈인데 이깟 흔해 빠진 김치를 뭐하게 보냈담."
(우리집 냉장고에는 지금 김치가 풍년이다. 지난 번 워싱턴에 갔다가 배추를 많이 사서 몽땅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보통 김치가 아니었다. 고들빼기였다. 사실 이곳 해리슨버그에는 배추나 김치를 사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1시간 40분 정도 가면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워싱턴 근처의 대형 한인 마켓에서 한국 음식을 쉽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배추김치나 깍두기도 귀한 음식이 아니다. 물론 그 재료가 되는 배추나 무도 아주 풍성하다. 그렇지만 고들빼기는 이곳에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올케 덕분에 모처럼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올케가 보내온 고들빼기는 모두 네 봉지(4kg)였다. 그 중 한 봉지는 지난 설에 아는 분에게 선물로 주었고, 세 봉지 가운데 한 봉지는 여름에 먹는다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봉지만 개봉해서 식구들이 아껴가면서 '살살' 먹고 있다.

그런데 김치를 먹다가 그만 불쾌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고들빼기를 맛있게 먹던 큰아이가 잘 안 씹힌다고 했다. 원래 고들빼기는 잔 뿌리가 많은지라 아마 그 뿌리가 질겨서 그런 모양이니 아이에게 꼭꼭 씹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여전히 안 씹힌다고 했다. 결국 아이가 입안의 것을 뱉어 냈는데 그것은 질긴 고들빼기 뿌리가 아니고 나일론 망사였다.

"뭐야, 어떻게 이런 게 들어가니?"

기분이 나빴지만 집에서 깨끗이 한다고 하는 음식에서도 어쩌다 보면 머리카락이 나오기도 하는지라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또' 다시 우리집 식탁에 문제의 망사가 등장했다.

맛깔스럽게 생긴 고들빼기가 군침을 돌게 하던 저녁이었다. 빨간 고들빼기 사이로 뻣뻣한 녹색 망사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럼, 이번이 두 번째?'

처음도 아닌 두 번째 망사 등장에 화가 났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멀리 미국까지 온 내 나라 음식인 고들빼기에 대한 예의(?)로 한 번 더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점심, 혼자서 고들빼기와 밥을 먹던 나는 '또 다시' 출현한 나이론 망사에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찾으러 갔다.

'진짜 너무하네요.'

고들빼기에서 웬 망사가?
고들빼기에서 웬 망사가?한나영
10cm나 되는 나일론 망사
10cm나 되는 나일론 망사한나영
이번에는 아예 냉장고에 있는 고들빼기를 통째로 들고 나와서 샅샅이 헤쳐 보았다. 아무 것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물질이 나왔다. 젓가락에 걸린 나뭇잎!

'으윽, 정말 왜 그래요?' (냉동실에 보관중인 미개봉 고들빼기는 괜찮을지 걱정이다.)

이번에는 나뭇잎이?
이번에는 나뭇잎이?한나영
우체국 쇼핑몰 (http://mall.epost.go.kr)에 들어가서 고들빼기에 대한 정보를 읽어 보았다.

► 고들빼기 제조, 생산 공정
원료 농가에서 구입, 입고, 선별, 세척, 냉장절임, 선별, 세척, 양념버무림, 계량, 진공포장, 냉장숙성, 출하


'선별' '세척'의 엄정한 품질관리가 이루어진다고요?
'선별' '세척'의 엄정한 품질관리가 이루어진다고요?한나영
설명대로라면 완벽하게 품질 관리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불량'이 나오는 것일까. 만약 이 고들빼기를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소개하면서 이곳 외국인 친구에게 주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사실 김치는 누가 뭐래도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미국인 가운데 한국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김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사스 파동으로 인해 김치가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런 명성을 얻고 있는 김치 종주국, 한국의 위치는 확고한가. 명성에 걸맞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TV나 신문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듯이 김치는 이제 우리나라의 전유물이 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종주국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데는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일본의 어느 김치 회사가 내걸었다는 '밭에서 식탁까지'라는 슬로건은 그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 밭에 있는 배추와 무 그리고 마늘, 생강 등에 대한 토양 성분과 중금속 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소금까지 검사하고 비료와 농약은 회사가 직접 제조한 것만 사용하고,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하여 철저하게 김치 위생검사를 한다고 하니 그 철저함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아니, 참으로 감동적인 품질관리다. 이제는 위생을 도외시한 채 맛만을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웰빙으로 이어지면서 철저한 위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음식을 세계화시키자는 여론이 많다. 바로 우리 음식의 세계화에 나설 '대표선수'로 김치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어설픈 품질관리로는 오히려 우리나라를 욕 먹일 음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치를 담그는 데에도 옛 어른들이 보여주었던 철저한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냉동실의 고들빼기는 괜찮을까?
냉동실의 고들빼기는 괜찮을까?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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