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서 가장 멋진 부처님은?

경주 남산 종주 답사기

등록 2006.02.20 11:59수정 2006.02.20 18:23
0
원고료로 응원
경주 시내에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금오산(468m)과 고위산을 흔히들 경주 남산이라고 한다. 이 남산에는 수많은 불교 조형물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어떤 불상 혹은 보살상이 가장 멋있고 예쁠까?

경주 남산 종주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흔히 삼릉계에서 출발하여 용장계로 내려왔다가 다시 칠불암을 거쳐 남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말한다. 장장 6시간 정도 걸리는 힘든 길이다. 이 코스에서는 수많은 불교 조형물이 등장한다.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한결같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서 소홀한 것이 없다.


'친절한 부처님' 배리삼존불

a 후보 1 :  배리 삼존불, 삼국시기의 온건하고 포용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후보 1 : 배리 삼존불, 삼국시기의 온건하고 포용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신병철

삼릉계 바로 옆에 있는 배리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참으로 온순하고 후덕하게 생겼다. 몸은 조금 뚱뚱한 편이고 머리가 커서 거의 6등신에 가까운 우리나라 사람 체형을 갖췄다. 서산마애삼존불 본존처럼 환하지는 않지만 미소를 살며시 띠고 있다.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펴서 내리고 있다. 삼국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손모양인 '시무외인 여원인'의 통인이다. 소원을 성취시켜 주겠다는 뜻이란다. 공손하고 친절한 몸모양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남산에 왔다가 이 부처님을 뵙지 않고 지나가면 대단히 서운해 하실 것 같은 부처님이다. 남산에서 가장 멋있는 부처님 후보로 꼽을 만하다.

본존의 왼쪽에는 단순한 관세음보살님이 있고 오른쪽에는 매우 화려한 보살이 옆에서 본존불을 모시고 있다. 단순함과 화려함을 서로 대비하고자 하였을까. 쉽게 볼 수 있는 대비는 아니다. 대비가 잘못되면 그야말로 불균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a 후보2 : 삼릉계 석불좌상, 머리가 없어진 당당한 체구의 부처님이다. 매듭이 이쁘다.

후보2 : 삼릉계 석불좌상, 머리가 없어진 당당한 체구의 부처님이다. 매듭이 이쁘다. ⓒ 신병철

삼릉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편편한 바위에 당당한 체격을 갖춘 부처님 한 분이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다. 안타깝게도 머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조선시대 성리학이 강력한 배타성을 띠었을 때 양반 유생들이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민심을 무시하고 머리를 잘라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양손도 없으나 당당한 체형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다. 통일신라 부처님인 것만은 확실하다. 왼쪽 어깨 위와 아래쪽에 예쁘게 지어놓은 매듭이 부처님에 대한 신라인들의 정성을 엿보게 한다.

신심 깊은 신라 여성 같은 등신보살


a 후보3 : 관세음보살입상, 등신불에 가깝고 온건한 느낌이 들어 삼국시기 신라에서 만든것으로 보기도 한다.

후보3 : 관세음보살입상, 등신불에 가깝고 온건한 느낌이 들어 삼국시기 신라에서 만든것으로 보기도 한다. ⓒ 신병철

머리가 없는 부처님에서 왼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별로 넓지 않은 바위에 서있는 관세음보살 마애상이 있다. 키가 조금 작은 사람 크기이니 등신보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에는 세상을 맑히는 정병을 들고 먼 곳을 쳐다보면서 세상의 소리를 모두 보겠다는 듯이 서 있다. 신심 깊은 아리따운 신라 여성을 보는 듯하다.

