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듣는 사람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허나 광와노인은 다시 제정신을 차린 듯 장난스런 표정을 걷고는 말을 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한 가지 의무와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고, 또한 자네가 노납과 싸워야 할 두 번째 이유와도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네.”
뭐 그리 복잡하게 설명을 하는 것인지? 지금 자신과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지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말이었다.
“매우 중요한 이유이겠구려.”
“물론이네. 노납은 십수 년 전에 있었던 담가장의 혈사에 가담했던 사람이거든.”
쿵----!
노인이 너무나 쉽게 던진 한 마디에 담천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도대체 이 무슨 말인가? 광와라는 노인...... 저 노인이 담가장의 혈사에 개입한 인물이라니.....
갑작스런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 노인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문의 원수였다. 발작이라도 일으키며 지금 당장 손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담천의는 정작 멍하니 서있었다. 오히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노인의 말대로 자신이 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노인이었다. 담천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지금 담천의가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서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내가 당신과 싸워야 할 또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오?”
주위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담천의의 말투가 달라졌다. 지금까지 소생이란 단어가 아닌 나로 바뀌고, 노인장에서 당신으로 바뀌었다.
“좋아..... 아주 침착해. 부친을 닮아 쇠심줄 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군.”
광와노인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수를 앞에 두고 차분히 다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노납이 저 친구와 함께 자네 부친이 이끌던 균대위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네. 균대위를 등지고 다른 조직에 몸담고 있는 노납을 현 초혼령주인 자네가 가만두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아주 현명한 지적이오. 조직을 배신한 자가 그 죄를 알고 있다니 정신만큼은 올바로 박힌 사람이구려...... 그나저나 이제 말씀을 다 하신 것이오?”
“허.... 성급하기는..... 나이가 들어 퇴물로 취급받다 보면 젊은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네. 언제든지 자네는 손을 쓸 수 있고, 노납 또한 손을 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서두르는가? 서두른다고 자네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나?”
광와노인은 확실히 미친 것이 아니었다. 담천의의 빈정거림에도 그는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담천의가 사정을 해서라도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할 상대였다. 담천의는 감정을 가라 앉혔다. 그리고는 힐끗 후송노인을 보며 물었다.
“저 분도 담가장의 혈사에 관여하신 분이오?”
“그렇지 않네. 저 친구는 비록 썩은 소나무일지언정 불쏘시개로 사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고매한 사람일세. 손에 피를 묻히는 일 따위는 지옥에 갈 노납 같은 사람뿐이지.”
광와노인의 말에 후송노인이 손을 저었다.
“자네는 친구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군. 그 당시 노도는 다른 일 때문에 가지 못한 것뿐이네.”
그러자 광와노인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후송노인을 보지도 않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다른 일 때문이었다는 사람이 평생 입에 대지도 않던 술로 사흘밤낮 동안 취해 있었나? 그것도 평생 가까이 해보지 않던 기루의 노류장화를 끌어안고서? 물론 자네가 굳이 그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다른 볼일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네.”
후송노인은 광와노인의 말에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변명하듯이 입을 열었다.
“흠...흠.... 이상하게도 그 때 마침 술이란 게 무언지 한 번 꼭 취해보고 싶었던 시기였네. 더구나 여자도 한 번 안고 싶었지. 술에 취하고 육향에 취하다보니 너무 좋더군. 사실 무엇에 취했는지는 노도도 모르네.”
청정무구의 도가에 몸담고 있던 인물이 술과 여자를 취하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미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빠졌다는 것. 광와노인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오히려 담천의에게 물었다.
“변명치고는 너무 치졸하지?”
“그렇기는 한 것 같소.”
“자네가 이해하게나. 여하튼 노납은 그 이후 한 가지 책임감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네.”
“무슨 책임감 말이오?”
“담장군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네. 자네와 자네의 여동생이지. 노납은 매우 마음이 무거웠다네. 부모를 잃은 어린 두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헐벗고 굶주려 거리에 떠돌지나 않을까? 배고파 만두조각이나 훔치지 않을까? 시정바닥을 헤매지나 않을까?”
가증스런 말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모시던 분을 살해하는 짓을 한다는 말이오?”
광와노인은 담천의의 조소어린 말에 눈을 크게 치켜뜨고는 갑자기 웃었다.
“크흐흣... 자네가 오해한 것 같군. 끝까지 듣게. 노납은 하여간 그런 걱정스런 마음에 두 아이를 찾았다네. 어차피 그 아이들이 크면서 죄와 업을 지어 나중에 팔열지옥에 가느니 아직 업을 쌓지 않았을 때 극락에 보내주기 위해서 말일세.”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아이들이 걱정 되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찾았다는 말이었다. 광와노인은 자꾸 담천의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담천의의 분노가 폭발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담천의의 분노를 폭발시켜 신지(神智)를 어지럽게 하기 위한 것일까? 그래서 담천의와의 승부에서 유리한 기회를 가지기 위함일까? 하지만 광와노인에게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무리 담천의가 고수라 하더라도 백결과 함께 처리하는 데에는 지금 두 노인과 이십여 명의 금색면구인들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당신은 정말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군.”
담천의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지금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왜 참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미 말했지 않은가? 노납은 분명 팔열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라고.... 그래도 너무 노납을 핍박하지는 말게.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마치고 초열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시간 동안 괴로움을 받아야 할 노납이 아닌가? 그래도 자네는 아직 남은 생이 창창하고.....”
광와노인은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멈추더니 담천의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표정 역시 담천의가 몹시 불쌍하다는 표정이었다. 더구나 안타깝다는 듯 혀까지 차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창창하다는 말은 틀렸네. 쯧쯧... 자네가 노납보다 더 살 수 없겠군. 어차피 오늘 죽을 테니 말이야....”
그 말에 결국 담천의도 웃었다. 그는 아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툴툴거리며 웃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가지 물어도 되겠소?”
“물론이네. 노납은 자네와 대화하는 것이 매우 행복하네. 자네와 같이 대화가 잘되는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거든.”
“담가장의 혈사는 천동의 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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