골짜기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간다. 큰 두 덩치의 바위에 선으로 단번에 그린 육존불상이 나타난다. 본존불을 양협시보살이 수행하고 있는 그림이다. 보살들은 꽃도 들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교그림 수준이 상당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단번에 그렸지만 결코 속되거나 조잡한 부분이 없다. 불교가 예술로 농익어 있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위를 쳐다보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중턱쯤 되었을까, 넓은 바위 위에 마애불이 한 분 나타난다. 연꽃잎 위에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는 부처님이다. 얼굴은 부끄러워 빨갛게 상기된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형식은 다 갖추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각이나 부조기술의 수준이 낮아 보인다. 눈과 입술 표현이 조잡하다. 전문 미술가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고려 때 만든 마애불이란다. 어찌 보면 대단한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근엄하지 않은 스스럼없는 모습을 좋아한다면 이 부처님을 꼽을 수도 있겠다.

a 후보4 : 마애석불좌상인데, 고려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지방화되고 통일신라의 엄격성이 사라져 친근감이 돋보인다.

후보4 : 마애석불좌상인데, 고려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지방화되고 통일신라의 엄격성이 사라져 친근감이 돋보인다. ⓒ 신병철

통일신라의 불상은 하나같이 높은 미술 수준을 유지한다. 부처님은 곧 왕이었고 보살은 곧 귀족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호족이 연합하여 세웠고, 호족들은 불교로써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호족들이 주도하여 만든 불상들은 전문미술인 작품이 될 수 없었다. 그 지방에서 돌 다루는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들었을 뿐이다. 전문미술가를 키워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거대하고 조잡한 미륵불을 비롯한 불상들은 고려 때 불교 저변이 확대되어 지방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옆으로 조금 간다. 능선에 광배는 깨어지고 시멘트로 보수해놓은 석불좌상을 만난다. 하체가 유난히 든든하다. 광배는 몇 조각 난 채로 뒤에 뒹굴고 있다. 얼굴은 깨어졌으나 다행히 없어지지 않고 주변에 있었나 보다. 향토사랑이 유난한 경주사람들이 머리를 찾아 올리고 시멘트로 고정시켰다. 코 아래의 원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가장 멋있는 부처님 후보로 삼기에는 무리다.

바위를 뚫고 나오는 듯한 석가여래좌상

a 후보5 : 상선암 석가여래좌상, 근엄한 표정으로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자비롭게 보기도 한다.

후보5 : 상선암 석가여래좌상, 근엄한 표정으로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자비롭게 보기도 한다. ⓒ 신병철

이제 상선암을 향해서 땀을 흘리며 올라간다. 상선암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내친 김에 석가여래좌상이 있는 곳까지 간다. 남산 종주길에서 가장 큰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얼굴은 거의 조각에 가깝지만 하체는 거의 선각에 가깝다.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으니 바위에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바위의 부처님이 바로 이런 부처님이란다, 하면서 바위에서 쓰윽 나오는 부처님 같다.

미소가 완전히 사라지고 근엄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비가 흘러넘치는 부처님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당연히 남산 제일의 부처님 후보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드디어 산능선에 오른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면 금오산에 이른다. 매월당 김시습이 저 아래에 초막을 짓고 살았단다.

a 용장사지 3층석탑과 3륜대좌 석불좌상, 높은 곳에 세우고 높은 곳에 앉아 있다.

용장사지 3층석탑과 3륜대좌 석불좌상, 높은 곳에 세우고 높은 곳에 앉아 있다. ⓒ 신병철

계속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용장사지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는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석재를 쌓아놓은 곳 아래에 3층석탑이 보인다. 지붕돌이 제법 반전하고 층급받침이 4개이다. 기단은 윗기단만 있고 아래기단은 없다. 석가탑보다는 늦게 만든 신라 하대의 석탑으로 보인다. 아래기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탑 아래 산 전체를 하성기단으로 삼았다. 그래서 세계에서 단연코 가장 거대한 탑이 되었다.

3단 대좌에 올라앉은 부처님

a 아래에서 본 용장사지 3층석탑, 용장계 어디서든 산꼭대기에 있는 3층석탑이 보인다. 산 전체를 탑으로 삼았다.

아래에서 본 용장사지 3층석탑, 용장계 어디서든 산꼭대기에 있는 3층석탑이 보인다. 산 전체를 탑으로 삼았다. ⓒ 신병철

줄을 타고 내려가면 3단의 원형대좌 위에 올라앉은 부처님이 보인다. 얼마나 높아지고 싶으면 3단이나 대좌를 세우고 그 위에 올라앉아 계실까? 그러나 그 의문은 아래에 있는 용장사터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용장사터에서 이쪽을 쳐다보면 가장 꼭대기에 3층탑이 하늘 꼭대기에 보이고 그 바로 아래 부처님이 보이게끔 되어 있다. 용장사터에서 이 부처님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저렇게 높이 올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부처님도 머리가 없으니 후보감으로는 탈락이다.

a 후보6 : 용장사지 마애불, 당당하고 깐깐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후보6 : 용장사지 마애불, 당당하고 깐깐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 신병철

그러나 맞은 편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좌상은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다. 연꽃위에 올라 양반다리자세로 앉은 부처님은 대단히 깐깐한 모습이다. 입은 굳게 다문 듯하고 양쪽 어깨로 흘러내리는 옷도 정갈하다. 아마 경주 남산에서 가장 균형 잡혀 엄격한 부처님이 아닐까?

내려오면서 계속 산꼭대기 부처님과 3층석탑이 보인다. 저래서 경주남산은 전체가 불국토로서 각인되나 보다. 계곡까지 내려와 다시 올라간다. 이제부터는 답사가 아니라 산행이다. 경주남산기행은 그래서 문화답사와 산행을 겸하게 된다. 동네 앞산쯤이라 생각하고 남산종주를 따라온 사람들은 고생 깨나 하게 된다. 그것도 인생에서 한번쯤 겪어야 할 인연이겠거니 하면서 부추길 수밖에 없다.

산을 넘고 넘어 능선을 넘고 넘어 기도 진하고 맥도 진할 때쯤에 칠불암으로 내려가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가장 힘든 부분이다. 내려가기도 만만치 않다. 오른쪽으로 신선암보살좌상이 있다는 표시가 나온다. 힘든 사람은 그냥 빼먹고 내려가고 만다.

자신과 가장 닮은 부처님은?

a 후보7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가물가물한 절벽에 새겼다. 신비감마저 감돈다.

후보7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가물가물한 절벽에 새겼다. 신비감마저 감돈다. ⓒ 신병철

절벽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절벽 위 바위에 새긴 양반다리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풀고 앉은 보살상 한 분을 만난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다 뵙게 되면 반가움이 배가된다. 통통한 몸매에서는 고집스런 몰두가 보인다. 높은 곳에서 중생들의 삶을 관조하면서 자비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일까? 매우 당당하고 근엄하며 또한 고요하다. 절벽 하늘에서 만나는 보살님의 진리를 향한 강한 인상은 당연히 오늘의 후보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a 후보8 : 칠불암 본존불, 자애로운 표정과 근엄함이 동시에 보인다.

후보8 : 칠불암 본존불, 자애로운 표정과 근엄함이 동시에 보인다. ⓒ 신병철

또 내려간다. 널찍한 곳에 예배단이 보이고 조그만 탑도 보인다. 절벽에는 3존불이 새겨져 있고 앞의 사면에는 방위에 따라 사면석불이 새겨져 있다. 모두 일곱 분이니 칠불암불상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후보가 7분이다. 뒤쪽의 본존불을 대표로 삼아야겠다.

겹연꽃 위에 근엄하게 앉아 있다. 표정은 약간 반기는 듯하면서도 위엄은 놓치지 않고 있다. 성불할 때의 손모양이다. 지하와 지상의 모든 존재들을 끌어안고 해탈하는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이다. 두 번째 가라 하면 서러워할 후보감이다.

이제 뽑아야 할 때가 되었다. 경주남산에서 가장 멋있고 예쁜 부처님은 어느 부처님일까?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고르는 사람 자신과 가장 닮은 부처님이 정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가장 닮은 부처님이 어느 부처님인가? 한 분 정해놓고 부처처럼 이타행하며 살면 온 세상이 불국토가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2월 중순에 경주 남산을 종주했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수많은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남산에서 만나뵌 부처님을 소개합니다.

덧붙이는 글 2월 중순에 경주 남산을 종주했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수많은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남산에서 만나뵌 부처님을 소개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